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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 내 인생 ㅣ 반올림 2
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송영미 그림, 조현실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먹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음식을 남기지 않고 만든 사람의 정성에 감사하며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삶에 의욕이 넘치는 사람일 것이고, 때가 되었으니 먹기는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덤덤한 얼굴로 께적거리며 먹는 사람을 보면 매사에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일 것이다. 전자를 보면 나는 후식으로 과일이라도 깎고 싶어지고 후자를 보면 화가 치밀어서 그만 먹으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먹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습성은 나의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내가 그동안 만나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유효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삶에 대한 의욕이 없거나 냉소적이지 않아도 음식을 맛있게 실컷 먹을 수 없게 만드는 적이 있으니, 바로 '비만에 대한 공포감'이다. 남성보다 여성, 나이가 든 사람보다 젊은 사람일수록 이것에서 자유롭기는 힘든 사회적분위기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 비만은 물론 건강에 적신호일 수 있다. 하지만 의학적인 과체중의 척도와는 별도로 '살이 찐 사람'이라는 매우 상대적이며 시각적인(?) 기준은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미카엘 올리비에의 '뚱보. 내 인생'은 처음에 별로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사실 난 먹어도 별로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서 '뚱보'라는 단어에 호기심 일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책이 사춘기 아이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걸 알게 되어 (내가 쓰고 싶은 동화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읽게 되었다. 마침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어찌나 재미있던지, 어느새 동화 속 벵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실실 웃고 있는 정신없는(?) 나를 볼 수 있었다. 167.5센티에 90킬로가 넘는 열 여섯 살 벵자멩 쁘와렝은 자신의 뚱뚱한 외모에 경각심이 없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요리사)도 있고 학교 생활에서는 '중간이 편하다' 나름대로의 처세술(?)을 가지고 잘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레르라는 여자친구를 좋아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고 조심스럽게 클레르에게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그렇다고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여자친구의 마음을 사는 뻔한 결말이 아니다. 뚱뚱하다는 이유로 남들이 모를 고충을 겪어야 하는 체력검사를 받는 일, 바지를 사는 일, 수영장에서의 일 등은 독자를 주인공 곁으로, 마치 주인공의 숨소리까지 들리게 만들 정도로 한층 더 빠짝 다가서게 만든다. 벵의 미래를 예견이라도 하듯 뚱보 일가를 이룬 삼촌, 이혼한 아버지와 같이 사는 소피아줌마는 벵의 내면을 더욱 솔직하고, 깊이 있게 풀어가게 함으로써 빛나는 조연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결국 이 이야기가 한 뚱보 소년의 다이어트 성공/실패담이 아니요, 그렇다고 사춘기 아이들의 이성에 대한 미묘한 심리에만 초점을 맞춘 연애이야기가 아닌 아이들의 삶이, 그들의 눈물과 행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성장소설로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데 매력이 있다.
어른들은 지금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그것이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든, 이성친구와의 문제든, 본인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든 나중에 언젠가는 다 추억이 될 날이 올 거라는 막연한 희망의 메시지로 대충 위로하려 든다. 하지만 열 여섯의 그 아이들에게는 오직 지금 당면한 그 문제가 인생의 전부이다. 그 문제를 어른의 시각으로 그냥 얼버무리고 덮어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직접 부딪혀서 충분히 아프고, 힘겹더라도 다시 털고 일어나야 하는 것은 오직 아이들 그 당사자인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처음으로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그것을 나름대로 좋은 관계로 발전시키고자 그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이성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다를 뿐 아니라, 어느 한 쪽의 강한 의지나 힘만으로는 밀어 부칠 수 없는 각각의 '마음'의 문제이고 둘이라는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짝사랑이나마 어느 누군가가 내 마음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라는 것을 벵의 이야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벵은 처음엔 여자아이들이 원하는 이성친구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 몸의 요구에 반하는 다이어트를 실행한다. 하지만 클레르와의 돈독한 우정을 기반으로 새로운(벵이 그토록 원하던!) 사랑의 가능성이 펼쳐지는 결말 무렵에서는 이제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자신을 확인한다.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닌 자발적이고도 자연스러운 제2의 다이어트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벵은 이미 심리치료사와의 상담 이후 사랑으로 인한 아픔이 자신의 성장에 주는 의미를 깨달았고, 또 소피아줌마의 조언을 통해 한층 더 여유있는 마음으로 클레르를 만나게 되었으므로 (결말이후에나 확인될) 다이어트의 성패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결국 '사랑'을 통해 성숙할 수 있으려면 자신을 누군가에게 멋진 존재로 보이고 싶게 만드는 간절한 희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생은 자신만이 책임지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주체적인 자각이 그 어느 것에도 무게가 더 실리지 않은 채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학창시절을 돌아보아도 그러한 긴장을 가장 치열하고 진지하게 할 수 있는 때가 바로 벵과 클레르 같은 열여섯, 그 시절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의사들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을 빼는 유일한 비결은 바로 사랑을 하는 건데......' 이제 거의 득도(?)한 듯한 벵의 말 속에서 (체질 때문에 살이 찐다기 보다는) 습관적인 폭식의 뒷면에 존재하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소외를 말하고 싶은 작가의 목소리가 느껴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콤플렉스는 극복된다. 우리나라에도 소아비만의 심각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기 때문인지, 등장인물과 음식들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프랑스의 소설이라는 것을 깜빡 잊을 정도로 이 소설은 우리 정서에도 거칠 것이 없다. 아마도 먹는 것에 대한 욕구와 이성에 대한 본능적인 호기심, 또 그 둘이 주는 인생에서의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의미가 동서양을 떠나 인간 모두에게(청소년이든, 어른이든)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리라. 텔레비전과 영화 시나리오 작가, 다큐멘터리 작가라는 경력 때문일까? 작가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주듯이 경쾌한 대사와 치밀한 심리묘사로 생생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에 이어 '바람의 아이들'에서 펴낸 두 번째 청소년책, 브렌드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에게 '바람의 아이들'은 확실한 바람을 일으키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