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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없는 여자와 도시 ㅣ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평점 :
아래의 문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는 아니지만, 읽자마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은 내가 언젠가 이러한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리라. 만나고 나서 정서적 안정감과 함께 물리적 에너지를 얻는 관계가 있고, 만나고 나면 가지고 있던 하루 분량의 에너지가 소진되어 배터리 충전하듯이 육체와 정신을 쉬게 해야만 다음 날을 살아갈 수 있는 관계도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좋고 어느 쪽이 더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의 활기는 내게 더하기가 될 수도 있고, 빼기가 될 수도 있는데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만날 때의 날씨나 상황", "만나기로 한 약속 진행의 순조로움", "만났을 당시의 대화의 순조로움", "서로에 대한 이해관계의 조화로움", 그리고 특히 "그 날의 내 컨디션이나 상대방의 컨디션이 어떠하냐" 등의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어려운가. 기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온 우주가 나를 도와야지 않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나는 기질적으로 활기가 샘솟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가진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노력해서", "한껏" 끌어올리려고 힘써야 하는 사람이다. 나는 톤이 낮고 색채가 옅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보다 톤이 높고 색채가 화려한 사람보다 내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이대로의 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활기가 넘치는 사람의 에너지에 끌려 파도에 휩쓸리듯 집어 삼켜지고 싶지는 않다. 파도에 휩쓸렸던 때가 있었다. 그 파도에 휩쓸리면 높이 오를 때는 신이 나지만 파도가 끝나고 물 속에 내팽개쳐졌을 때는 염도 높은 소금물을 잔뜩 먹게 되니 말이다. 관계의 바람과 파도를 잘 타기에 나는 아직 왕초보 서퍼임이 틀림 없다.
우정이건 사랑이건 개인과 개인의 연대는 쉽지 않다. 한 개인의 역사는 먼 우주로부터 온다. 그래서 더 애써야 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은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일 뿐이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우주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어려운가. 인간을 이해하고 보듬는다는 것은. 그것은 필시 자기 자신일지라도 도저히 수용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우정에는 두 가지 범주가 있다. 하나는 서로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관계고, 다른 하나는 활기가 있어야만 같이 있을 수 있는 관계다. 전자는 함께할 자리를 미리 마련해두지만, 후자는 일정 중에 빈 자릴 찾는다. 전에는 이런 구분을 일대일 관계의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요즘은 그렇다기보다 기질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내 말은. 기질적으로 활기가 샘솟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게 일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다. 활기있는 사람들은 자기를 표출하고 싶어 안달이지만, 그런 게 일인 사람은 쉽게 울적해진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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