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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거리는 아빠 ㅣ 홍진P&M 우리동화 읽기 7
박은희 그림, 이붕 글 / 홍진P&M / 2007년 8월
평점 :
내가 가지고 있는 그에 관한 자료에 이상이 없다면 <그래서 행복해(대교출판, 2005.10)> 이후 만 2년만에 내놓은 작품일 것이다.
동화작가 이붕은 언제나 신인이다. 그가 동화작가로 등단한지 올해 만 20년이 되었지만 지금 역시 그러하다. 내가 그를 신인이라고 말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이상하게도 그는 20년이나 되는 중견 작가로 여겨지지 않는 데 있을 것이다. 연륜이나 그의 데뷔 무게나 문단에서의 역할에 비해서 소문이 거의 나지 않은 작가라는 것은 참으로 기이하다.
2) 내가 가지고 있는 그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엉뚱이의 모험(이헌숙, 여명, 1997)
내가 가진 것 중에 ‘이헌숙’의 작품은 이것이 유일하다. 이 책에 적힌 작가 소개를 보면 이 작품이 나오기 이전에 <호호병원>, <향기의 천사>, <미래와 영민이>, <전철타고 가는 날>, <산성비는 정말 무서워요> 등이 있었다고 한다.
꽃이 필 시간은 있다(이붕, 한우리 미디어, 1997) -이 작품으로 내가 근무하고, 직접 진행 관리하면서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에서 처음 시행하고 다시 시행한 적 없는 1천만원 고료 제1회청소년문학공모에서 당선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이 작가를 알았다.
교감선생님은 청개구리(이붕, 대교출판, 1997-제4회 눈높이 아동문학상 당선작)
물꼬할머니의 물사랑(이붕, 영림카디널, 2001)
우리 엄마는 걱정 대장(이붕, 현대문학어린이, 2002)
아빠를 닮고 싶은 날(이붕, 계림, 2002)
반디야, 만나서 반가워(이붕, 영림카디널, 2004)
그래서 행복해(이붕, 대교출판, 2005)-이 작품은 지난해에 수정판이 다시 나왔다.
그가 1987년 월간문학에서 신인상을 받아 작가로 처음 등단하던 때의 이름은 ‘이헌숙’이었다. 말하자면 ‘이붕’은 ‘이헌숙’이 나중에 사용하게 된 작가로서의 필명인 셈이다.
본명으로 데뷔해서 필명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거의 10년 가까이 지난 1996년 눈높이문학상과 제1회로 실시하고는 포기해버린 한우리 청소년문학상을 동시에 거머쥐던 때부터다. 말하자면 등단 10년차에 신인의 모습으로 다시 공모상에 응모하기가 아마 껄끄러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본명으로 10년, 필명으로 10년을 활동하는 바람에 본명과 필명이 각각의 인물로 여겨져서 신인처럼 여겨지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도 그의 작품에서 항상 신인 작품같은 느낌을 갖는다.
그는 동년배의 작가에 비하여 과작인 편이다. 그러니까 드문드문 책이 나올 때마다 낯선 작가의 작품을 받아드는 기분이다. 이름을 잊어버릴 만하면 기억을 재생시켜 주듯이.
그를 신인처럼 여기게 하는 것은 작품 자체에 있다. 그가 다루는 것은 결코 엉뚱한 것이 아닌데 이상하게 남다르게 별난 것을 다루었다는 느낌을 갖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틀거리는 아빠.
알콜중독자이면서 행불자인 아빠를 극단적으로 미워하는 화자 -소녀가장인 ‘나’.
독특한 설정이다.
그런데 작품 속에 들어가면 더욱 독특하다.
두 가지의 작품이 병행 전개된다. 한 작품은 바탕 이야기로서 현실동화[현실주의 동화라는 뜻이 아니라, 세칭 ‘소년소설’이라는 뜻이다.]이지만 또 한 편의 작품은 환상성 농후한 악마까지 포함된 동물의인 동화이다. 동물 의인 동화는 전체 제목이 없지만 일곱 토막으로 나누어 연재되는 형식으로 현실동화의 전개에 따라 중간중간 삽입 액자 형태의 에피소드처럼 전개된다. 두 이야기는 금주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점에서 공통성이 있을 뿐 두 개의 이야기는 전혀 연결되는 점이 없다. 다만 두 이야기의 연결 고리는 바탕 이야기의 주인공(화자)이 인터넷에 올라있는 동화(세칭 ‘인터넷동화’)를 읽는 것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현실의 화자는 자기가 읽는 이야기에서 심리적 영향(금주 메시지에 대한 인식)을 받겠지만 당연히 그 동화는 현실 문제에서 아무런 작용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형태도 구조 형태에 따른 분류를 하자면 액자동화(소설)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많지 않은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가 가지는 관심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느낌이겠지만, 발표 당시에 다른 작가들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의 범주에 있는 관심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는 느낌이다. ‘참, 이런 게 있지.’-하고서 잊고 있던 것에 대한 깨우침 같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단순하게 보면, 이 신작은
알콜중독자와 가정의 평화를 파괴하는 음주문화에 대한 경고적 메시지를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어서 이 작품은 금주 운동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지금까지 다루어진 적이 없는 동화의 재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이 작품은 화자인 소녀 가장의 리얼한 심리- 이것이야말로 정통적인 사실주의(흔히 ‘현실주의’라고 불리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아니라) 작품의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남이 보기에는 모범적이고 착한 소녀 가장이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가장 비뚜러진 상태의 심리. 그것은 사춘기 소녀로서, 알콜중독에 행불자가 되어 버린 아버지를 미워하는 감정과 할머니를 부양하면서 고아처럼 외롭게 살아가는 환경에서 가지게 되는 어쩔 수 없는 반항일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부정적이고 회의적이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아야 하는 자신의 생각 때문에 불행을 더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붕 작가의 특징은 논리적인 작품 구조에 있다. 그는 전체적 구조는 물론이지만 문장도, 단락 구성도 구조도 논리적으로 설계해서 아귀를 철저히 맞춰 내는 데 있다. 그래서 작품 자체가 감성적이기 보다 이성적이고, 마르거나 상처난 꽃잎이 있는 생화의 느낌보다 깔끔한 조화와 같은 작위적인 구조물이라는 인상을 받는다는 것이 장점이면서 단점이다. 그러한 전형성을 가장 잘 드러낸 장르가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이번의 신작에 다루어진 액자 동화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7토막으로 나누어 놓은 것은 각 토막별로 독립성 강한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독립적인 연작 구조는 아니다. 각각의 토막에서 보여주는 사건들-동물들의 동네 ‘통마을’에 ‘수블’이라고 불리는 ‘이상한 행복 액체’로 인하여 벌어지는 사건. 그 사건은 통마을을 불행한 사회로 변질시켜간다.-은 결국 하나의 그물로 짜인 원인(인간들이 나중에 ‘술’이라고 말하는 악마의 액체 ‘수블’을 마을에 퍼뜨린 원숭이 누룩이의 농간)에 걸려든 탓이라는 것을 추리에 의하여 규명되기 때문이다. 결국 사전에 철저하고 구체적으로 짜놓은 플롯에 따라 진행되는 사건은, 나중에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을 꼬투리를 중간중간에 슬쩍슬쩍 던져둠으로써 반전의 효력을 발휘하는 추리동화이다.
작가 이헌숙은 부웅 떠보겠다는 소망을 담아 지었다는 필명 ‘이붕’으로, 1997년 거액의 고료(상금 1천만원씩)가 걸린 두 가지의 동화 공모(제4회 눈높이 문학상, 제1회 한우리 청소년문학상)에 한꺼번에 당선함으로써 출발은 필명에 건 소망을 달성하는듯 하였으나 후속 작품들에 대한 반응은 그리 시원치 못한 탓에 그 이름(필명)이 빛을 나타내지 못한 채 거의 10년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주머니 속의 송곳은 그대로 숨겨질 수는 없는 노릇. 이번의 이 작품이 그로 하여금 도 동화 전성시대를 수놓을 또 하나의 신데렐라로 테이크오프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와 희망을 담아본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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