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로 시작되는 우아한 거짓말은 열네살 소녀 천지의 자살이 믿어지지 않는 언니 만지가 죽음의 원인을 추척하는 이야기다.

하루 중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학창시절 소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친구'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 틈에서는 공부보다는 친구 사귀기가 더 힘들다. 초기에 친구를 사귀지 못하면 그 해 내도록 친한 단짝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전학을 자주 다니는 경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해 친구 사귀기가 더 어렵다. 이 책 '우아한 거짓말'에 등장하는 천지가 그랬다. 계속적인 전학으로 친구가 없었고 초등학교 4학년, 드디어 정착할 곳을 마련했을 때 환하게 웃으며 살갑게 말을 건넨 아이가 '화연'이었다.

첫인상과 다르게 화연은 천지에게 너무나 무례했다. 화연은 친구들에게 거짓을 섞은 천지에 관한 황당한 이야기를 소문을 내었고, 자신의 생일파티에 초대하면서 다른 친구들보다 더 늦은 약속 시간을 적어주어 일부러 천지가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가 있는 생일상에 앉게 하였다. 중국집 딸 화연이 늦게 온 천지에게 준 음식은 짜장면 한 그릇. 천지는 그래서 짜장면을 너무나 싫어했다. 화연에게 천지는 남주자니 싫고 가지자니 더 싫은 그런 친구였다.  화연은 천지를 지독하게 오랫동안 교묘하게 괴롭히며  천지에게 다가오는 친구들을 중간에서 잘라버렸다.

4학년때 맺은 화연과의 질긴 악연은 새로운 학년이 되고 반이 바뀌어서도 계속 이어졌다. 중학교 1학년. 또다시 화연과 같은 반이 된 천지는 수업시간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가' 라는 글에 그동안 화연에게 쌓인 감정을 담아 아이들 앞에서 발표 했다.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하지만 무색하게 다시 패배하고 만다. 그래서 천지는 자신의 마지막을 위해 아주 촘촘한 코로 뜨개질을 시작한다. 그리고 천지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버렸다.

화연과 천지 사이의 지독한 만남을 알고 있는 친구가 있다. 바로 미라. 착한 애가 당하는 것 같아 처음에는 천지를 도와 주었지만 자신의 아빠와 천지 엄마와의 불륜을 알게 된 후 천지를 미워하게 되었다. 하지만 천지는 항상 미라가 진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자신에게 이야기 할 때 더 상처 받았다. 

누가 천지를 죽음까지 몰고 간 것일까? 과연 화연 혼자 만일까? 오래도록 생각한 끝에 천지 죽음에 관련된 책임자는 가족, 화연, 주변 친구 모두라고 여겨진다.


천지가 오래도록 화연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우울증을 앓았지만 가족들은 천지는 혼자서도 뭐든 잘하리라 여겼다. 천지가 친구관계에 대해 말을 하여도 하루 하루 살기 바쁜 가족은 눈치 채지 못하거나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천지는 가족들에게 더이상 친구에 관해 의논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화연은 천지를 직접적인 죽음으로 이르게 한 아이이다. 늦둥이로 태어나 맞벌이하는 부모 때문에 3살때부터 어린이집에 살았다. 부모 사랑과 관심이 부족해 늘 외로웠다.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친구들에게 이것 저것 물질적인 것을 주며 놀기 시작했다. 외로운 화연은 친구 사귀는 방법이 잘 몰랐던 것이다. 화연을 이러한 성격으로 만든 것은 화연 부모의 책임도 있다고 여겨진다. 아무리 먹고 살기 바빠도 자신이 낳은 자식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바른 길로 인도하지 않은 건 부모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천지를 지켜보거나 화연과 함께 천지를 이상한 아이로 몰아간 학교의 친구들도 책임이 있다고 여겨진다. '모르는 척'이란 책을 보면 직접적으로 괴롭히며 왕따를 시키는 것도 나쁘지만 모르는 척 하는 사람 역시 동조자이며 가해자라 이야기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친구들 역시 화연이 낸 근거없는 헛소문에 동참하거나 천지가 화연에게 당하는 것을 모르는 척 하였으니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결국 따져보면 천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공범이 되는 셈이다. 작가처럼 누군가 손을 내밀어 잡아주었다면 천지가 삶을 버리진 않았을텐데 말이다. 어렸을 적 작가의 아픔을 담아 낸 책이라 더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우리 사회에 이런 일을 실제 겪는 이들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마지막까지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던 작가에게 감사하며 마지막으로 천지가 가기 직전 꾸었던 꿈을 회상해 본다. 죽음으로 가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언니와 엄마가 집으로 달려 돌아와 자신을 살려주는 꿈 말이다. 어쩌면 천지는 진짜 죽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좋은 책이란 책을 읽고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 그랬던가. 나에게 이 책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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