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너에게
벌리 도허티 지음, 장영희 옮김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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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의학적으로는 어느 쪽에도 이상이 없다 하는데도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아기가 생기지 않아서 애간장이 타는 부부가 있는가하면, 단 한 번의 관계로 아기가 생겨 그 존재를 확인한 순간부터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미혼부/모가 있다. 두 경우가 모두 당사자들에게 엄청난 고통이지만, 같은 무게의 고통이라고 하기에는 주변사람들에게서 받는 시선이 너무나 다르다. 내 주변에서도 두 경우를 모두 보며 많은 생각들이 오갔던 차라, 청소년 소설에서 미혼부/모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참신한 충격이었다. 과연 그들은 그 짐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내 관심은 온통 그 '짐', 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부터 원망과 부정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한 생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가 있었다.

헬렌과 크리스는 고3이다. 음악학교에 가기로 확실한 미래가 보장된 똑똑한 여학생 헬렌, 그리고 영문학을 지망하는 순수하고도 따뜻한 심성을 가진 크리스, 그 둘에게 단 한 번의 '특별한 시간'은 그들을 완전히 새로운 세상 속으로 던져 넣는다. 그것은 비록 견디기 힘든 불안과 혼동의 시간이지만, 결과적으로 자기 삶을 근본적으로 다시 들여다보고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하는 소중한 계기가 된다.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연인을 만나) 집을 나갔던 엄마를 찾아 나서는 크리스나  헬렌이 외할머니가 무심결에 내뱉은 '나쁜 피'라는 말에 의문을 품으면서 가족사의 비밀이 벗겨지는 과정은 이 소설의 또 다른 굵직한 축이 된다.
엄마마저도 '그 짓을 몇 번이나 했냐'며 딸을 혹독하게 몰아치고 낙태 수술대로 오르게 하는 부분에서는 이 소설의 배경이 서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가깝게 느껴졌다. 소설의 시점은 크리스(미혼모가 아닌 미혼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1인칭 시점인데, 헬렌의 심리는 '이름없는 너에게'로 시작하는 (크리스가 받은) 편지로 인해 충분히 설명된다. 중심은 분명 크리스에게 있지만, 전체적으로 일기(크리스의 입장)와 편지(헬렌의 입장)가 교차하면서 두 젊은이가 한 생명을 자신의 책임으로, 자신들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눈물겹도록 치열한 과정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물론 원하는 대학 기숙사를 향해 짐을 꾸리는 크리스에게는 아이의 탄생이 큰 변수가 되지 않겠지만, 헬렌에게는 분명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아이를 키우고 몇 년을 유예한 뒤 다시 시험을 치러 대학에 갈 수도 있고, 아니면 맨 마지막 장면(할머니 품에 안긴 아기가 가족들간의 상처를 꿰매주고 있는 것 같다는 구절의 상징)으로 볼 때 헬렌도 예정된 대학에 가고 아기는 할머니가 어머니가 돌봐 준다 해도 말이다.
하지만 소설 이후, 그 아이를 누가 키우고 헬렌과 크리스가 과연 결혼을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는 이 소설에서 부차적인 문제이다. 나는 과연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라면, 헬렌처럼 결단의 순간에 용기있게 아기를 선택하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크리스를 떠나게 할 수 있을까? 또 크리스처럼 여자친구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도 아기를 지키고 끝까지 그녀를 사랑하고 함께 있고 싶어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아니라, 내가 고3때 이런 일이 생겼다면, 혹은 내 딸이 이런 일이 생겼다면 말이다. 어쩌면 너무나 상식적이고도 옳은 선택인 줄 모두가 알지만 소설과 같은 선택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내 주변에서도 (고등학생도 아닌,) 대학시절에 아이가 먼저 생겨 아이 때문에 결혼을 했지만 결국은 이혼을 하는 경우도 보았기 때문에 꼭 결혼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아마 헬렌도 그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아기는 지켜야 하지만, 아직 서로가 준비되지 않는 상황에서 결혼이라는 끈으로 크리스를 자기 곁에 묶어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 여자들의 성의식 속에 사랑=결혼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느 문화권이나 마찬가지일텐데, 어떻게 아기와 남자(아기의 아빠)를 분리해서 선택할 수 있는지, 나는 헬렌의 고3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 판단의 성숙함과 현명함에 감탄을 했다. 헬렌은 부모나 남자친구에 의존하지 않고, 또 그 어떤 사회적인 편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할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주체적인 인간인 것이다.
물론 크리스의 헬렌에 대한 사랑도 정직하고 순수하지만 나중에 고백하듯이 크리스는 아기보다는 헬렌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임신이라는 것이 남자에겐 간접경험이니까, 더구나 같이 살지 않는 여자친구의 임신은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리라) 크리스는 아기의 탄생을 통해서야 비로서 자신이 (아버지로서의 준비는 둘째 치고라도) 자신의 삶을 위한 준비도 아직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발견한다. 작가는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결혼)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의 길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사랑이라는 미묘한 울림이 주는 공명의 효과-즉 젊은 남녀 둘 만의 사랑이 단지 그 둘의 지금 현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상대방은 물론이요, 각각의 가족(과거)과 그들이 책임져야할 또 다른 생명(미래)에 이르기까지-를 마치, 여러 개의 동심원을 그리듯이 잔잔하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몇 년 전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 한 분에게서,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가 졸업 후 찾아와서 낙태를 한다고 돈을 빌려 달란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충격적이었다. 이미 공공연한 현실로 인정하지만 누구도 섣불리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것이 '미혼모', '낙태'라는 단어이다. 결혼여부를 떠나 '이름없는 너'로 인해 고통받고 그것이 상처로 남겨진 사람들이 이 책을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특히 크리스처럼, 남자들이 본다면 조금은 더 새로운 인식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미 비슷한 상황에서 새 생명을 포기했던 이들에게는 (오히려 죄책감을 증폭시켜) 치유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지라도, 지금 막 뜨거운 사랑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에게 예방적(?)인 효과는 확실할 것 같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거리를 배회하는 비행청소년들에게만이 아니라 헬렌과 크리스처럼 밝고 맑은 심성의 여느 청소년들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이름없는 너'로 인해, 숨쉬는 것조차 버거워지는 순간이 올 수 있으니까. 하지만 누구에게든 일어 날 수 있는 일이, 누구에게 일어나느냐에 따라 생명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문학이 현실을 반영하되, 이 소설처럼 조금은 앞서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소설의 배경이 우리나라였다면?' 이라는 의구심을 애써 지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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