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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 환상적 모험을 통한 신랄한 풍자소설, 책 읽어드립니다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걸리버 여행기에 이런 뒷이야기(?)가 있었다니???
이럴 적 누구나 몇 번씩은 읽었을법한 그런 명작동화가 아니었나.
실체는 신랄한 정치풍자소설이었다.
정치행태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다는 데서 다시금 놀라움을 느꼈다.

얼마나 노골적이었으면 감옥에 갇힐 각오로 펴낸 소설이다.
정치풍자소설은 낯설지만 이 정도면 대놓고 비판하는 것보다 더 화가 날 법하기도 하다.

소인국 릴리퍼트 기행, 거인국 브롭딩낵 기행,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와 정복 도시들, 일본 기행, 그리고 말들의 나라 휴이넘 기행까지 선상 의사인 걸리버가 바다를 항해하면서 만나는 이상한 나라의 모험 이야기.
소인국과 거인국을 다룬 여행기로 깊이 인식되어 있다가 원작 소설은 충격 자체다.

친근한 이 그림.
그림 동화로 그렇게 깜찍하게 위장하고 있었다니 그래서 더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소인국에서는 높은 관직을 얻기 위해 황제 앞에서 줄타기 묘기를 하는 등 위험을 무릅쓴다. 정치는 역시 줄타기인가. 달걀을 좁은 쪽으로 깰 것인가, 넓은 쪽으로 깰 것인가. 하찮은 일로 당파 싸움이 끊이지 않고 전쟁을 벌인다. 서술하는 매장면이 역사 속 사건이나 현재의 정치 모습을 자연스럽게 상기시키니 신기할 따름이다. 18세기 문학이 꾸준히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보다. 시간이 흘렀을 뿐 인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
두 번째 거인국에서는 하찮은 벌레나 애완동물 같은 대우를 받는다. 갑자기 소인이 되어 버린 걸리버 입장에서도 거인의 된 인간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도 추해 보이기만 한다. 영국에 대해 궁금해하는 국왕에게 영국에서 벌어진 역사적인 사건과 제도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정치 풍자는 신랄하다.
168p. 국왕은 경악했다. 그것은 음모, 반란, 살인, 학살, 혁명, 추방의 연속이며 탐욕, 편파, 위선, 불신, 잔인, 분노, 광기, 증오, 질투, 욕망, 악의, 야심이 빚어낸 최악의 결과라고 평했다.
(중략)
그대의 얘기와 내가 이끌어낸 대답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대의 동포들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세상을 기어 다니게 된 생명체 중에서 가장 해롭고 역겨운 해충이라는 결론을 나는 내릴 수밖에 없다네,"
하늘은 나는 섬, 라퓨타 기행.
자신밖에 모르는 지배층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행태를 그린다. 수학과 음악, 사색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한 존재다. 그렇기에 라퓨타가 지배하는 지상의 도시는 가난과 고통만이 가득한 그야말로 지옥이다. 그 와중에 지식층은 오이에서 햇빛을 추출하고 똥을 음식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무의미한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다.
걸리버는 말들의 나라, 휴이넘에서 이상적인 정치 모습을 발견한다. 교양 있고 절제할 줄 알며 지적인 휴이넘 사회는 의심이나 불신이 없고 거짓말이라는 단어조차 없다. 반면 휴이넘에게 지배를 받고 있는 야후라는 동물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매우 추악하고 비열한 족속으로 그려진다. 걸리버는 오랜 시간 여행을 다녔지만 그 어디에서도 이렇게 구역질 나고 반감이 드는 동물은 없었다고 말한다.
점점 더 휴이넘의 고귀함에 반한 걸리버는 급기야 휴이넘을 닮고자 흉내내기에 이른다.
다시 인간 사회로 돌아온 걸리버는 마치 야후 세계에 떨어진 것 같아 적응을 못한다.
누가 또 이런 기발한 상상력을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설 전체에 지루함이 없다.
인간의 부정적인 면을 모두 담아 아무렇지 않게 비판하는 스토리가 통쾌하면서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