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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14년 1월
평점 :
판매중지
아, 그렇구나. 사랑하는 가족을, 유일한 생계 수단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이 모든 것을 빼앗아간 것같은 쓰나미 이후에도 삶은 이렇게 계속되는 거구나.
등뒤의 것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게 바로 생명의 본능이구나. 새 생명이 태어나고, 아이들이 공부하고, 연인들은 결혼하고, 일터에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일상의 삶이 끈질기게 이어지는구나.
이곳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진다.
저 삶의 끈을 놓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다.
떠나기 직전 열다섯 살 난 모모가 한 말이 자꾸 목에 걸린다.
˝나는 그 동안 미쳤었어요. 전쟁이 나를 미치게 했어요!˝
목소리가 떨리도록 분노를 감추지 못했던 모모. 소총을 몸의 일부인양 가지고 다녀서 무장해제를 하니 어깻죽지가 허전하다던 모모. 그러나 작별인사로 라이베리아식 손 인사를 하니까 뒤집어지도록 좋아하던 모모. 난 정말 모모와 같이 미칠 뻔한 소년병들에게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고 싶다. 그 기회라는 것이 거창한 것은 아니다.
무거운 총 대신 무거운 책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것, 옆집 여학생에게 마음을 빼앗겨 밤잠 설치며 사랑의 열병을 앓는 것. 십대라면 누구라도 누릴 수 있는 그런 일상을 돌려주고 싶다.
작년에 한정된 구호 자금 때문에 한 마을은 씨를 배분하고 그 옆 마을은 주지 못했단다. 안타깝게 비가 오지 않아서 파종한 씨앗은 싹을 튀우지 못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씨를 나누어준 마을 사람들은 씨를 심어놓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수확기까지 한 명도 굻어 죽지 않았는데, 옆 마을은 아사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똑같이 비가 오지 않는 조건이었음에도 단지 씨앗을 뿌렸다는 그 사실 하나가 사람들을 살려놓은 것이다.
이곳에서 씨앗이란 존재만으로도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