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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 인류의 재앙과 코로나를 경고한 소설, 요즘책방 책읽어드립니다
알베르 카뮈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1월
평점 :

지금의 상황과 신기하리만치 닮아 있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
395. 그는 기뻐하는 군중이 모르고 있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 동안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도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집요하게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또다시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저 쥐들을 불러내, 어느 평화로운 도시로 몰아넣어 그곳에서 죽게 할 날이 오리라는 것을.
잠재되어 있는 불안의 결말마저도 똑같다.
어느 날 별안간 시작된 쥐들의 죽음. 순식간에 사체들이 쏟아져 나오고 곧 사람도 하나둘 쓰러져 갔다. 사건을 축소하며 미진한 대응을 하던 당국은 상황이 급박해지자 허둥대며 시를 봉쇄해버린다. 외부와 단절된 채 페스트와 혈투를 벌이는 오랑市. 병실은 순식간에 꽉 차고 비어 있는 모든 공간에 임시 병동이 설치된다. 희생자 수는 급증하고 넘쳐나는 시체들,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과의 생이별, 죽음.
그 공포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다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 리외,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의문의 남자 타루, 외면하다 결국 자원보건대에 참여하게 되는 랑베르, 의미 없는 설교를 박차고 현실로 뛰어든 파늘루 신부, 가족을 잃은 슬픔을 봉사로 대신하는 그랑, 나름대로 적응해 사는 코타르, 아랑곳하지 않고 이기적인 사람들 등 소설 페스트 속 오랑 시의 모습과 사람들은 영락없는 코로나 현실을 그리고 있다. 군대와 교도소마저 등장해서 놀랐다.
'이제 끝나도 좋을 텐데.'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느꼈을 극도의 피로감과 끝나지 않을 듯한 기세에 느낀 무기력감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개인방역과 외출 자제밖에 하는 것이 없으면서 답답함을 토로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 멀리서 바라만 봐야 했던 가족들, 백신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 다시 보였다.
관찰자 시점에서 그려지고 있는 이 소설은 타루의 메모와 인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덤덤히 그려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결말에 가서 그 관찰자가 리외임을 밝힌다.
오랑시의 문이 다시 열리며 축제 분위기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보며 잊혀버린,
페스트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희생된 사람들과 그들에게 가해졌던 불의와 폭력을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재앙 속에서 배운, 인간은 경멸보다 찬미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말해두기 위함이라고.
이 또한 지금 우리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우리도 어느 순간 고통의 시간들을, 그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잊을지 모르겠다.
소설에서 가장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는 부분이 그들의 고뇌와 고통이었기에 잊는다는 자체에 죄책감마저 든다.
'... 페스트가 뭐기에?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그뿐이죠.'
시공간을 초월해 인간은 언제나 똑같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코로나는 지나가버리면 끝나는 한순간이 아니라 인생 안에 늘 잠재하고 있는 일부라는 것. 그 모든 희생을 안도와 기쁨, 자유에 희석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