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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애하는 여행자들 - 일인 여행자가 탐험한 타인의 삶과 문장에 관한 친밀한 기록
추효정 지음 / 책과이음 / 2022년 2월
평점 :

혼자 여행을 즐겨 했다. 돈도 시간도 용기도 부족했던 사람이라 흔한 블로그에 나오는 것처럼 거창한 유럽여행, 미주여행 이렇게까진 못했지만 소소한 2박 3일, 3박 4일짜리의 바로 근처 외국을 다녀오는 여행에도 재미를 붙이고 있었고, 국내 여러 지역들을 여행하는 것도 좋아했다. 코로나 때문에 제약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래서 이 책을 보고 싶었다. 책으로 간접 경험, 간접 여행을 하면서 기분이라도 내고 싶었고. 내가 못가본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도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저 흔한, 여행가의 탐험기 아니면 거기서 만난 친구들 이야기겠지 착각했던 과거의 내가 우습다는걸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여행하는 동안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맞았다. 다만, '내가 여행중에 만났던 사람들'과 달랐던 점은 히치하이킹이든 숙소에서든 잠깐 만난 그 사람들에게서 그 사람들의 단편적인 인생이라도 알게 되고 그것으로 '나'를 깨우치게 했다는 점이 너무나 달랐다.
모스크바의 소피아, 오픈릴레이션십이 될 것 같은 칼레와 박티 등등 여행중에 만나게 된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인생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작가의 재주(?)가 대단하다 못해 어떻게 하면 저렇게 나를 낯선 사람에게 드러낼 수 있게 만드는건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물론 '여행'이라는 카테고리가 주는 버프가 있었겠지만, 우연히 만난 상황에서 그들 한 명 한 명에게서 새로운 자극을 받고 그걸 내면화 하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이건 아니다 취향을 확고히 하기도 하는 에너지가 아주 재미있었다.
책을 덮고나서, 간접적으로나마 이 책으로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만난 수마웅. 머릿속에 그려지는 티없이 맑은 어떤 남자가 마음을 받고 커피를 건네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말이 좀 재수없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가 '팁'을 바라는 속세를 알아버리는 사람이 되지 않았음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 조르바 -> 카잔차키스로까지 변화하는 털보 아저씨도 기억에 남았다. 같이 동행한 친구가 신기해했던 것처럼 어쩌면 저런 이야기까지 할 수 있게 된걸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고. 이런 갑작스럽고 신선한 자극이 바로 여행이지! 싶어서 다시 여행이 마려워지기도 했고.
아, 파리 가는 길에 만난 '할 수 있는 일이라서 한 것이다'라던 여성 운전자도 좋았다. 작가는 지하철에서 할머니를 도우면서 비로소 여행지에서 만났던 여성운전자가 베푼 선의와 그 말을 깨닫게 되었는데, 건너건너지만 '맞아 나도 여행에서 이런 도움을 받고, 이렇게 해야지' 라고 느낀 적이 분명 있었는데. 그걸 다시 실천하진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해지기 까지 했다.

일흔 둘, 은퇴 후 하루하루가 심심해서 여행을 시작했다는 시게루 상은 사진을 한참 보게 됐다. 전에 후쿠오카 갔을때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캐리어 낑낑거리며 먹고 살겠다고 음식점을 찾는데, 너무도 영화 속에서 일본 가정주부같은 느낌의 할머니가 짐을 들어주시며 어눌하게 한국어로 인사해주시고, 알려주시면서 긴장을 풀어주셨던 적이 있었다. 솔직히 기억에서 잊고 살았던 것 같은데, 그때 받은 친절과 약간 독특했던 웃음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물론 시게루 상의 이야기는 뭔가 도전적이고 '저러다 큰일 나면 어떡해' 버전이었지만 틀니가 빠졌다던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내 여행 중 어떤 하루가 생각난건 왜였을까.

여행지를 소개하는 책도 아닌데 여행이 고프게 되는 이상한 책이다.
이상하게 나는 인상적으로 본 영상이나 책에서 나온 아이템을 갖고 싶어하는, 따라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종종 드는데 이 책에 나오는 파리, 동티모르, 인도... 모두 내가 가고싶어 했던 여행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의 그 도시에 그 공기가 궁금해졌다. 분명히 여행지에 대해 안내하고, 여기가 좋다 알려주는 책이 절대로 아닌데 나도 저 곳에 가서 나만의 명상법을 느껴보고 싶고, 자전거 여행이 궁금해지고(자전거를 다시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새로운 자극을 주는 책이다.
이런 책을 쓴 작가라서 여행지에서 많은 인연을 만나고, 많은 것을 배우고 얻어오는 사람인거구나 싶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