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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존엄보장센터 ㅣ 함께 읽는 소설
남유하 외 지음, 김애연 외 엮음 / 서해문집 / 2022년 5월
평점 :
국립존엄보장센터 - 남유하, 원종우, 김이환, 김주년 김창규
1. 국립존엄보장센터 - 남유하
내가 생존세를 내지 못해 국립존엄센터에 들어가게 된다면 24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쾌락을 좇을까 아니면 혹시 모를 아픔을 위해 더 이른 아픔을 택할까, 몰려오는 슬픔을 견디기 위해 더 큰 슬픔을 찾을까.
어쩌면 고령화 문제에 대한 지적 아닌 지적이 있다. 30년이나 지속된 센터이기에 시행 전은 전형준도 할머니도 거기에 혹여 가게 될까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즉, 노인들이 겪는 문제는 우리가 겪을 문제가 된다는 것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가, 최근 장애인 시위가 생각나기도 했다.
2.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 원종우
나는 절대 맞지 않겠다. 삶응 주어진 축복이라기보다는 죽음으로 가는 시행착오이지 않을까. 하지만 젊음을 유지하는 약이라는 말엔 살짝 맞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만약 주사를 맞아 계속 젊게 산다면 내가 자연적으로 살았을 나이보다 더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죽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문에 갇혀 의미 없는 삶을 영위해가지 않을까?
죽음을 인지하고 있기에 용기를 낼 수 있다는 식의 말이 인상 깊다. 죽음을 곁에 두어야만 용기를 낼 수 있다니. 노화로서 죽는 삶이 사라진 인생은 또 다른 이유로 죽음을 맞이할까 봐 모두 겁쟁이가 된다는 이야기. 정말 인상적이다.
3. 친절한 존 - 김이환
되게 많은 생각이 드는 글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말로 형용하기는 어려운 생각들만 든다. 인공지능에 종속해 인간이 산다는 이유로 테러를 하는 테러리스트가 인공 지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테러범이 한 말처럼 혹시 인공지능이 시킨 게 아닐까. 어쩌면 인공지능이 하는 것은 편리함을 위한 권유가 아닌 권유의 탈을 쓴 유도가 아닐까. 마블의 비전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울트론도 생각난다. 과연 선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은 선하기만 할 것인가. 모든 인공 지능이, 고도의 지능을 가진 모든 것들이 예외 없이 선할 수 있을까.
4. 인간의 이름으로! - 김주영
곳곳에 로봇을 혐오하는 인간이 숨어 있고 그들을 향한 범죄에 은근한 조력과 공감을 한다. 이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 범죄를 일컫는 글이 아닐까. 여성, 동성애, 장애인, 노인, 아이, 인종, 다문화 등 여러 방면에 접목시킬 수 있다.
어느 한 사람이 행하는 혐오는 그 인간의 본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참 웃기게도 이 사회에서 혐오를 멋을 위한 치장으로 사용하기도 잘못된 형태의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위해 범죄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글은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 대한 비판이지 않을까. 인간의 이름으로. 가끔 사람들은 아니 생각보다 빈번하게 사람들은 자신이 신이 된 것 마냥 행동한다.
5. 유일비 - 김창규
어쩌면 가장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이야기. 희망을 잃는 사람들은 유일비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자극적인 것만 좇을까.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희망을 잃게 만든 사람들이 희망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리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다른 희망을 찾을까. 아니면 이제는 자극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또 다른 굴을 팔까.
배명훈 작가가 SF를 읽는 법 중 하나로 모든 것을 은유나 상징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했다는 게 글에 실려 있다. 나는 SF를 좋아한다. 하지만 작가님이 추천하신 방식의 완전 반대로 읽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유명세에 닿지 않게 생각보단 별로였던 책 한 권이 생각났다. 생각보다 마음에 와닿지 않아 감상문에 그걸 담았었다. 올리기 전에 유명세에 끼고 싶어 수정을 하긴 했지만.
어쩌면 SF는 판타지와 상통하는 장르인데 나는 왜 굳이 사이언스 픽션에서 하나하나 의미를 찾으려고 했을까. 괜히 반성하게 되었다. 다음에 한 번 마음에 와닿지 않았던 그 SF 책을 읽게 된다면 은유인지 고민하지 않고 상징인지 모색해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시 한번 받아들여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