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도 '바로 우리처럼'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예배당의 천장화, 바흐가 작곡한 [마태수난곡]을 현대적 의미의 예술작품인 양 대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은 편하다. 이런 생각은 대중용 개설서나 문집으로 인해 흔히 더 강해지기 일쑤다. 그러나 다음 몇 장에 대해서는 이런 관행이 얼마나 오해에 찬 것인지를 보여줄 것이다. 나는 현대화를 옹호하는 서사와 표현들이 숨기고 있는 편견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또한 그 서사와 표현들이 지닌 진실한 측면은 공정하게 다루고자 한다. 진실한 측면이란 순수예술이라는 현대의 이상 및 관행과 유사한 것들을 과거에서도 사실 드문드문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친숙한 측면들 때문에 마음이 풀어져 엄청난 차이를 보지 못하고 현대적 예술 관념이 항상 우리와 함께 있었다는 환상을 품는 것은 잘못이다. 분명히 현재는 과거부터 이어진 수많은 작은 발걸음들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점진적인 변화들이 마침내 뭉쳐 몇 세대 사이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지점들이 있는 법이다. 플라톤의 논평이나 도나텔로의 제스처에서 현대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쟁점이 아니다. 쟁점은 이상과 관행과 제도가 통합된 하나의 복합체였던 고대의 예술/수공예 체계가 '순수예술 대 수공예'라는 새로운 체계로 언제, 어떻게 대체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퀼트가 작품으로 인정받고 전시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바느질의 전통적, 사회적 개념은 여성의 전유물이었고, 수공예였으며, '의복'이라는 유용성의 일환으로 지극히 "생활적"인 것이었다. 예술을 대하는 요즘의 개념처럼 예술을 관조하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행위는 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예술의 개념적 변화(수공예 같은 일상적인 것과 미적인 것의 구분이 모호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분리된 관념론)가 현대적 개념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미학 이론 자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를 반영하는 측면의 '모방예술', 세계를 창조하는 측면의 '재현예술'을 간과할 수 없고, 모방과 재현이라는 것 자체가 자연과 인간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예술"이라는 용어의 확장성과 제한성을 어디에 둘 것인가가 필자의 쟁점이며 논지이다.


 내가 이런 책에 끌리는 이유는 음악이든 문학이든 미술이든 공연이든, 그것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어떤 "감정"을 논리적으로 확인하고 싶어서다. 철학의 한 분과가 미학이고, 이 범주 안에 논리학과 수사학도 포함되어 있으니 가능할 것 같지만 쉽지 않다. 표현되는 것과 느끼는 것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다음의 책들도 읽어보고자 한다.
















철학에 꽂혀서는, 종종 이런 책들을 책장에 두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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