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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 (개정판) - 자연 건강법으로 아기 낳고 키우기
최민희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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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인 딸아이 임신했을 때 읽고 많은 도움이 되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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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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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와 함께 문학의 향기에 취할 수 있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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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달콤한 □□ 보름달문고 26
이민혜 지음, 오정택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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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 연애담, 제목과 구성은 마음에 드는데 6학년 치곤 너무 조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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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들 주세요 사계절 중학년문고 2
앤드루 클레먼츠 지음, 양혜원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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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으면서 행복하다는 느낌으로 가득찼다. "아, 이런 거구나.....책을 읽으면서 .재미와 감동이 모두 있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가 있을 수가, 내가 진작에 꼭 읽었어야 할 이야기를 이제야 발견한 것이 아쉽게만 느껴졌다.(원본은 1996년에 씌여졌고 번역본은 2001년판이다, 물론 아직도 이 책을 모르는 많은 학생과 교사들이 있다) 아무래도 제목이 너무 약했다, '프린들 주세요'라니. 알아듣지도 못할 제목에 호기심을 느끼고 찾아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책은 출간하는 즉시 전국의, 아니 전세계의 국어교사 필독서라고 일간지마다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했어야 했다. 국어를 별 재미없이, 의무감만으로 배워왔던 초등학교 고학년들이나 중학생들에게 필독서임은 물론이요, 국어교사라면 이 책을 읽은 즉시 국어교과서의 보조교재-'언어의 사회성'과 '문학의 효용성'을 동시에 가르칠 수 있는 훌륭한 교재-로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학생이든 선생이든 책장을 덮고 나면, 마지막엔 모두 나처럼 말하게 것이다. "이제부터 내가 가장 존경하는 국어선생님은 바로 그레인저 선생님이라고."

작가 '앤드루 클레먼츠'의 약력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공립학교에서 7년간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교사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실감나게 교실(수업) 상황을 그릴 수는 없다 싶었다. 아이들과 선생의 줄다리기는 아마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모두 같은 양상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수업을 안 하고(혹은 조금이라도 덜 하고) 놀아 볼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의 본능적 욕구와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의 진도를 나가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무장된 교사의 팽팽한 줄다리기 말이다. 물론 내 경우에는 항상 아이들과의 싸움에서 역부족이었다. 준비된 작전으로 교묘하게 내 수업의 틈새를 파고드는 한 녀석이든, 날을 잡아서 날씨 탓 분위기 탓 감정 탓 등을 하면서 떼거리로 억지를 쓰는 녀석들이건 간에 난 아이들의 집요함을 단박에 잘라낼 수 있는 '칼'이 없었다. 따라서 이미 본인에게 '칼있스마'(?)가 있는 선생님이라면 나처럼 이렇게 단숨에 그레인저 선생님의 추종자가 되지는 않을런지도 모른다. 또 하나 내가 존경하는 점, 그레인저 선생님은 철저한 '프로'였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세계는 다르다. 난 늘 프로의식을 가진 교사가 되기를 소원한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아마추어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주변에서도 연륜이 쌓인 훌륭한 선생님들은 (자신의 인간적인 감정을 절제하고) 매 순간 아이들 입장에서 정말 필요한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배우가 작품에 따라 각기 다른 배역을 할 수 있듯이, 교사도 상황에 따라, 또 아이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얼굴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 '아이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든 나의 진심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그럴 듯한 이유로 결정적인 순간에도 나의 인간적인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배역이 달라져도 늘 내 표정과 말투는 동일했고, 그건 결국 아이들에게 (나는 너희를 이해하고 지도할 역량이 부족하니) 차라리 '너희가 미숙한 선생을 이해하라'는 숙제를 남기는 것이었다. 되새기고 비교해 볼수록 아이들 앞에서 교사로서의 내 처신은 부끄럽기만 하다.

하지만 그레인저 선생님은 달랐다.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고 지혜와 열정이 있었기에 교사로서 진정한 프로였다. 고리타분한 교실에서 세상으로 '언어'를 들고 나온 제자들의, 그 도발적인 실험과 모험에 생기를 불어넣고자 자신은 기꺼이 악역을 맡는다. 만약 그레인저 선생님의 악역이 없었다면 아마도 링컨초등학교의 아이들은 그렇게도 그 일(볼펜을 프린들로 바꾸어 부르는 일)에 열광하지 않았을 것이다.(물론 그 이후에 사태가 커진 것에는 매스컴의 영향이 크지만, 사건 초반의 원동력은 닉과 그레인저 선생님 사이의 팽팽한 긴장과 대립이다.) 금지된 것에 더 매력을 느끼고 동조하게 되는 아이들의 심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그레인저 선생님이었기에 이러한 배후조종이 가능했던 것이다. 닉의 승리, 아니 언어의 사회성을 철저히 깨뜨리고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낸 발칙한 아이들의 승리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질 때쯤 일어나는 반전은 감동, 그 자체다. 단순히 소설 구성상의 반전을 넘어 이 작품의 주제가 은은히 빛을 발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실제 삶 속에서 주체적으로, 창의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노교사의 혜안이, 제자들에 대한 진한 사랑이 가슴을 울린다. 그리고 닉과 그레인저 선생님 두 사람의 마음에 다리가 놓아지는 순간이다. 아니, 이미 10년 전에 놓아졌던 다리에 소박하지만 성대한 준공식(?)이 거행되는 순간인 것이다.

아, 지금 이 글을 쓰다 말고 나는 영어사전에서 프린들(frindle)을 찾아보았다. 동화 속 이야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왠지 정말 그 단어가 있을 것 같은(이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일 것 같은) 착각이 생겨, 내 손으로 사전을 찾고 내 눈으로 확인을 해 본 것이다. 그리고나니, 왜 이렇게 허전한 것일까? '프린들'이 혹시 내 사전에만 빠진 것이 아닐까 불안하기까지 하다. '포스트잇'으로라도 '프린들'을 써서 사전에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다. 이 사회의 관습과 권위에 도전하는 '닉'과 같은 아이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는 기성세대에겐 골칫거리로 떠오르는 그 아이들이 결국은 뭔가를 변화시키고 만들어 낼 것임을 확신한다. 이 확신이 나의 고단한 일상사와 교사라는 체제유지적인 속성으로 말미암아 흐려지려고 할 때, 나는 내 영어사전의 '프린들'이라는 글씨를, 내 손으로 써 넣은 글씨를 확인하고 싶다. '프린들'은 더 이상 볼펜이 아니다. 책 속에서 폴짝 뛰어나와 내게 곤혹스런 질문을 할 것 같은 똑똑한 개구쟁이 '닉'의 다른 이름이요, 내가 교단을 떠나는 날까지 기억하고 따라야 할 '그레인저 선생님'의 다른 이름이다. 교육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이유,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아름다운 이유 '프린들'을 나만의 사전에 꾹꾹 눌러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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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 내 인생 반올림 2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송영미 그림, 조현실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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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음식을 남기지 않고 만든 사람의 정성에 감사하며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삶에 의욕이 넘치는 사람일 것이고, 때가 되었으니 먹기는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덤덤한 얼굴로 께적거리며 먹는 사람을 보면 매사에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일 것이다. 전자를 보면 나는 후식으로 과일이라도 깎고 싶어지고 후자를 보면 화가 치밀어서 그만 먹으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먹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습성은 나의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내가 그동안 만나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유효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삶에 대한 의욕이 없거나 냉소적이지 않아도 음식을 맛있게 실컷 먹을 수 없게 만드는 적이 있으니, 바로 '비만에 대한 공포감'이다. 남성보다 여성, 나이가 든 사람보다 젊은 사람일수록 이것에서 자유롭기는 힘든 사회적분위기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 비만은 물론 건강에 적신호일 수 있다. 하지만 의학적인 과체중의 척도와는 별도로 '살이 찐 사람'이라는 매우 상대적이며 시각적인(?) 기준은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미카엘 올리비에의 '뚱보. 내 인생'은 처음에 별로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사실 난 먹어도 별로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서 '뚱보'라는 단어에 호기심 일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책이 사춘기 아이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걸 알게 되어 (내가 쓰고 싶은 동화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읽게 되었다. 마침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어찌나 재미있던지, 어느새 동화 속 벵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실실 웃고 있는 정신없는(?) 나를 볼 수 있었다. 167.5센티에 90킬로가 넘는 열 여섯 살 벵자멩 쁘와렝은 자신의 뚱뚱한 외모에 경각심이 없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요리사)도 있고 학교 생활에서는 '중간이 편하다' 나름대로의 처세술(?)을 가지고 잘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레르라는 여자친구를 좋아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고 조심스럽게 클레르에게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그렇다고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여자친구의 마음을 사는 뻔한 결말이 아니다. 뚱뚱하다는 이유로 남들이 모를 고충을 겪어야 하는 체력검사를 받는 일, 바지를 사는 일, 수영장에서의 일 등은 독자를 주인공 곁으로, 마치 주인공의 숨소리까지 들리게 만들 정도로 한층 더 빠짝 다가서게 만든다. 벵의 미래를 예견이라도 하듯 뚱보 일가를 이룬 삼촌, 이혼한 아버지와 같이 사는 소피아줌마는 벵의 내면을 더욱 솔직하고, 깊이 있게 풀어가게 함으로써 빛나는 조연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결국 이 이야기가 한 뚱보 소년의 다이어트 성공/실패담이 아니요, 그렇다고 사춘기 아이들의 이성에 대한 미묘한 심리에만 초점을 맞춘 연애이야기가 아닌 아이들의 삶이, 그들의 눈물과 행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성장소설로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데 매력이 있다.

어른들은 지금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그것이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든, 이성친구와의 문제든, 본인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든 나중에 언젠가는 다 추억이 될 날이 올 거라는 막연한 희망의 메시지로 대충 위로하려 든다. 하지만 열 여섯의 그 아이들에게는 오직 지금 당면한 그 문제가 인생의 전부이다. 그 문제를 어른의 시각으로 그냥 얼버무리고 덮어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직접 부딪혀서 충분히 아프고, 힘겹더라도 다시 털고 일어나야 하는 것은 오직 아이들 그 당사자인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처음으로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그것을 나름대로 좋은 관계로 발전시키고자 그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이성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다를 뿐 아니라, 어느 한 쪽의 강한 의지나 힘만으로는 밀어 부칠 수 없는 각각의 '마음'의 문제이고 둘이라는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짝사랑이나마 어느 누군가가 내 마음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을 벵의 이야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벵은 처음엔 여자아이들이 원하는 이성친구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몸의 요구에 반하는 다이어트를 실행한다. 하지만 클레르와의 돈독한 우정을 기반으로 새로운(벵이 그토록 원하던!) 사랑의 가능성이 펼쳐지는 결말 무렵에서는 이제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자신을 확인한다.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닌 자발적이고도 자연스러운 제2의 다이어트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벵은 이미 심리치료사와의 상담 이후 사랑으로 인한 아픔이 자신의 성장에 주는 의미를 깨달았고, 또 소피아줌마의 조언을 통해 한층 더 여유있는 마음으로 클레르를 만나게 되었으므로 (결말이후에나 확인될) 다이어트의 성패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결국 '사랑'을 통해 성숙할 수 있으려면 자신을 누군가에게 멋진 존재로 보이고 싶게 만드는 간절한 희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은 자신만이 책임지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주체적인 자각이 그 어느 것에도 무게가 더 실리지 않은 채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학창시절을 돌아보아도 그러한 긴장을 가장 치열하고 진지하게 할 수 있는 때가 바로 벵과 클레르 같은 열여섯, 그 시절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의사들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을 빼는 유일한 비결은 바로 사랑을 하는 건데......' 이제 거의 득도(?)한 듯한 벵의 말 속에서 (체질 때문에 살이 찐다기 보다는) 습관적인 폭식의 뒷면에 존재하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소외를 말하고 싶은 작가의 목소리가 느껴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콤플렉스는 극복된다. 우리나라에도 소아비만의 심각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기 때문인지, 등장인물과 음식들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프랑스의 소설이라는 것을 깜빡 잊을 정도로 이 소설은 우리 정서에도 거칠 것이 없다. 아마도 먹는 것에 대한 욕구와 이성에 대한 본능적인 호기심, 또 그 둘이 주는 인생에서의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의미가 동서양을 떠나 인간 모두에게(청소년이든, 어른이든)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리라. 텔레비전과 영화 시나리오 작가, 다큐멘터리 작가라는 경력 때문일까? 작가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주듯이 경쾌한 대사와 치밀한 심리묘사로 생생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에 이어 '바람의 아이들'에서 펴낸 두 번째 청소년책, 브렌드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에게 '바람의 아이들'은 확실한 바람을 일으키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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