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1) 과거의 경험에서 배운다

 2017-09-05 10:06 교보블로그에 실었던 글

 

 

게시됨: 2017년 08월 11일 12시 06분 KST 업데이트됨: 2017년 08월 11일 12시 07분 KST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변호사

 

검찰개혁이 시대의 화두입니다. 이번에야말로 해묵은 숙제를 해치워야 한다는 여론도 높고, 거의 전국민이 검찰개혁에 찬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미 해답이 나와있는 것 같은 검찰개혁을 성공시키는 것은 막상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검찰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았음에도 지금까지 실패해온 것이 그 어려움을 웅변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한 지점들이 있습니다. 5년 후에 과연 우리가 성공을 자축할 수 있을지 쉽게 자신할 수 없습니다. 지혜롭고 치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저는 참여정부 당시 강력하게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찰에서 이와 관련된 업무를 했고 그 이후에도 이 주제에 대해서 오래 고민을 하고 글을 쓰거나 발언을 해왔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반드시 검찰개혁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회에 걸쳐서 제언을 써보려고 합니다. 제대로 개혁된 검찰이란 과연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가,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 어떤 수단을 써야 하는가, 선택과 집중의 관점에서 무엇을 희생하고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가 등 전반적인 내용을 두루 담아보려고 합니다. 우선 첫 부분은 과거의 경험에 대한 반추입니다. 그 이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 주제인 만큼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고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얘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반론이나 다른 의견을 환영하고 기대합니다.

 

 

2003년 참여정부 첫해, 검찰개혁 논의를 둘러싼 환경은 놀라울 정도로 -어찌보면 섬뜩할 정도로- 지금과 똑같았다.
 
우선 첫째로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최고도에 이를 정도로 높았다. 검찰 고위직들이 저지른 각종 비리, 부패사건(현직 검찰총장의 직권남용 사건이 대표적)으로 이미 국민들이 검찰에 염증을 느끼는 분위기에서 전국에 생중계된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는 마른 들에 불을 놓은 격이었다.
 
자기들의 잘못은 돌아볼 줄 모르고 '남 탓'만하는 천박함, 민주적 선거로 뽑힌 대통령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이는 오만함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아, 이거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는 장탄식이 나오게 했다.
 
그에 비해서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적임자로 보였다. 인권변호사 출신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검찰의 무리한 영장 재청구로 구속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검사와의 대화' 현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현 검찰 수뇌부를 신뢰하지 못한다."라고 대대적인 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고, 당시 현직이던 김각영 검찰총장은 그날 저녁 바로 사퇴해야 했다.
 
적어도 정치권과의 유착 얘기는 나오지 않았던 송광수 고검장이 신임 검찰총장으로 기용됐고 검찰은 고개를 숙인 채 개혁의 거대한 물결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은 그 당시 '참여정부'라는 기치에 발맞추어 검찰이 외부인사들을 참여시켜서 만든 '검찰개혁자문위원회(위원장 김일수 고대 교수)'가 열리던 모습이다.
 
박원순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백승헌 민변 사무국장, 서경석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등 평소 검찰과는 정 반대편에 섰던 인사들이 검찰개혁 방안을 논의하러 참석했다. 학계에서도 한상희 건대 교수 등 검찰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분들이 오셨다. 이번 정부에서 초대 법무부장관이 된 박상기 연대 법대 학장도 위원이었다. 당시 나는 대검찰청에서 막내 검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선배들이 회의에 참석하러 들어오는 분들의 면면을 보면서 짓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언론에서는 이번에야말로 강력한 검찰개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들을 했다.
 
자 일단 여기까지만 놓고 현재와 비교해 보자.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그때와 똑같이 강하다. 진경준, 김형준 사건 등 검찰 고위직들의 부패 사건들과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건처리로 국민들의 인내심은 한계점에 이르렀다. 결정적으로 '우병우 사단'으로 상징되는 검찰의 정권 입맛 맞추기는 거의 전국민들이 검찰에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의 모습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오래 인권변호사 생활을 하신 분이고 선거 때 가장 앞에 내세운 공약이 검찰개혁이었다. 예전 송광수 총장과 같은 자리에는 문무일 검찰총장이 임명됐다. 역시 적어도 정치권과 유착했다는 비판은 받은 적이 없는 분이다.
 
법무부에서는 '법무, 검찰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검찰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한인섭 위원장을 비롯하여 참여정부 시절의 '검찰개혁자문위원회' 구성원과 비슷한 분들로 채워진 개혁기구다. 14년 전과 다른 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그렇게 시작된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은 어떻게 되었을까.
 
참담하게 실패했다.
 
참여정부의 공과를 놓고는 부문별로 그 성공과 좌절에 대해서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검찰개혁에 대해서는 심지어 참여정부에 근무했던 분들까지도 일치해서 실패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얼마 전에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사개추 업무를 담당했고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검찰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쓴 인하대 김인회 교수와 함께 검찰개혁 관련 토론회를 한 일이 있는데 김 교수도 참여정부 당시의 검찰개혁에 대해 단정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렇게 좋은 상황에서 그렇게 강력한 동력을 가지고 도대체 왜 실패했을까. 그 원인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다음 번 글로 미루고 일단 당시 검찰개혁이 실패한 모습을 그려보면 이렇다.
 
새로 등장한 송광수 검찰총장은 정치권과 재계의 청탁을 거절해서 몇 차례 승진에서 물을 먹고 있던 안대희 검사를 검사장으로 승진시켜서 일약 대검 중수부장으로 기용한다. (현재의 상황과 비교하면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인사 불이익을 당하다가 일약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된 윤석열 검사장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은 SK비자금 사건에서 얻은 단서를 기초로 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한다. 삼성, 현대 등 무소불위로 보이던 재벌그룹의 총수들이 모두 수사를 받고 법정에 섰다. 소문으로만 돌던 정치 비자금의 실체도 낱낱이 밝혀져서 한나라당의 '차떼기' 행태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대선에 패배했던 이회창 총재는 검찰이 소환하기도 전에 자진해서 대검찰청에 출두해서 불법 선거자금 모금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국민들은 '정의로운' 검찰의 모습에 열광했다.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에게는 팬클럽까지 생겨났고, 그 팬들은 검찰청으로 '응원 도시락'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러면서 '검찰개혁의 본질(!)'은 물 건너 가버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검찰개혁의 본질은 검찰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수사권과 기소권의 독점을 깨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이 수사권을 십분 활용해서 속이 시원해지는 수사 결과를 내놓고 국민들이 이에 열광하자 검찰의 권한 축소 이야기를 꺼내기가 대단히 어렵게 되었다.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이 실패한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정권 출범 1년여 후에 나타난다. 당시 검찰개혁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에 하나가 중수부 폐지였는데, 송광수 검찰총장이 "중수부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대선자금 수사에) 불만을 품고 그것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고 단정하면서 "중수부 수사가 국민의 지탄을 받는다면 제 먼저 목을 치겠다."라고 일갈한 것이다.
 
'중수부를 폐지하려면 차라리 내 목을 쳐라.' 라는 검찰총장의 호기로운 발언에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별로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부적절하기 그지 없는 검찰 총수의 발언인데도 정치권은 별 얘기를 못했다. 그만큼 1년 만에 검찰에 대한 여론은 정반대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검찰이 진정으로 개혁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그 후 참여정부 후기를 거쳐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보인 검찰의 행태를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검찰은 전혀 변하지 않은 채 위기를 넘긴 것이다. 나중에 다시 보겠지만, 오히려 더 퇴보했다고도 할 수 있다.
 
참여정부 당시 검찰개혁 실패의 비극은 이 실패가 국민들의 실망이나 분노 속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환호와 찬사 속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검찰을 개혁하려고 하면서 검찰의 막강한 권한을 계속 활용하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2017년 검찰개혁을 앞둔 상황은 2003년 참여정부 때와 무섭도록 똑같다. 그때와 똑같이 한치 앞을 못 내다보고 다시 실패할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는 정말 구조적인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까. 치밀한 검토와 슬기로운 판단이 어느 때보다 크게 요구된다.
 

(계속 이어집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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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2) 적폐청산 수사, 경찰에 기회를 줍시다

 2017-09-05 10:00 교보블로그에 실었던 글

 

 

 

게시됨: 2017년 08월 31일 14시 56분 KST 업데이트됨: 2017년 08월 31일 15시 16분 KST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변호사

 

검찰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1) 과거의 경험에서 배운다〉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수사권 조정에 관한 내용입니다. 역시 반론을 환영하고 기대합니다.

 

'적폐청산'이 화두다. 개인적으로 '적폐'나 '청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 심각하게 잘못되었던 일들의 진상을 명확히 밝혀서 책임을 묻고 여야나 정파에 상관없이 '이런 점은 고쳐야 한다.'라는 합의가 이루어지는 부분을 개선하자는 것이라면 당연히 찬성이다. 그런데 요즘 진행되는 적폐청산 작업을 보며 의문이 하나 생기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이런 일은 꼭 검찰이 나서야 되는가, 하는 점이다.
 
적폐청산에 못지않게 중요한 시대적 과제가 검찰개혁이다. 대한민국 검찰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한 기관에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독점적으로 주어졌다는 점'에 있다는 것은 검찰개혁을 고민해 온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때문에 그 해법은 검찰 권한의 분산에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다.
 
대통령령인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는 25개의 부를 두게 되어 있다(실제로는 28개가 있다). 그 중 13개가 특수부, 첨단수사부 등 직접수사를 하는 부서다. 즉 절반 이상의 부서가 기소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가 아닌 직접수사만을 전적으로 하는 것이다(나머지 12개 부서인 형사부도 때때로 직접수사를 한다). 직접수사는 원래 경찰이 하는 일이다. 우리 검찰은 사실상 경찰이 해야 할 일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검찰은 전세계 어느 나라 검찰보다도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보면 그 건물 크기도 단일 검찰청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근무하는 검사와 직원 숫자도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히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른 나라의 검사들은 기소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고 경찰 수사를 간접적으로 지휘하는 업무만을 하는데 비해서 대한민국 검사들은 기소와 수사지휘뿐만 아니라 직접 나서서 경찰처럼 수사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건물이 그렇게 크고, 직원 숫자가 많은 것은 다른 나라에서라면 경찰에 속해 있어야 할 권한과 인원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추기관인 검찰이 광범위한 수사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살짝 뒤집어 보면 수사기관인 경찰이 기소권을 행사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의 권한을 줄여서 직접적인 수사권은 경찰이 행사하도록 하고 검찰은 기소권과 간접적인 수사지휘(상하 관계에 있다는 느낌을 주는 '지휘'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면 다른 용어를 써도 좋다)에 관한 권한만을 행사하도록 하자는 게 검찰개혁의 핵심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서 지난 대선에 후보로 나섰던 정치인들 다수가 이런 취지의 공약을 내세웠다. 검찰개혁은 이번 정부가 첫 번째로 앞세우는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수사권의 행사, 즉 적폐청산이 눈앞에 닥치자 다시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검찰에 이런 저런 주문을 한다. 각각의 입장에 따른 '공정한 수사'를 주문하기는 하지만, 적폐청산 작업의 일환인 수사를 검사가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을 표시하지 않는다.
 
정부 쪽은 어떤가. 법무부의 이번 검사 인사를 보면 검찰 권한의 분산은커녕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수사권을 행사하기 위한 태세를 갖추어 놓았다. 서울중앙지검장에 특수통으로 이름 난 윤석열 검사장을 임명했고, 1, 2, 3차장 세 명 모두를 역시 특수부 출신 검사들로 임명했다. 이번 인사에 대해서 언론에서는 소위 '기수파괴'의 측면(직전 검사장이나 차장들에 비해서 3-5년 후배들이 임명되었다)을 주로 보도했는데, 인사의 실질은 직접 수사력의 강화라고 보아야 한다. 부장검사, 평검사, 수사관들의 경우도 인지수사 경력이 많은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서울중앙지검에 배치했다.
 
청와대에서 과거 정부의 문건들이 발견되거나, 혹은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선거 개입과 관련된 자료들이 발견되었을 때도 당연한 듯이 자료들이 경찰이 아닌 검찰로 간다. 이미 기소해놓은 사건의 공소유지와 관련된 증거라면 당연하지만 새로 수사를 해야 할 내용이라면 경찰로 보낼 수도 있지 않은가. 적어도 검찰개혁을 하려는 의사가 있다면 경찰에 자료를 주고 수사를 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표시하면, 대체로 두 가지 반론을 들을 수 있다.

첫째로 경찰이 그런 수사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고,

두 번째로 수사권 조정 논의를 먼저 해야 한다는 얘기들을 한다.
 
그러나 이런 반론은 결국 권한 배분을 핵심으로 하는 검찰개혁을 하지 말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현재 추진해야 하는 적폐청산과 관련된 수사를 경찰이 할 수 없다면, 어떻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검찰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중요한 사건은 검찰이 하고 안 중요한 사건만 경찰이 수사하는 것은 이미 검찰개혁과 거리가 먼 얘기고, 실제로 지금도 그렇게 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서 하나 첨언할 것은 수사권 조정의 내용에 관한 것이다. 과거 수사권 조정에 한 논의는 '민생범죄'에 관한 수사권을 경찰에 주자는 얘기로 이어지곤 했다. 쉽게 말하면 절도, 교통사고, 단순폭력 사건 등 '스트리트 크라임'에 대해서 경찰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양적 수사권 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은 이미 99%가 경찰에서 수사가 끝나고 형식적으로 검찰의 검토를 거칠 뿐이다. 실제로 중요한 사건은 정치적으로 편향될 위험성이 있는 사건들이다. 그런 사건들에 대해서 직접 수사를 담당하는 기관(경찰)과 기소 및 수사지휘를 담당하는 기관(검찰)을 분리해서 자의적인 권한 행사를 막아야 한다. 이것을 '기능적 수사권 조정'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지, 정치권이 그런 개혁을 할 의사가 있는지를 가늠 하는 시금석이 이번 적폐청산 수사일 수도 있다. 급하다는 이유로 검찰에 진짜 중요한 사건의 수사를 맡기면서 어떻게 그 후에 검사들에게 권한을 내려놓으라고 할 수 있을까.
 
적폐청산 사건 수사에 대해서 경찰에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번 사건까지만 검사들한테 맡기고" 혹은 "이 사건들은 너무나 중요해서 경찰에 맡길 수가 없다."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검찰개혁을 얘기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지극히 의문이다. 만약 경찰에 맡겨보고 도저히 안 되면 그때는 아예 대한민국에서는 검사가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을 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검사들은 기소와 기소에 필요한 범위에서 간접적인 지휘를 맡으면 된다. 경찰도 국민적 여망이 담긴 수사에 임해서 최선을 다하려고 할 것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검찰과 경찰의 권한 분배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우리는 개별 사건에서의 적폐청산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제도를 교정하는 진짜 '적폐청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중요한 사건 수사를 검찰에 맡기고, 한편에서는 검찰과 경찰을 불러놓고 수사권 조정을 하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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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학등록금 20여만 원, 한국은 900만 원… 왜?

 2017-09-04 18:36 교보블로그에 실었던 글

 

김용택 | 2017-09-04 08:56:28

 

1만 명의 대학생들이 사상 처음으로 소속 대학과 국가를 상대로 입학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건국대·고려대·동덕여대·홍익대·숭실대… 등을 비롯한 전국 15개 대학이다. 대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할 때 낸 100만 원 내외의 입학금이 입학관리에 필요한 실제 비용수준을 초과해 부당이득을 취했다며 반환을 요구하는 재판을 청구한 것이다.

입학금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4년제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 졸업하기까지는 내는 등록금은 2017년 평균 등록금이 668만 8,000원이다. 의학계열은 무려 953만 5,500원, 4년제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까지는 약 8,510만 원 정도다. 2년 넘게 키워야 팔 수 있는 수송아지 한 마리 값이 348만 1,000원 정도니까 대학을 졸업하려며 송아지 24마리 정도를 팔아야 대학을 마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대학등록금 연(年) 20만 원 선…!

약 72만 원 정도면 대학을 졸업할 수 있는 나라, 프랑스. 몇 년 전 ‘파리4대학(소르본) 프랑스문학 리상스(license)과정(대학 3학년 과정)에 등록한 프랑수아 아로쉬(21)는 납부금으로 815프랑(약 16만 3,000원)을 냈다. 1년에 한 번 상징적인 액수의 납부금을 내는 것만으로 아로쉬는 모든 강의를 들을 수 있으며 학교 도서관과 보건소 시청각실 체육시설 이용은 물론 학교가 주최하는 각종 콘서트와 연극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프랑스의 대학은 모두 국공립으로 한해 등록금은 보통 1000프랑(약 20만 원) 미만. 많아야 2,000프랑을 넘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려면 513시간 일해야 한다. 졸업할 때까지 대학등록금을 마련하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약 1천 시간을 꼬박 일해야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현실에서 연간 20여만 원만 내면 공부할 수 있는 프랑스는 꿈같은 얘기다. 학기당 500만 원 이상 하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1년간 휴학을 하면서 쓰리 잡을 뛰어야 가능한 우리나라 대학생과 비교하면 부럽기 짝이 없다.

‘고려대의 4학년 2학기에 재학중인 사범대 한 학생은 가정형편상 2학기를 제외한 6학기 학자금을 대출받았다. 졸업하면서 갚아야 하는 학자금은 총 2,500만 원이다. 대학생 1인당 대출액은 2010년 525만 원에서 2014년 704만 원으로 1.3배로 2014년 대학생들의 학자금 대출총액이 5조 1천억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금방 취업이라도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모든 대학생으로 하여금 빚쟁이로 만드는 정치부재가 만든 비참한 결과다.

대학등록금 완전 폐지. 개인의 경제력에 상관없이 교육의 기회만큼은 동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취지로 독일은 한 학기에 73만 원 정도 하던 등록금을 전액 폐지했다. 대학생이라면 ‘바푀크’로 불리는 무이자 대출이 가능하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약 450유로, 우리 돈으로 약 68만 원 정도를 학업 기간 내내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취업 이후에 갚아야 할 대출금이긴 하지만 정부 지원으로 50%만 이자 없이 원금만 갚으면 되기 때문에 대다수 학생이 이용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스타파>

독일뿐만 아니다. 덴마크는 교육비 부담이 없다. 대학까지 무상교육이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계층과 상관없이 자신이 원한다면 어떤 교육이든 받을 수 있다. 스웨덴에는 현재 전국에 총 61개 대학 및 동등 수준의 전문교육기관 설립되어 있으며 국립대학교 총 37개 (종합대학 14개, 전문대학 22개) 사립대학교 3개가 전부 무상교육이다. 전쟁도 없는 상황에서 국방비로 약 31조를 쏟아 부으면서 대학 무상 교육지원을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공부는 언제 하는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등록금이 비싼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소득수준과 장학제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우리나라 등록금이 세계에서 제일 높다. 대학진학률 84%, 국민이 내는 모든 세목에 의무 교육세 10%를 신설하면 21조의 세원이 확보된다. 21조면 대학무상교육에 필요한 14조를 지원하고도 7조 원이 남는다. 세금 10%만 내면 대학까지 무상교육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언제까지 대학생을 알바생으로, 졸업 후 학자금 갚기 위해 청춘을 다 보내는 불행한 현실을 언제까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치해야 하는가?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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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검사’는 누구인가 / 검찰청 소속 아닌 검사’의 가능성

  2017-09-04 18:21 교보블로그에 실었던 글

 

 

박찬운  | 등록:2017-09-04 09:18:00 | 최종:2017-09-04 10:12:21

 

우리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검사’는 누구인가
‘검찰청 소속 아닌 검사’의 가능성


며칠 동안 문준영 교수의 역작 <법원과 검찰의 탄생>이란 책을 읽었다. 1천여 쪽에 가까운 이 책은 제목대로 우리나라 법원과 검찰이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발전과정을 거쳐 왔는지를 서술한 법률전문가의 사서이다. 내가 이 책에서 특별히 관심을 둔 것은 역시 검찰부분이었다. 검찰공화국이라고도 불릴 만큼 강고한 검찰의 권한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고 오늘까지 이어져 왔을까?

검찰은 현재 수사권과 기소권 그리고 공소 유지권을 갖는 명실상부한 권력이다. 이에 반해 경찰은 대부분의 사건을 수사함에도 불구하고 그 권한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강제 수사권은 어떤 경우에도 검사의 승낙이 없이는 안 된다. 체포 구속 압수 또는 수색을 위한 영장은 반드시 검사의 손을 거쳐 법관에게 청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경찰이 검사 관련 비리를 발견해 수사를 한다고 하자. 관련자의 인신구속이 필요하다고 판단해도 법원에 직접 청구하지 못하고, 검찰에 영장청구를 해달라고 요청(이를 실무상 ‘품신’이라 함)해야 한다. 검찰이 제 식구를 경찰이 조사한다는 데 제대로 협조를 하겠는가? 이래 가지고서야 경찰에게 수사권이 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 이런 절차적 제한은 단순한 법률사항이 아니다. 우리 헌법이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제12조 3항은 이렇게 규정되어 있다.

“체포 구속 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이런 이유로 검찰개혁의 핵심인 검경 수사권 조정이 늘 좌초되었다. 전문가들조차 경찰에게 완전한 수사권을 주기 위해선 헌법을 개정하기 전에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제껏 그런 생각을 했다. 위 헌법 규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 며칠 검찰과 그 구성원인 검사의 권한을 연구하면서 새로운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그동안 생각해 온 것이 뭔가 고정관념에 빠져 본질적인 것을 보지 못했다는 깨달음이었다. 그것을 여기에 잠간 소개하고자 한다.

헌법이 말하는 ‘검사’는 ‘검찰청법에 의한 검사’(이게 바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검찰청 검사다)만을 의미하는가? 우리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면서, 영장청구와 관련해 ‘검사’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검사를 헌법기관으로 보고 그 기관의 권한을 직접 규정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헌법에서 규정된 ‘검사’는 당연히 하위 법률에 의해 구체화될 수밖에 없고,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검찰청법일 뿐이다.

그러나 헌법상 검사가 검찰청법에 의해서만 구체화되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다른 법률에 의해서도 헌법상의 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검사는 만들어질 수 있다. 헌법은 인권침해 가능성이 높은 강제수사는 법률전문가(검사)의 손을 거쳐서만 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했을 뿐 그 검사의 구체화는 하위법률로 넘겼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헌정사는 이런 입법을 이미 여러 차례 만들어냈다. 군사법원법에 따른 군검사? 이것도 검찰청법에 의한 검사는 아니지만 헌법상 영장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이다. 여러 차례 입법화된 특별검사법에 의한 특별검사? 이것도 검찰청법에 의한 검사는 아니지만 헌법상 영장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이다. 요즘 논의되고 있는 공수처? 이것도 마찬가지다. 이 기관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국가기관으로 만들어진다면 그 근거는 위와 같이 헌법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경 수사권을 조정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헌법 개정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만일 경찰에 독자적인 수사권을 주는 것으로 합의하면 헌법 개정 없이도 강제 수사권을 포함한 완벽한 수사권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경찰 소속으로 있으면서 ‘영장청구를 담당하는 검사’(소위 경찰 소속 수사검사)를 입법화하면 되는 것이다.

박찬운 /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276&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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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는 왜 ‘가진 자’들에게 무한 공감하는가

 2017-09-03 13:39 교보블로그에 실었던 글

[토요판]뉴스분석 왜?
‘이재용 징역 5년’에 담긴 판사들의 논리

‘이재용 재판부’는 판사 재량으로 형을 깎아주는 작량감경을 하지 않고도 징역 5년을 선고했다. 1심이 유죄로 판단했던 부분 중 일부가 항소심에서 무죄로 바뀌거나 항소심 판사가 작심하고 작량감경에 나선다면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선고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그래픽 이정윤 기자 bbool@hani.co.kr

 

판사들은 대부분 똑똑합니다. 판사, 검사, 변호사를 법조계를 지탱하는 ‘법조 3륜’이라고 말하지만 검사나 변호사보다 판사에게 더 많은 권위를 부여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 똑똑한 판사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위(권한)를 특정인, 특정 계층만을 위해 쓴다면,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갈까요.

 

 

 

‘뭔가 판사들만의 두뇌 회로가 따로 존재하는 건 아닐까.’

 

법원의 판결을 지켜보면서 한번쯤 이런 의문을 품어본 적 있을 것이다. 판결 대상이 재벌 총수나 사회 지도층 등 이른바 ‘가진 자’들일 땐 더욱 그렇다. 수십억, 수백억원 회삿돈을 횡령한 기업인에게 “국가 경제에 기여했다”고 말하고, ‘검은돈’을 받은 고위 공무원에게 “뛰어난 업무처리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리고 뒤따르는 결과는? ‘봐주기 판결’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8월25일 선고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징역 5년’ 판결에도 이런 기운이 감지됐다. 재판부는 89억원 뇌물 공여, 81억원 횡령, 36억원 재산 국외 도피, 국회 위증까지 유죄로 본 터라, ‘피고인’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부터 45년까지 선고할 수 있었다. 선고 가능한 최저 형량과 최고 형량 한가운데를 기준점 삼아 ‘나쁜 죄질’과 ‘봐줄 만한 사정’을 가려내 적절히 더하고 뺀 형을 선고하는 것, 우리는 그 과정을 판결이자 양형으로 알고 있다. 이 경우라면 25년이 기준점이라 할 수 있겠다. 불법 경영권 승계의 역사가 길고 국가 최고 권력기관인 대통령과 결탁한 점, 회삿돈 수십억원을 빼내 그걸 뇌물로 쓰고 이를 숨기려 가짜 계약서 등을 작성하고…. 나쁜 죄질은 차고 넘치는데 봐줄 만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89억 뇌물·81억 횡령·국회 위증…
5~45년 중 ‘징역 5년’ 선고
“승계작업, 회사에도 이익” 궤변
수동적·강압적 뇌물이라며 ‘선처’

 

판사 스스로 ‘가진 자’에 편입돼
부자들의 논리와 이익만 대변
‘양쪽’ 눈치보며 진실규명 뒷전
“교만 버리고 법에 따라 판결해야”

 

 

 

 

 

일반적인 상식을 지닌 보통 시민의 생각은 그러한데, 판사들 눈엔 다른 무언가가 더 보이는 걸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김진동)가 4개월간의 재판 끝에 내린 결론은 징역 5년이었다. 혐의 중 일부는 무죄로 판단했고 봐줄 만한 사정이 충분히 반영된 결과였다.

 

이 부회장의 판결문을 검토한 변호사들은 “징역 5년을 미리 정해놓고 설계한 각본 같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김진동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들이 실제로 징역 5년을 목표로 판결을 짜맞췄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번 판결 역시 그들만의 ‘회로’가 작동해 내린 결론이라는 합리적 의심은 가시지 않는다. 판결문에서 밝힌 양형 사유와 유무죄 판단 근거 등을 근거로 판사들의 ‘뇌 구조’를 추적(?)해 보았다.

 

 

①가진 자를 향한 무한 ‘공감’

 

‘이재용 재판부’가 판결문 양형 이유에 두번이나 언급한 이 부회장의 봐줄 만한 사정은 이렇다.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지배구조 개편이 오로지 피고인 이재용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 부회장을 위해 진행된 승계작업과 지배구조 개편이 회사에도 이익이 됐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과 삼성 임원들이 회삿돈 수십억원을 횡령하고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는데, 그렇게 진행된 승계작업의 결과 회사에도 (일말의) 이익이 됐으니 이 부회장의 처벌을 좀 낮출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게 맞는 말일까?

 

선고 3일 뒤인 8월2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주최로 ‘이재용 판결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좌담회가 열렸다. 경제개혁연대 이상훈 변호사는 이 대목을 지적했다.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어서 이를 정비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자기가 들어갈 집에 하자가 있어 미리 리모델링을 한 것인데, 이러한 리모델링은 곧 들어갈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즉,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지배주주의 그룹에 대한 지배력 행사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이를 감형 사유로 해선 안 된다.” 여기서 지배주주는 이재용 부회장이다.

 

이 변호사는 또 “지배구조가 개선되거나 단순화하면 주식 가치가 올라가고 회사 가치가 덩달아 높아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부회장의 경우, 그 이득이 이재용 개인이 누린 이득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나? 경영권 승계라는 이재용 개인의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감형 사유로는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유죄는 인정하되 피고인을 향한 무한한 애정으로 최대한 가벼운 형을 선고하는 법원의 악습은 낯설지 않다. 그 사례는 셀 수 없지만 2009년 8월14일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김창석, 현 대법관)가 내린 판결이 대표적이다. 사건의 피고인은 이 부회장의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원심에선 면소(무죄) 판결했던 227억원 배임 혐의가 유죄로 뒤집혔지만 1심 판결인 집행유예가 유지됐다. 양형 이유 중 일부다.

 

“피고인들은 이 사건 배임 행위가 있은 후… SDS의 발전에 피고인들이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고 보여지는 점에서 피고인들의 책임 감소사유로서 고려될 수 있다.”

 

이건희 회장과 그 가신들이 이재용씨에게 헐값에 삼성에스디에스(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몰아줘 회사에 손해를 입힌 사건이었다. 아들에게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주기 위해 저지른 범죄의 처벌 수위를 판단하면서 ‘회사가 이후 발전했으니 죗값을 덜어주겠다’고 한 셈이다. 그 회사가 성장해서 오른 주식의 가치는 결국 이재용씨의 이익이 되었다.

 

판사들이, 국민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예외 없이 가진 자들의 편에 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세상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 판사들의 사고방식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그는 “대기업 총수의 손을 들어줬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죗값을 묻고 그들을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게 판사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못 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왜 판사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어쩌면 무엇보다 그들 스스로가 세상이 바뀌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판사들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한 변호사의 진단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못하더라도, 한번쯤 곱씹어볼 만한 대목은 있다. “검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판사 대부분이 부잣집과 결혼한다. 아니면 부잣집 자녀들이다. 원래 부자였기 때문에 친부자적인 판결을 하고, 부잣집 사위가 됐기 때문에 친부자적인 판결을 한다. 서민의 주거 불안이나 노동자의 고용 같은 걱정은 모르고 사는 이들이다. 친재벌 논리로 피고인들을 봐주게 되는데, 이 친재벌 논리가 자신들의 재산을 늘리는 논리와 차이가 없다. 결국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일치하기 때문에 봐주기 양형을 남발하는 것이다.”

 

 

②나는 전지전능한 사람

 

아무런 책임도 뒤따르지 않는, ‘언제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리수를 남발하기 마련이다. 이재용 재판부는 삼성이 케이(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에 기부한 204억원을 무죄로 판단했다. “대통령의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로 보기엔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그 근거로 △재단의 배후에 최순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출연금 액수는 전경련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는 등 적극적·능동적이지 않았고 △모금은 청와대 경제수석실의 강압적인 측면이 있었던 점 등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김성진 변호사는 “재판부의 근거는 예외 없이 하나도 대가성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제삼자 뇌물죄에서 뇌물의 수혜자인 제삼자의 성격은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이 부회장 등이 최순실의 존재를 알았든 몰랐든, 최순실이 실제로 존재했든 아니했든, 대통령이 재단에 기부하라는 요구를 했고 삼성이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바라고 이에 응했다면 뇌물죄가 성립한다. 적극적이냐 수동적이냐 여부 역시 뇌물죄의 판단 근거가 아니다. 뇌물 사건 중엔 공무원의 요구에 따라 수동적으로 행한 경우가 다수다. 수동적이니 강압적이니 하는 요인들은 양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유가 될 수 있을지라도 유무죄를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럴듯해 보이는 양형 인자를 유무죄 판단 근거로 삼아 무죄를 선고했다는 지적이다.

 

물론 재판부는 ‘수동적으로 응한 경우’를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양형 인자로도 활용했다. 대법원 양형기준 중 뇌물공여 항목을 보면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경우’는 형의 감경요소에 해당한다. 감경요소가 있다면 가중요소도 있게 마련이다. 뇌물공여의 가중요소는 ①적극적 증뢰(제공) ②청탁 내용이 불법하거나 부정한 업무집행과 관련된 경우 ③피지휘자에 대한 교사가 있다. 이 부회장의 경우 ②와 ③이 해당될 텐데 재판부는 반영하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횡령죄 양형에서도 가중요소가 7개에 이르지만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③어떻게 하면 욕을 덜 먹을까…

 

이 부회장 판결문은 간단히 세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①대통령 압박으로 뇌물을 줬다. ②뇌물을 달라고 한 사람이 더 나쁜 사람이다. ③그래서 이재용은 좀 봐주겠다. ①과 ②는 일반 시민들을 향한, ③은 삼성을 향한 ‘손짓’이다. ‘이 정도면 만족스럽지 않으냐’는.

 

판사들도 사람인지라 비판과 비난을 싫어하긴 한다. 그래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판결을 ‘짜내려’ 고심한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흔적들은 그 고심이 도를 지나친 결과다. “이재용은 승계작업의 성공으로 인한 이익을 가장 많이 향유할 사람”이라는 말과 “승계작업이 오로지 피고인 이재용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말이 양형 이유에 함께 등장한 배경을 보통의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렵다.

 

행여라도 비판이 일찍 등장하면 ‘남탓’을 하기도 한다.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이 선고된 날 ‘형량이 적다’는 비판이 나오자 서울중앙지법 형사공보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뇌물 혐의 가운데 유죄가 인정된 부분이 89억원이고 무죄가 된 부분이 343억원이다. 형량이 지나치게 낮다는 표현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앞서 박영수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형사공보판사의 말은 이런 뜻을 담았다고 보인다. ‘특검은 12년을 구형했고 그 12년은 모든 혐의가 유죄일 때 해당된다. 그런데 뇌물액의 절반 이상이 무죄 선고가 났으니 12년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징역 5년이면 적당한(적지 않은) 것 아니냐.’

 

만약 특검이 징역 24년을 구형했다면 법원이 징역 10년을 선고했을까. 검찰의 구형은 법적인 근거가 없는 절차다. 우리 형사소송법엔 “검사는 사실과 법률 적용에 관하여 의견을 진술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당연히 판사의 판단에 아무런 구속력도 지니지 않는다. 이런 내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판사들이다.

 

또 다른 변호사는 판사들의 이런 성향을 ‘판단하는 사람들의 숙명’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기본 속성상 단정적으로 말하는 걸 피하려 하다보니 ‘아니라고 볼 것은 아니다’는 식의 부정의 부정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 문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마저 양극단을 모두 고려한” 결과 진실 규명이나 책임자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후순위로 밀린다는 점이다.

 

가진 자 편에 선 판사들의 교만과 무책임한 태도가 지속되면 결국 피해는 그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준 시민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사는 법에 따른 판결을 하면 된다. 기업을 생각하고, 나라의 안위까지 걱정하는 건 판사들의 교만이다. 반칙하는 사람들을 단죄하기 위해 사법부가 존재하는데 판사들이 그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부회장의 판결이 나온 뒤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뒤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 풀어주는 ‘3·5법칙’이 실행될 가능성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재용 재판부는 판사 재량으로 형을 깎아주는 작량감경을 하지 않고도 징역 5년을 선고했다. 1심이 유죄로 판단했던 부분 중 일부가 항소심에서 무죄로 바뀌거나, 항소심 판사가 작심하고 작량감경에 나선다면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선고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 부회장의 변호사들은 이미 ‘그림’을 그리는 중일 것이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09375.html?_fr=mt2#csidx7fb10ee43a3798c913a62da937ecab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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