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마음 속에 품고 잊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죽은 게 아니라고, 우리 마음 속에 살아 있는 거라고......웃기는 소리다. 마음을 달래느라 만들어 낸 수많은 거짓 위로 중에서도 가장 짜증나는 말이다. 차라리 재준이가 완벽하게 사라졌다는 사실을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나 또한 언젠가는 그렇게 씻은 듯이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그렇다. 우리는 자신없는 대목에서 둘러대기 바쁘다. 그것이 위로든, 질책이든, 교훈이든...아이들에게 뭔가 의미있는 말을 남기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이(꼭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니더라도) 얼마나 부질없고도 부끄러운 노릇인가가 이 책에서는 잘 드러난다. 열 여섯의 두 아이가 있다. 친엄마, 새아빠, 성(姓)이 다른 어린 동생과 함께 살기에 누가 봐도 문제가 있을 법한 '반항아' 유미, 그리고 엄격한 아빠와 몸이 약한 엄마, 남동생과 함께 누가 봐도 별 문제 없는 가정을 가진 '모범생' 재준이. 그러나 어느 날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재준이고, 이로인해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진 것은 유미다. 그러한 유미에게 재준의 엄마는 재준이가 남긴 일기장을 건네주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며 그 일기장을 펼치기조차 힘들어하던 유미가 결국 그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읽어 가면서 재준이의 죽음을 인정하고, 둘 사이의 우정을 확인하면서 온전히 떠나보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맺는다.
어쩌면 단순할수도 있는 줄거리지만 이 속에는 가정, 학교, 학원이라는 일상 속에서 빚어지는 사춘기 아이들의 갈등과 감성이 매우 섬세하게 그려져있다. 가장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이라는 극적인 사건을 되새기는 과정에서 유미의 닫혔던 마음은 세상과 화해하게 된다. 처음엔 (소희라는, 재준이가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재준이 오토바이를 배운 것이기에) 소희를 원망하고, 그 죽음의 시간에 겉멋에 들린 문자나 날렸던 자신을 괴로워하지만, 일기장을 덮을 때는 '재준의 짧은 생에 그처럼 어여쁜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소희가 고맙고, 자신도 문자의 마지막에 (물론 그 때는 작별인사일 줄 몰랐지만) '잘자'를 썼다는 것을 생각해내서 안도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재준이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마음 속에 도저히 파낼 수 없는 무거운 사랑을 남기고 떠났다는 것'을 깨달아 눈물을 흘리며 작별의 인사를 고하는 마지막 부분은 '삐딱이' 유미의 마음이 이제 얼마나 따뜻하고 깊어졌는지를 느끼게 해 준다.
어린 나이에 어이없이 사라져 간 소년들에게 글 속에서나마 아늑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누리게 해 주고 싶었다던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무겁지 않고 어둡지 않다. 첫사랑에 실패해서 늘 멍하니 정신을 딴데 두고 다니는 담임선생님이나 유미가 부르는 '새아빠'라는 호칭이 합리적이라며 칭찬해 주는 새아빠처럼 개성있는 인물들과 아이들의 입말을 살린 편안한 문체가 읽는 재미을 더한다. 솔직히 그동안 중학교 아이들에게 권할 만한 우리나라 소설이 별로 없다고 느꼈다. 동화는 아이들이 표지만 보고는 시시하다고 느끼고, 기성작가의 성장소설은 세대차이 때문일까? 사실 요즘 아이들이 공감하기는 어려운 작가 개인의 정서와 과거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비로서 아이들이 물어볼 때, 아니 물어보기 전에라도 나는 이 소설을 꼭 읽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도 한 번 권하고 싶다. "얘들아, 너희도 재준이처럼 시체놀이 한 번 해 보지 않을래? 지금처럼 사는 게 재미없고 시시하다고 느껴질 때는 말이야...그리고나서 오늘 일기장에 한 번 써 보는 거야.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