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법한 유명하고도 오래된 책이라 책바구니에 오랫동안 담겨있던 책이었다. 모두들 단순히 병리학적-이라 쓰고 정신병자들의 기행이라 읽는다- 사례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력이 발군이라고들 칭찬했지만 흥미위주의 제목이 어쩐지 탐탁치 않아 잘 사게 되지않았다.
쉽게 쓰여진 책이라 해서 머리 아픈 것도 가실겸 집어들었던 책이라 그랬는 지는 모르지만 제목을 포함한 책의 초반부는 정신병자에 대한 동정이나 경멸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의사로서의 저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긴 했지만 단순한 기현상의 나열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현상이니만큼 흥미가 동하는 점도 없진 않았지만 계속해서 보게 되면 질리기 마련이고 결국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날 하루를 마치고 다시 돌아와 침대에 있는 책을 집어들긴 했지만 이미 기대는 어느정도 꺾인 다음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빛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제3부 이행은 기억과 정체성을 다루고 있는데 어렸을 때 간질환자의 발작을 보았던 공포가 다독거려졌던 것이 큰 이유가 된 것 같다. 기억에 대한 저자의 태도가 좋아하는 철학자인 베르그송의 입장과 비슷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책의 백미는 마지막 장인 단순함의 세계이다. 소위 저능아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저자의 묘사와 태도는 너무나 훌륭해서 지각있는 사람이라면 다시한번 자기 삶의 태도를 점검해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저능아들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보통 무시가 전제된 동정과 공포가 뒤섞여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임과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수 잇는 위험한 존재로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치'에 대한 우리들의 이미지에는 뭔지 모를 순수함이 남아있다.
저자는 그 순수함-만족한 듯한 태도가 그들의 정신이 가지고 있는 질서와 조화로 인한 것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지적능력은 보통사람에 이르지 못할지라도 정신세계는 성숙한 인간 못지 않음을, 오히려 보통사람들보다 기묘할 정도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차분하면서도 감성적인 언어로 읽는 사람을 설득한다.
비장애인으로서 나는 장애인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기가 늘 어렵다.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다는 그들을 구체적인 관계에서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적능력이 부족한 장애인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그들을 인격체로서 대할 수 있게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저자가 묘사한 정신적 조화와 질서가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되고 말았다.
질서와 조화란 말은 너무나 고루해서 신심이 깊은 종교인이 아니면 거의 입에 담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고루하다는 것이 그것이 가진 의미를 퇴색하게 하지는 못한다.
저자의 다양한 임상경험을 한 책에 묶었기 때문에 책으로서 전체가 가지는 주제는 분산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 개별 글들은 그 논지를 확실히 하고 있고, 다양한 세계를 접한 만족감을 준다. 연구대상으로서의 정신이 아닌 삶으로서의 정신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심리학에 특별히 관심이 없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부모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무엇보다 늦은 시간 지인에게 줄 선물로 다시 이 책을 주문하고, 그의 다른 글들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로그인에게 할정도의 가치는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p.s. 저자의 글에서 자주 언급되는 루리아는 국내에는 '루리야'로 불리는 것 같다. 저서중 산산히 부서진 사나이는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로 번역되어있고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도 번역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