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한성우 지음 / 창비교육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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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 한성우, 창비, 2020.11.30.

 <책을 읽기 전에>

  말은 그 사람의 삶을 품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삶을 어떤 언어로 담아낼지 생각하는 언어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말을 합니다. 한 생을 두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살았나 되짚어 본다면 살아온 시간의 곱절이 걸릴지 모릅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어떻게 말하며 관계를 맺어 왔냐를 다 살펴야 하기에 그저 말하던 시간과는 또 다른 의미의 시간을 보낼지 모릅니다.

  지금껏 살아온 시간 동안 내가 한 말을 떠올려 봐도 '참 못된 말', '남에게 상처를 준 말', '깊은 위안을 받았던 말', '감사한 마음에 웃음 지어지는 말', '관계를 끊어 놓는 말' 등 참 많습니다. 입을 통해 말문을 열어 젖히고 나간 많은 말들이 꽃으로 피어나기도 하고, 화살로 박히기도 했습니다. 그 숱한 말 중에 상대방을 힘들게 한 말을 더 깊이 반성합니다.

  말은 관계를 담는 질그릇입니다. 윤기가 하나도 없는 진흙의 표면 그대로의 모습이 관계 속에서 어떻게 어루만져 지느냐에 따라 그 빛깔과 온도가 달라집니다. 그 질감이 결국 인간관계의 깊이가 되는 것입니다. 생각의 결이 잔잔히 흘러 마음의 온기를 전합니다. 말은 바로 그런 햇살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관계를 포근하게 감싸줄 수 있는 말 한 마디를 사랑스럽게 건네보는 하루를 보냅시다. 우리 모두가 자기 말의 주인이 된 참 말글살이 세상을 펼쳐 나갑시다.

  참 귀한 말을 글로 엮은 책을 읽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쓰고 있는 말의 주인은 나인데 늘 주변 사람들로부터 내 말을 평가 받고 살아왔다. 특히 국어 선생님이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어휘에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들로부터 지적을 당하며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마음껏 하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며 써왔다. ‘말의 주인이 되는 시간은 그런 이들에게 좀 더 당당하게 자신의 말을 있는 그대로 할 수 있도록 작지만 소중한 생각의 씨앗 하나를 심어주는 책이다. 나 또한 국어 교사로 살아오면서 강박관념처럼 떨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올바른 언어 표현이다. 혹시나 말을 하다가 잘못된 언어 표현을 쓰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글을 쓰다가 맞춤법에 어긋난 표현을 하면 어떡하지? 칠판에 판서를 하다가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들을 쉽사리 떨쳐낼 수가 없었다.

아내와 대화를 하는 중에 어릴 적부터 그렇게 써와서 입에 붙은 말을 별생각 없이 내뱉었다가 자기는 국어 선생님이란 사람이 그것도 제대로 쓰지 못하나?”라는 말을 들을 때면 갑자기 급체를 한 것 같이 체증이 밀려왔다. 때로는 자기 방어적 태도를 보일 때도 있다. 가령 벤츠에 가서 좀 앉았다가 가자.”라고 했는데 아내가 자기야, 벤츠는 차(), 저건 벤치(椅子)잖아.” 하며 잘못된 어휘 사용에 대해서 알려준다. 이럴 때면 참 멋쩍다. 또 하나는 발음의 문제인데 자기야, 저 양말[양발] 사자. 괜찮네.”라고 하니 자기야, 양발 아니고 양말이거든.”한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또 한 번은 교육 실습생 대표로 연구 수업을 진행하는 중에 상추쌈[쌍추쌈]을 싸 먹는다.”라고 발음을 해서 수업을 마친 후 강평하는 자리에서 예사소리[]로 발음해야 할 상추[쌍추]로 된소리[] 발음을 했다고 알려 주신다. 경상도 화자들은 예사소리를 된소리로 발음하는 경향(경음화)이 있는데 그것 또한 생활문법이 내 머릿속에 개념화 되어서 그런 것이다. 경상도 사람들이 잘 실수하는 발음 중에 버스[버스]를 버스[뻐스]라고, 효과[효과]를 효과[효꽈]로 발음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장면을 하도 짜장면이라고들 해서 복수표준어로 인정을 했죠. 실제 언어 생활에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어 그것이 잘못된 표현이었음에도 언중들의 사용 빈도와 표준어 요구를 반영한 결과로 표준어가 새롭게 제정되었죠. ‘예쁘다./이쁘다.’, ‘까다롭다./까탈스럽다.’, ‘차지게/찰지게’, ‘꾀서/꼬셔서’, ‘굽실거린다./굽신거린다.’, ‘보고 싶다./보고 프다.’, ‘건울음/겉울음’, ‘품세/품새’, ‘마을/마실이밖에도 간지럽히다, 남사스럽다, 동물, 맨날, 묫자리, 복숭아뼈, 세간살이, 쌉사름하다, 토란대, 허접쓰레기, 흙담, ~길래, 개발새발, 나래, 내음, 눈꼬리, 떨구다, 뜨락, 먹거리, 메꾸다, 손주, 어리숙하다, 연신, 휭하니, 걸리적거리다, 끄적거리다, 두리뭉실하다, 맨숭맨숭/맹숭맹숭, 바둥바둥, 새초하다, 아둥다웅, 야멸차다, 오손도손, 찌뿌둥하다, 추근거리다.’ 이런 말들이 복수표준어로 새롭게 추가되었다. 하나씩 그 언어 사용 상황별로 정확히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평소에 익숙하게 즐겨 썼던 잘못된 언어 표현의 경우에는 그것이 맞는 표현이라고 착각한 상태로 누군가 알려주기 전까지는 꾸준히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정말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대화 상대방이 잘못된 언어 표현을 사용해도 상대가 무안해 할까봐 정확한 언어 표현을 잘 가르쳐주지 않는다. 혹여 그것이 맞는 표현이라고 가르쳐줬다가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두 번의 언어 표현 실수가 있다. 짝사랑하던 아이와 채팅을 하던 중에 실증이라는 말을 썼는데 그 아이가 그건 싫증이지.”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후부터는 절대 그 단어를 틀리지 않는다. 잘못된 언어 개념을 그 계기를 통해 수정했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은 수업을 하다가 판서를 하면서 두루뭉실하다.’라고 썼더니 한 학생이 선생님, ‘두루뭉술하다.’인데요.”라고 하는 것이다. , 아닌데 두루뭉실이 맞는데했다가 잘못 사용한 줄 알고 다음 수업시간에 들어가서 잘못 가르친 것을 이실직고하고 정확한 표현이 무엇인지 다시 가르치면서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잘못 사용했는지를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동료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다 보면 자주 실수하시는 말이 바로 가르치다()’가리키다.()’. 아이들에게 이것을 설명하면서 우스갯소리로 선생님들께서 자꾸 너희들을 지적하다 보니 이것저것 가리킨다고 가르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말하나 보다 한다. “얘야, 저기 쓰레기 좀 주워라.”라고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시느라 직접 허리 굽혀 쓰레기를 주우면서 몸소 가르치시지를 않는 모양이구나! 했다. 그러면 애들이 맞다. 맞다.”라고 하면서 깔깔 웃어대고는 한다.

국어 선생님으로 웃지 못 할 이런 상황들 때문에 친구들과 누리소통망을 통해 대화를 나눌 때나 글을 쓸 때면 좀 아리송한 표현이 있으면 사전을 직접 찾아보고 정확한 표현을 익혀 사용한다. 금방 이 글을 쓰면서도 아리달송하다.’라고 적었다가 사전을 찾아보고 아리송하다.’, ‘알쏭달쏭하다.’가 정확한 표현이구나! 하면서 고쳐 썼다.

이렇듯 말의 주인은 말을 사용하는 당사자들인데 그 말을 마음 놓고 쓰지 못하는 우스운 지경이다. 혹여나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서서 말을 하는 것이 글을 쓰는 것이 참 조심스럽다. 앞선 상황들처럼 익숙하게 써오던 말들을 별다른 생각 없이 썼을 뿐인데 난감한 경험을 할 때가 종종 있으니 더 마음 편히 말하기가 쉽지 않다.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이 한국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런 것이 어휘의 적절성이나 발음의 정확성’, ‘표준어 구사’, ‘올바른 문법’, ‘맞춤법 준수’, ‘외래어 표기법’, ‘로마자 표기법등 정확하게 지켜야 할 언어 규범들이 너무 많다. 규범의 무덤에 갇혀 마음 편히 자유롭게 말을 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지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말의 주인들을 위해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생각들을 엮어 풀어놓은 20가지의 생각거리를 읽어볼 수 있다. 파란색 글씨로 써진 대화문을 통해서 그 장의 핵심적인 생각거리를 제시해두고, 그 생각거리에 대한 설명을 아주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그리고 그 생각거리에 대한 자신만의 명쾌한 주장을 곁들였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이에 대한 생각을 독자 나름대로 정리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논란이 될 만하거나 이슈가 될 법한 문제들을 끄집어내어 그 고민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국어를 전공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일반인들이 한국어에 대한 교양의 쌓기에도 좋은 책이다. 생각거리가 충분한 이 책을 들고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생각을 함께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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