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란 시집(시)으로 유명한 부끄러운 순결의 시인 윤동주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그의 시의 젖줄이 된 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 그리움 속에는 나 자신을 드려다 보는 무수한 눈과 거울과 우물이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속도의 시대에 살고 있다. 컴퓨터를 켜기 무섭게 바른손은 더블클릭을 하기 바쁘고 화면이 느리면 금방 짜증을 낸다.  책읽기도 속독을 강조하며 조사 하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세밀한 의미는 큰 틀에서의 의미 파악에 잠식되기 일쑤다. 거리를 지날 때면 횡단보도를 걷고 있는 사람에게도 신호가 바뀌기 무섭게 경적을 울려대는 무쏘의 뿔을 자랑하는 차를 본다. 이밖에도 헤아릴 수 없는 속도의 일상이 현대인의 피부 밑에서 숨쉬고 있다. 이런 속도전의 시대는 경쟁이라는 삶의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삶의 방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외딴 방에 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생물종의 도태로 말해지는 살아있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런 속도에 파묻혀 살아갈 수밖에 없는 딱한 존재가 오늘을 사는 바로 우리다. 

  일중독자로 살던 어떤 중년의 여인이 떠난 산티아고길에서 만난 영국 여자의 말 한 마디가 제주올레의 첫 시작을 알리는 정신이었다. 그리고 그 올레길을 만들기 위해 연결된 인적 네트워크가 아날로그 길을 만들었다. 디지털의 시대에 가장 아날로그적인 길을 만든 사람들은 의외로 가장 빠른 속도전을 치르던 사라이었다. 이것이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간세다리'-간세:게으름을 피운다-란 말이 제주올레를 위한 여행자의 수칙이란 생각이든다. 자동차의 네 바퀴는 제주의 젖줄을 완전히 느끼기를 거부한다. 차창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은 자동차의 속도로는 인간의 동체시각이 따라갈 수 없다. 차창 너머의 풍경은 마치 어린아이의 장난감 스냅사진의 풍경이 넘어가는 그런 빠른 찰나의 흐릿함이다. 그래서 그런지 제주도를 여행하다보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자동차로 느낀 원경의 제주를 더 가까이 자기 앞에 두고 싶어하는 멋을 아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서명숙이 만든 제주올레를 걷는 일은 그 멋을 아는 걸 넘어 느끼는 일이다.   

  인간이 걸었기에 그 걷기의 자국이 길을 낸 것이다. 그 길이 넓어지고 편히해지면서 인간은 그 길을 낼 때의 걸음을 잃어 버렸다. 그 걸음을 잃음과 동시에 명상과 사유의 시간도 같이 잃었다. 그것을 잃으면서 자연을 보는 눈도 멀어 버렸다. 길 읾음이 생각의 읾음이요 생각의 잃음이 자기 삶을 잃게 만들었다. 수동적인 인간기계로 변신한 인간의 도시에서 떠나 새로운 삶과 자기를 보는 제주올레로 발을 옮겨 보자.  

  '제주올레'에는 당신만의 길이 있다. 나만의 의미 부여로 이루어진 나의 길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제주올레를 걸으며 그런 길에 대한 명상을 해보는 것은 어떤가? 이 책을 읽으면 길에 대한 명상에 사로 잡힐 수 있다. 인간의 걷기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상섬 제주의 속살을 벗기는 재미가 있다. 책 중간 중간에 소개되는 제주의 풍경을 걷기로 마음에 배경을 남기고 싶은 생각이 샘솟는다. 그 사이사이에 제주어(토박이말)의 아름다움이 곳곳에 함께 한다. 송강 정철의 기행가사 관동별곡처럼 나만의 제주여행기를 한번 써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길 탐방, 걷기 여행을 꿈꿔 보게 된다. 

  제주를 가본 사람은 많지만 제주의 속살을 사랑해 본 사람은 드물거라 생각한다. 무형의 바람을 느끼는건 내 몸의 실오라기의 흔들림이다. 내 피부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이 햇볕의 따가움을 가르쳐 준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달빛의 밝음과 별의 얼굴들은 더욱 선명해진다. 제주는 언제나 제주지만 사람들에 따라 제주가 자연일 수도 인공일 수도 있다.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를 자전거보다는 걷기를 통해 제주의 하늘과 바랑과 바람과 그 속을 걷는 자신을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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