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나무가 쓰는 편지 사계절 아동문고 35
김혜리 지음, 이은천 그림 / 사계절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세 딸의 새엄마 맞기

  계모는 동양이나 서양이나를 막론하고 예로부터 설화의 악역으로 등장합니다. 이야기에서 나쁜 여자를 등장시켜서 갈등을 조장하는 데는 계모 이상 가는 게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계모는 악녀의 대명사로 통합니다. 따라서 ‘계모’가 되거나 계모를 맞는 일이란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수 없는 역할이면서 사건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창작동화에서 계모는 그러한 관념적 이미지에 대해서서도 반역을 꾀합니다. 친어머니가 동화에서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가 하면, 반대로 악녀의 대명사인 계모는 아름답게 변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혜리의 <미루나무가 쓰는 편지>는 새엄마를 맞는 사건이 모티브가 되고 있습니다. 홀로된 아버지를 홀로 있게 하면 안 되며, 새엄마를 맞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워 문제될 것도 없고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독자에게 인식시키려는 노력을 보입니다. 그리고 ‘새엄마’라고 일컬어지는 계모에 대한 관념적 이미지를 불식시키려고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새엄마를 맞는 것은 결단코 불행을 불러들이는 것도 아니고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죄를 짓거나 배신행위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새엄마가 아이들과 실제로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는 전개되지 않지만, 새엄마 감으로 등장한 인물은 현숙한 주부감일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자질)을 가진 캐릭터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중대한 결함을 가진 가정’에 결함을 메워 온전해지는 과정을 매우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그려내면서 정상적인 인간 가족을 제시하는 데 성공한 휴먼 스토리라고 할 것입니다.

이 가정의 살림은 외할머니가 맡아주고 있습니다. 그 외할머니가 홀로된 사위를 위하여 당신의 딸의 자리(아이들의 엄마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맞아들이는 작업을 끝까지 해내면서 손녀딸들을 설득해 갑니다.

새엄마를 맞아들이는 열쇠를 쥔 이는 물론 세 딸이지만 그중에서 맏이가 가장 완강하고, 화자인 ‘나’는 거의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태도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새엄마에 대해서 오히려 기대를 갖습니다. 그런데 큰언니는 거의 끝까지 반대하거나 저항합니다. 말하자면 큰언니의 마음을 돌려놓게 됨으로써 이 이야기는 끝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세 딸 중에서 막내인 ‘나(3학년)’가 화자가 되는 일인칭 소설입니다.

 ‘나’가 화자이기 때문에 그 또래의 말투를 사용한 문체도 매우 사랑스럽도록 귀여운 감칠 맛이 나는 것이 이 작품의 또한 매력이기도 합니다. 사물을 보거나 판단하는 것도, 그 또래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객관적인 묘사가 되어 어른 독자들에게는 상황 짐작을 하게 하여 미소짓게 되고, 화자 나름의 상상이나 판단은 그대로 동심적이어서 즐거움을 느끼게 하니까요. 마치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화자를 연상케 한다고 할 만합니다. ‘나’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생활하는 이야기와 나이 차이가 나는 사춘기 언니들의 생각과 ‘나’의 눈에 비치는 어른들의 고민과 음모(?)가 절묘하게 어울리면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눈을 떼지 않고 작품을 독파하게 하는 힘의 원천입니다. 아파트의 별난 이웃 어른들의 독특한 캐릭터와 역할이 이야기의 분위기와 맛을 높여줍니다. 어린이가 읽을 소년소설이면서 선명한 캐릭터를 가진 어른들이 주요한 조역으로 등장하면서도 전혀 어색하기는커녕 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 된다고 할 것입니다. 연령이 다른 등장인물이 엮어내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독서의 피로를 전혀 느끼지 않게 하면서도 전혀 어수선하지 않고 기둥이 되는 줄거리를 일관성 있게 거침없는 속도로 전개하는데 매우 적절한 역할을 해낸다는 것이 작품을 성공적으로 돋보이게 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결국 이 작품은 오늘의 아이들에게 새엄마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는데 훌륭한 역할을 해낼 것임에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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