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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검선 1 - 태풍대과
호연작 지음 / 해우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은 무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유명해진 상태로 나오는게 아니고 무명인으로 나오고 있다.
즉, 뛰어난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 또한 이제 갓 강호에 출두한 그런 상태인 것이다.
책 뒷면의 소개글 일부를 보자면 이 소설의 주인공 경무영 또한
곤륜의 그 유명한 운룡대구식의 창시자로 나온다.
이런 유명한 사람들이 이 글 곳곳에 등장인물로 나오는데
그들은 결국 나름의 실력을 갈고 닦아 각 문파의 얼굴이 되겠지.
작가는 그 중 곤륜의 검선이라 불리는 경무영의 이야기를 자세히 하고자 하는 것 같은데
한 유명인의 성장기에 다름없는 이 글을 읽노라니 소설이 아니라 실제 뛰어난 이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그 위치까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먼저 뛰어난 혈통이겠지. 이건 요즘 과학적인 태도로 얘기한다면
유전자적인 뛰어남을 얘기한다 할 수 있는데 사실 유전적인 뛰어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옛날에야 유전이란 것을 과학적으로 알았겠냐만은 혈통이라는 표현으로
그 중요성을 항상 강조해 왔고, 무협지에서도 거의 대부분이 혈통의 중요성은 유지된다.
두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노력인데 노력 안하고 유명인이 된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만 현실은 그 과정이 지독히도 길고 치열한 반면 소설 속에서는 지극히 단순한 몇 줄의
글로 끝났다는 점만 다르지.
내가 생각하기로 꼭 집어 넣어야 하며 쉽게 간과되어 버리는 항목이 바로 세번째, 지금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즉, 험난한 과정을 겪어 가며 배워 나가는 것이다. 실전이라고나 할까.
상당수의 무협지에서는 이 부분이 쉽게 생략되어 버리곤 하는데 아무리 좋은 혈통을 타고 나도,
노력을 아무리 많이 했어도 실전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뛰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무협이든 다른 분야든 마찬가지이다. 다들 어렸을 땐 어리석고 철 없고 부모에게 야단 맞으며
그렇게 컸다. 자라면서도 친구와 싸우기도 하고 선생님에게 꾸중도 들어가며 그렇게 큰다.
그런데, 그런 과정들이 단순히 하나의 사건들의 연속만이 아니고 개인의 내면에 지속적인
성장을 하게 만든다. 이런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는 것은 성장 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세번째 항목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좋은 혈통이란 것은 몇 마디 말이면 족하고
노력을 많이 한다는 것 역시 글 속에서는 그리 긴 표현이 필요없다. 그러니 결국 실전 경험을 겪으면서
영웅이 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주가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영웅의 성장에
기여를 한다는 것을 잘 묘사해 주어야 한다. 한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점은
주인공 경무영이 자신의 애인을 찾으러 중원으로 온 뒤에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온갖 사건을
겪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점차로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오로지
복잡한 사건과 사건의 연속이다. 그런 사건들이 별로 재미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성장소설이라는 주요 테마의 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건만 연속되다 갑자기 주인공이 훌쩍 커 버리는 상황이 올 것 같은 예감이다.
이런 식의 성장은 독자로 하여금 별로 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한참 동안 못 봤던 사람을
오랜만에 봤을 때 훌쩍 컸다는 느낌을 가지는 건 자연스런 일이겠으나 우리는 주인공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며 따라온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 시각 속에서 갑자기 커 버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아무래도 납득이 힘들 것 같다. 물론 이 책이 아주 길게 연재된다면 내가 봤던 2권까지의
성장 속도를 이해할만 하지만 일반적인 무협지 정도의 길이를 가진다면 두 권 사이에 이정도의
성장밖에 하지 않은 주인공이 갑작스런 슈퍼맨이 되지 않을까 좀 염려스럽다. 2권까지에서도 그 일단이
엿보이긴 한다. 경무영이 하루밤 연습해서 자신이 처음 배운 보법을 익혀낸다는 부분 말이다.
게다가 그 후 벌어진 격투에서 그렇게 배운 보법이 무의식 중에 사용되었다고 하는 말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무의식 중에 사용된다라는 말은 의식 속에서 맹렬한 연습을 해서
몸에 배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겨우 몇 번 연습한 것이 무의식 중에 발휘되다니.
이 책은 주인공 경무영의 얘기와 또 다른 주인공 사마룡의 얘기가 두 축으로 이루어져 전개되고 있는데
이들이 겪는 사건들의 구성과 짜임새는 상당히 그럴듯 하게 잘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이 글이 일종의 성장 소설임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성장 부분에의 묘사가
이 책의 가장 큰 맥임을 잊어서는 안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