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도 긴 여행
배지인 지음 / 델피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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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나온, 마치 띠지에 적힌 글인 것 같은 문구가 너무 강렬했다.

'딱 30년만 살고 인생을 종료하기로 했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라니.

서른 살에 죽는다는 비슷한 류의 책을 어릴 때 읽어본 것 같아 그런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서른에 죽는다는 계획이 아니라 안도를 하며 읽은 책이다.

주인공 유민은 섬에서 태어난 여자아이였다. 아빠는 해군 장교였고, 백령도라는 섬에서 태어나 살게 되면서 섬을 제집처럼 뛰어다니는 아이였다.

또래 친구는 남자인 친구 지호 한 명이지만, 마치 동생처럼 조수처럼 같이 의지하고 노는데

여기서 책 제목인 '짧고도 긴 여행'이 등장한다.

둘이서 만든 어른들이 모르는 비밀통로. 왜 하필 이 어린 아이들이 "짧고도 긴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지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충분히 상상이 되는 비밀 공간이었다.

그러다 어떤 사건으로, 섬을 완전히 떠나 육지의 삶을 살고

대학생이 되어 열혈 운동을 벌이다 경찰이 된 친구 지호와 다시 마주친다.

친구와 공유하던 추억인 '짧고도 긴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더 나오려나 싶었는데,

이 이야기에서의 '짧고도 긴 여행'은 유민의 삶에 대한 방향을 말하는 것이라는걸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받고, 몸이 아프게 되면서 알게된 지병으로 인해 언젠가 걷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것.

더 늙고 아프기 전에 지금부터 딱 30년만 행복하게 살다 죽겠다던 그녀는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에서,

플랫메이트와 함께 간 일면식 없는 누군가의 추모식에서,

그리고 시장보러 간 곳에서 만난 프랑스 남자.

(그러고 보니, 책을 다 읽고난 지금도 이 프랑스 남자의 이름을 모른다. 뭐지?)

'이 남자가 나를 구원해줄 수 있는 사람일까' 하지만 결말은 늘 예상 밖이다.

유민이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를 감명 깊게 되새기며 인생의 의미를 탐색하고,

바다를 떠나 프랑스로, 이집트로, 그리고 그렇게 피하던 다시 그 바다로 가게 된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태도는 이별을 맞이하는 자세였다.

'20대의 연애 때는 사진을 지웠는데, 30대에는 사진을 지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중략) 기억을 지워버리고 나면, 그 때의 나와 내 인생들도 지워져 버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빠에게서, 지호에게서, 프랑스 남자에게서 ...

의존적인 삶은 아니지만 '의지'하는 삶을 살았던 그녀가

외면하던 상처였던 바다를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진정한 인생을 찾아가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유민이 바닷속에서 마주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빠였을까, 미안함이나 그리움 같은 마음 덩어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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