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클리벤의 금화 1
신서로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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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클리벤의 금화』는 어떤 장르라고 소개해야 할까요? 가상의 세계를 설계하고 서로 다른 세계관을 토대로 살아가는 인물들을 배치하고 초월적인 요소가 들어간 정통판타지? 끊이지 않는 교섭의 굴레? 부(富)의 정체를 찾아가는 여정? 각자의 위치와 가치관, 이해관계, 그리고 성질머리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들이 이리저리 얽히고 부딪히는 군상극? 현대 사회의 우화? 이 모든 것이 『피어클리벤의 금화』를 설명하는 요소일 것입니다.


작품은 용과 마법의 힘으로 제국의 형태를 유지하는 중세 유럽처럼 시작합니다. 주인공도 (변방의) (가난한) 남작 영애이고요. 주인공이 초월적인 존재부터 평민 신분의 영지민, 마수(?), 무해한 유랑민(?), 모험가 집단, 자유도시의 조합원을 만나는데요, 만나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말투가 바뀌는 점이 섬세합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비격식체 두루높임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어요. 소설이 신분제를 정당화하지는 않지만, 신분제 사회인 것이 등장인물들의 언행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이처럼 신분제도, 통치체계, 지역의 특색, 민족/종족별 신앙과 풍습과 같은 세세한 설정들이 많은데, 사건과 대화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알려집니다. 어떻게 해야 예의 바른 행동인지, 적절한 처신이 되는지, 혹은 모욕이 되는지, 주어진 상황에서 합리적인 행동은 무엇이었을지 등등 인물의 말과 행동과 연결되어서 설명되거든요. 

그런데 작품 내내 주인공은 '상식적으로' 만날 일이 없는 이들과 계속해서 교섭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고정관념과 현실의 괴리에 어리둥절하는 모습도 많이 나오고, ‘발칙한’ 행동을 하는 캐릭터들의 행동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식의 개그 요소들이 많아서 발랄한 인상도 들어요. ‘어려운 말’을 그렇게나 하는데도 말이죠. ‘본래 소심하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는’ 울리케의 예의 바른 하극상, (1, 2권까지는) 의뭉스럽기 짝이 없는 빌더ㄹ..아니 빌러디저드, “단호함과 통찰, 재기의 현신” 아우케트 칸 아디우크와 오늘만 알고 사는 것 같은 시야프리데, 친절한데 차가운 천재 마법사 시그리드, 잘났는데 재수 없는 크누드, 이웃집 반신 뉘르뉴. 개성이 뚜렷하고 결점도 가진 뛰어난 인물들이 저마다 망가지면서도 스스로의 길을 추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들이 언쟁하고 투닥거리고 대화하는 모습도 재미있고요.


인간 중심적 사상과 제국주의, 정복과 배척 위에 설계된 체제, 자원의 분배와 권력의 양상 등 현대사회의 우화로 해석할 여지도 많은 작품입니다. 뒤로 갈수록 더더욱 이런 지점들이 많아져요. 얼른 뒷내용도 출간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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