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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 드로잉 - 핀든아트의 여행 드로잉 에세이
핀든아트(전보람) 지음 / 블랙잉크 / 2023년 9월
평점 :

모처럼 아침에 눈도 일찍 떠진 주말 어느 날
쉬는 날 집에선 좀처럼 커피가 마시고 싶은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눈 뜨자마자부터 커피가 -집에 있는 머신으로 내린 커피 말고, 남이 만들어준 커피- 너무 마시고 싶었다.
집 근처 카페에 가야겠다 마음먹고 고른 책은 '유럽, 여행, 드로잉'이다.
코로나가 심해서 여행을 꿈도 못 꾸던 시절엔 여행 책을 사서 여행 기분을 낸 적도 있었지만,
이번에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여행 기분을 내고 싶다기 보다는
여행지에서 눈으로 담은 것들을 손으로 남기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싶었다.
하고 싶지만, 도전조차 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겨지는 영역이라
대체 어떤 사람들이 눈과 손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학원에서 미술 입시강사였다던 작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가까운 나라를 가려다 남편의 권유로 유럽을 한달 동안 여행을 하게 된다.
아직까지는 감흥이 크게 없이 '그렇구나'하고 말던 내가
너무도 책에 집중하게 된 문구가 바로 '이제, 떠나봅시다.'이다.
짧은 문장의 강렬한 힘이라니.
갑자기, 못그리는 그림이나마 어서 따라가서 펜을 들고 싶어지는 욕구가 느껴졌다.

그렇게 여행을 떠나게 된 작가는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체코, 헝가리를 여행하며
스케치북들과 붓들을 바리바리 짊어지고 간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A5 스케치북, 펜 한 자루, 마실 물만 넣어 이곳저곳을 다녔다고 한다.
보통 '사진을 남기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경우에는 SNS에 남길 사진 때문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찍을지까지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목적지로 이동하는 중에, 교통편을 기다리는 중에 잠깐씩(15분 내외로) 그림을 그렸다는 글에
많은 감각을 활용해서 내가 본 것을, 느낀 것을 남기는 여행에 대하여
어떤 여행인지가 너무 궁금해졌다.
처음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며 그림을 그리던 작가는 그림그리는 자신에게 칭찬하는 외국인들에게
뭐라고 대꾸할지 몰라 안들리는 척 했다고 자조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사랑스러워 보이는 부녀를 그려주곤, 먼저 아는 체를 하며 그림을 주기도 하고
왜인지 같이 여행을 하면서 성장하는 친구를 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내적 친밀감이 커지는 여행 에세이면서도,
그림 잘그리는 친구의 스케치북을 보면서 여행 후기를 듣는 기분을 만끽하게 되는 책이다.

작가의 남편이 연애시절 유럽 여행을 하면서 인상적이었다며 말해준 장소를 가게 된 에피소드는
갑자기 연애소설을 읽는 것만 같았다.
정확한 지명도 모르고 이전 기억에 의존에 찾은 곳에서
'몇 년 전 같은 자리에 서서 서로를 생각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는 문장에 눈길이 갔다.
서로 다른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서로를 생각하는 모습이 동시에 그려졌다고 해야하나.
물론, 감성에 젖어 그림을 그리는 그녀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와중에
'떠나간 여자를 그리워하는 남자의 처절한 울부짖음'이라는 노래를 들었다는 것에서 감동 바사삭이었다.
내 감정 돌려놔요, 작가님.
앞에서도 적었지만,
내가 여행 에세이를 읽거나 여행 블로그를 찾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여행 가고싶다' 라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채우기 위해서였다.
물론 여행작가들마다 여행 방법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고, 글을 쓰는 매력도 다 다르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유럽 여행을 그림으로, 사진으로 함께 하면서
'나도 여기 가고 싶다'는 마음보다도
'나도 이런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책을 다 덮고 나선 이제 그림 봐야지 하면서 다시 첫 장을 펼 정도였으니까.
글은 따라서 쓰다보면, 책을 많이 읽다보면 스킬이 생기게 된다던데
그림도 그럴까..?
지우개 똥만 만들어내며 선 하나 긋고 지우기 바쁠테지만
나도 내 눈에 담은 것들을 손으로 나만의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그림 다시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편 책에서 이제서야 느낀 점.
쫙 펼쳐도 책등이 구부러지지 않고 보기 좋은 인쇄 형태 정말... 늦게서야 발견해서 죄송할(?)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런 여행 하고싶다 -> 따라서 그리면 될려나? -> 흉내내서 그려볼까?
이런 빌드업이 당연할 것으로 생각해서 종이 대고 그려보는 나같은 사람을 위한 책인 것인가.
아무튼, 유튜브에서 다른사람의 여행 영상을 보고 온 것처럼
그 나라의 그 여행 장소에 대한 정보를 세세하게 알게 되는 것은 많지 않지만
이렇게 걷고, 다니면서 본 것들을 그리는 여행을 꿈꾸게 되는 책이라
정말 재밌게 읽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읽고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