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름은 어디에
재클린 부블리츠 지음, 송섬별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5월
평점 :
절판


책 커버에 적혀있던 “오해 마시라. 이 소설은 죽은 소녀를 다룬 추리물과 전혀 다르다.”와 책 시작 부분에 ‘냉장고 속의 여자’를 다루는 것은 아니라는 식의 설명을 보자마자 두근거렸다. 과연 여성의 죽음을 어떻게 풀어냈을 것인가. 남성 인물의 각성, 재앙의 알림 등이 아니라 그 죽음을 어떻게 여성 중심으로 풀어낼 것인가.

최근 서평단으로 외국 작품을 자주 접하고 든 생각이 있다. 한국문학과 달리 외설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그것이 문화의 차인지 작가님의 특성 차인지는 쉽게 재단하지 못하겠지만 같은 소설이라는 장르임에도 간극이 꽤 크다.

우리는 언제까지 여성들의 죽음에 애도를 표해야 하는가. 언제까지 그녀들의 죽음을 눈앞에 두어야 하는가. 엄마와 언니, 친구들 모두를 아울러 자매로 칭한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자매들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가. 언제까지 죽은 자매들을 보며 반복되질 않길 바라야 하는가. 언제까지 범죄들에게 주어지는 솜방망이 처벌을 바라만 봐야 하는가.

이 사회는 언제까지 혐오 범죄의 대상이 된 피해자에게 질문을 던질까. 왜 그런 옷을 입었는지 왜 그런 화장을 했는지 왜 혼자였는지 왜 늦은 시간에 밖이었는지 왜 그런 곳을 갔는지 왜 그런 사람을 만났는지. 소름 끼친다 . 저런 질문을 던지는 인간들은 자신 안에 범죄자와 같은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고 자인하는 꼴이다. 저런 질문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여성들을 피해자로 방임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제목이 ‘네 이름은 어디에’가 아니라 내 이름은 어디에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죽은 여성들,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주는 메세지라면 ‘내’보다는 ‘네’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과연 제목을 정할 때 이런 이유였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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