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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법학 에세이 - 곽한영 교수와 함께 생각해 보는 사람을 향한 법 이야기 ㅣ 해냄 청소년 에세이 시리즈
곽한영 지음 / 해냄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향한 법 이야기.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소수에 해당하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그런 감이 없지 않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뭐~ 무관심이었다면 이제는 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나 한 사람의 변화라기보다는 이제는 사회가 요구하는 그런 시대가 아닐까. 나만 뒤늦게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사람을 향한 법 이야기라는 부제에 기대감이 컸다.

학창 시절 뭣도 모르고 외워서 시험 보기 바빴던 과목이라 어렵다는 인상뿐이다. 배우기는 하지만 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야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법인지 관심 갖게 되었고 부당한 상황에 마주했을 때 과연 옳은 것인가 의문을 갖게 되었다. 교과서가 어찌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예전 같지는 않기를. 법에 대한 개론서가 아니라 진정한 법의 의미를 알려주고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본질적인 부분을 일깨워주는 이런 책이 무척 반갑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지만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들은 그 이상을 담고 있다. 청소년 인문학으로 수능 논술을 위한 필독서일 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1987년 민주 항쟁에 앞장서고 부정선거에 맞서 싸운 김용현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후 의문사한 군인의 진실을 밝히려고 하다 모진 고문을 당했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자원봉사자로 뛰어들고, 정선 지역 폐사 농가들의 피해 보상을 위해 애쓰고, 산불 감시를 하는 등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는 일들에 헌신하며 일생을 보냈다.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온몸을 바쳐 사람들을 도운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저자는 법에 대해 배우는 것은 이렇게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을 머리로 배우고 뼈에 새기는 일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 나에게는 왜 이리 낯선 걸까.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하고 맞서 싸운 그들의 흔적을 통해 법에 대한 시각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책이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법의 기원부터 살펴본다. 고대국가 성립 조건 중에 법률 제정이 있다. 통치권력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 처음에는 신의 힘을 빌렸지만 중세 이성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혼란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 그 절정에 마녀재판이 있다. 마녀재판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하다. sns의 무서운 힘이 부정적으로 치닫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왜 여전히 그런 사태를 불러오는 것일까. 2장은 법의 중심이 되는 헌법에 대해 다룬다. 3장은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하는 서프러제트 운동, 미국의 흑인차별,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 호주제 폐지, 사형 제도 등 인권을 둘러싼 역사적인 사건으로 법을 조명해본다.

4장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정의를 지킨 사람들, 김병로 대법원장, 지오반니 팔코네 판사, 후세 다쓰지 변호사, 여성 변호사 이태영의 치열한 삶을 통해 오늘날의 법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누군가의 희생이 밑거름이 되고 계속 이어져 오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5장은 노예 제도, 다수의 이익의 위해 소수에게 가하는 폭력은 합당한가, 무책임한 범죄는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등 역사적 사건을 통해 법과 인간을 둘러싼 논쟁을 이야기하고 있다.
133. 흔히 우리는 '좋은 게 좋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에게 좋은 것인지, 혹 누군가에게는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반성하고 고쳐 나갈 때 비로소 '좋은 것'이 됩니다.
인류 역사에서 좋은 것, 더 나은 상태는 늘 기존의 것에 집착하는 이들이 아니라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위대한 반대자들에 의해 이루어져왔습니다.
263.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어떤 것이 옳은 일이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 매번 고민하고 반성하며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의 힘으로 세상의 부당한 일을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한 명 한 명의 생각이 모이고 쌓이면 '정의의 평범성'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또는 당장의 현실을 봐도 법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그렇다고 몇몇의 누군가에게 떠맡길 일도 아니다. 작은 발단이 큰 변화를 가져오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모두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 법의 가치와 존재 이유를 깊이 생각해볼 수 있게 안내해준다.

중간중간 보충 설명이 곁들여 있어 이해를 돕고,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생각해 볼 문제를 던져 준다. 이 부분이 몹시 어렵더라는. 논술 수능을 대비해야 하는 아이들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이 책을 꼼꼼히 읽어본다면 큰 도움이 될 듯.

우리나라 제헌헌법에 대해 내가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임시 정부의 법통을 따르고 있다고 하지만 일본과 미국 헌법을 그대로 따라 한 것으로 생각했다. 단정 지어 생각했던 것과 달리 임정 때부터 계속 수정 보안을 거쳐 왔고 짧은 시간에 헌법 제정이 이루어져야 했던 당시 초안을 작성한 유진오 교수는 오랜 경험을 가진 일본, 미국을 비롯 프랑스, 중화민국, 필리핀, 오스트리아 등의 헌법을 모두 참고했다고 한다. 막무가내로 짜낸 헌법이 아니라는 것. 그 뒤로 잘못된 개정이 많다 보니 오해가 더 심했던 것 같다. 자부심을 가질 만한 헌법이더라는.

한 장이 끝날 때마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코너를 통해 깊이 있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생각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제1공화국에 대한 지식들은 거의 부정적인 내용뿐이다. 법관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였는데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의 삶은 그 자체로 법의 가치를 드높여주는 듯했다. 목숨을 걸고 법을 수호한 이탈리아의 지오반드 팔코네 판사, 일제 강점기 일본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박열 등 독립투사들의 변호해 준 후세 다쓰시 변호사, 여성의 법적 권리를 위해 쉼 없이 노력한 이태영 변호사 등 알지 못했던 이들의 희생에 법이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법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소로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는 #청소년인문학 으로 강추.
자신의 생각을 피력해야 하는 #수능논술 대비에 최적의 교과서가 될 #청소년필독서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