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뒤락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9
애니타 브루크너 지음, 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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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워지지 않는 결여에 대한 의문 -호텔뒤락

 

'워킹맘은 가정에선 나쁜 엄마, 직장에선 왕따다.'는 기사 제목을 봤다.
여성이 일과 가정에 모두 매진할 수 있도록 전혀 뒷받침해주지 않는 사회제도를 비판한 말인데, 여성이 사회활동을 시작한 17세기부터 지금까지 전혀 바뀐 것은 없어보인다는 안타까운 현실에 한번 더 좌절하게 된다.

 

'직업은 자아 실현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 엄마나 아빠는 직업이 아니다. 그런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니. 여성들로서는 어마어마한 생의 압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엄마의 역할을 잘 하자면 직업적 성취를 이룰 수 없고, 그렇다면 '어머니'가 아닌 오롯한 '나 자신'으로서의 성취는 불가능한 것일까? 사회적 복지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이런 상황의 딜레마에 대해 소설은 계속해서 의문을 던진다.

 

 주인공 이디스는 로맨스소설을 쓰는 성공한 작가다. 그럼에도 결혼식을 망쳐버린 그녀는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호텔 뒤락으로 간다. 휴가철이 끝난 무렵의 호텔에서 그녀가 마주하는 '여성'들은 가정이라는 체제 안에서 자기 스스로의 정체성과 성취를 묻은 채 사치를 즐기는 사람들과, '어머니'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가정'안에서까지 쫓겨나 결국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거식증 여성이다.

 

하지만 이제는 가엾은 우리 엄마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면서 삶이 돌려준 그 슬픔과 혼란스러움과 외로움을 알게 되었거든요. 어머니는 내게 자신의 무지몽매함을 그대로 물려주었어요. 가혹하고 실망스러운 현실 속에서 어머니는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연애담으로 위안을 얻었지요.
... 어머니가 책에서 눈을 들면 그 눈빛도 푸른색에서 회색으로 바래 있었어요. 꿈과 그리움과 환멸에 가득 찬 눈빛이었지요.


 

그녀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내려온 이 공허감. 이것은 아주 오랫동안 여성들이 당면해 왔던 문제일 것이다. 작가는 모든 여성의 대변자로서 가정을 빼고 '한 사람'의 여성에게 남는 것. 혹은 '자신'을 이루고자 하는 한 사람의 여성에게 있어 '가정'이 얼마나 큰 압박으로 다가오는지를 묻는 것이다. 어떤 한 편에 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 답은 있을까?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우리는 답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처럼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된 이디스. 그러나 그녀는 묻는다. '자기만의 방'으로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결여는, 정체가 무엇이며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를 사랑하는 남편이 함께였고, 그녀를 인정해주는 동료 남성들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가 아닌 다른 여성이 주위 남성들에 의해 어떤 인정도 받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녀가 '그녀'스스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여성과 공존하는 남성이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여성에 대한 배려의 차원이 아니라 여성을 동반자로 삼기 위한 의무이다.

 

이 의문이 다음 세대에도 똑같이 유효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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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뒤락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9
애니타 브루크너 지음, 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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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워지지 않는 결여에 대한 의문 -호텔뒤락 

 

'워킹맘은 가정에선 나쁜 엄마, 직장에선 왕따다.'는 기사 제목을 봤다.
여성이 일과 가정에 모두 매진할 수 있도록 전혀 뒷받침해주지 않는 사회제도를 비판한 말인데, 여성이 사회활동을 시작한 17세기부터 지금까지 전혀 바뀐 것은 없어보인다는 안타까운 현실에 한번 더 좌절하게 된다.

'직업은 자아 실현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 엄마나 아빠는 직업이 아니다. 그런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니. 여성들로서는 어마어마한 생의 압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엄마의 역할을 잘 하자면 직업적 성취를 이룰 수 없고, 그렇다면 '어머니'가 아닌 오롯한 '나 자신'으로서의 성취는 불가능한 것일까? 사회적 복지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이런 상황의 딜레마에 대해 소설은 계속해서 의문을 던진다.

 주인공 이디스는 로맨스소설을 쓰는 성공한 작가다. 그럼에도 결혼식을 망쳐버린 그녀는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호텔 뒤락으로 간다. 휴가철이 끝난 무렵의 호텔에서 그녀가 마주하는 '여성'들은 가정이라는 체제 안에서 자기 스스로의 정체성과 성취를 묻은 채 사치를 즐기는 사람들과, '어머니'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가정'안에서까지 쫓겨나 결국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거식증 여성이다.

하지만 이제는 가엾은 우리 엄마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면서 삶이 돌려준 그 슬픔과 혼란스러움과 외로움을 알게 되었거든요. 어머니는 내게 자신의 무지몽매함을 그대로 물려주었어요. 가혹하고 실망스러운 현실 속에서 어머니는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연애담으로 위안을 얻었지요.
... 어머니가 책에서 눈을 들면 그 눈빛도 푸른색에서 회색으로 바래 있었어요. 꿈과 그리움과 환멸에 가득 찬 눈빛이었지요.

그녀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내려온 이 공허감. 이것은 아주 오랫동안 여성들이 당면해 왔던 문제일 것이다. 작가는 모든 여성의 대변자로서 가정을 빼고 '한 사람'의 여성에게 남는 것. 혹은 '자신'을 이루고자 하는 한 사람의 여성에게 있어 '가정'이 얼마나 큰 압박으로 다가오는지를 묻는 것이다. 어떤 한 편에 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 답은 있을까?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우리는 답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처럼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된 이디스. 그러나 그녀는 묻는다. '자기만의 방'으로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결여는, 정체가 무엇이며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를 사랑하는 남편이 함께였고, 그녀를 인정해주는 동료 남성들이 함께 있었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가 아닌 다른 여성이 주위 남성들에 의해 어떤 인정도 받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녀가 '그녀'스스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여성과 공존하는 남성이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여성에 대한 배려의 차원이 아니라 여성을 동반자로 삼기 위한 의무이다.

이 의문이 다음 세대에도 똑같이 유효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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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7
페데리코 안다아시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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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마테오 레알도 콜롬보, 해부학자. 이름이 비슷한 콜럼버스와의 공통점이라면, 역사에 길이 남을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가장 신비한 곳, 실제적인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여성의 성감대다.

마테오 콜롬보 본인이 이름붙인 이 신대륙의 이름은 '비너스의 사랑'이다. 여성의 모든 사랑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 마테오 콜롬보 그 자신 또한 여성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갖가지 노력을 다 한 끝에 발견한 것이니 어찌 '사랑'이라 이름붙이지 않을 수 있을까.

책은 조금 민망한 마테오 콜롬보가 그 부분을 발견한 것에 대한 이야기 이외에도, 종교의 시대에 과학을 탐구하고자 하는 정신, 그 정신이 종교라는 틀에 갖혀 발현될 때에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지가 자세히 드러나 있다. '악마의 발견'을 했다는 죄명으로 고소당한 마테오 콜롬보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설명할 때에 정자와 난자의 역할에 대해 말한다. 정자는 수정되면서 사람의 영혼을 만들고, 여성의 난자는 단순히 물질만을 제공해 줄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브가 원죄를 가졌듯 여성들이 영혼이 없고, 이성이 없는 이유이며 약한 도덕성을 가진 이유라고 한다.

현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이 견해는 과학적 발견들이 중세 엄격한 종교의 틀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발현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 시대에 뿌리깊게 박혀있던 '여성은 사람이 아니다'는 견해는 열받지만 제외하고 보면, 성서의 틀 안에서 자신의 과학을 설명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어떻게 보면 상상력이 넘치다가도 한 편으로 하나의 철학줄기를 잡고있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먼 그리스로부터 시작된 영혼과 몸의 이분법에서부터 , 몸은 그저 기계적으로 연쇄반응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는 행동주의까지, 마테오 콜롬보의 견해에는 사람의 영혼과 욕망에 대한 스펙트럼이 담겨있다. 그를 둘러싼 두 명의 여성들로 인해 밝혀낼 수 있었던 '비너스의 사랑'과 함께 암흑의 시대였던 중세의 이야기가 또한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 안에는 종교재판과 마녀 사냥, 악마 숭배 등 가장 자극적이고 흥미있는 역사가 담겨있고, 그 중점에 마테오 콜롬보의 '비너스의 사랑'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경건함을 내세웠던 중세라 할지라도, 결국 인간사는 어쩔 수 없이 욕망과 관계되어있는 건 아닌가 한다. 교황의 더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 남성과 여성의 사랑받고 쾌락을 느끼고 싶은 욕망, 해부학자의 자신의 연구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 그런 욕망들 말이다. 이것은 거대하고 딱딱한 종교 안에서도 소용돌이 치는 삶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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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7
페데리코 안다아시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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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마테오 레알도 콜롬보, 해부학자. 이름이 비슷한 콜럼버스와의 공통점이라면, 역사에 길이 남을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가장 신비한 곳, 실제적인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여성의 성감대다.

마테오 콜롬보 본인이 이름붙인 이 신대륙의 이름은 '비너스의 사랑'이다. 여성의 모든 사랑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 마테오 콜롬보 그 자신 또한 여성의 사랑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갖가지 노력을 다 한 끝에 발견한 것이니 어찌 '사랑'이라 이름붙이지 않을 수 있을까.

책은 조금 민망한 마테오 콜롬보가 그 부분을 발견한 것에 대한 이야기 이외에도, 종교의 시대에 과학을 탐구하고자 하는 정신, 그 정신이 종교라는 틀에 갖혀 발현될 때에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지가 자세히 드러나 있다. '악마의 발견'을 했다는 죄명으로 고소당한 마테오 콜롬보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설명할 때에 정자와 난자의 역할에 대해 말한다. 정자는 수정되면서 사람의 영혼을 만들고, 여성의 난자는 단순히 물질만을 제공해 줄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브가 원죄를 가졌듯 여성들이 영혼이 없고, 이성이 없는 이유이며 약한 도덕성을 가진 이유라고 한다.

현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이 견해는 과학적 발견들이 중세 엄격한 종교의 틀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발현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 시대에 뿌리깊게 박혀있던 '여성은 사람이 아니다'는 견해는 열받지만 제외하고 보면, 성서의 틀 안에서 자신의 과학을 설명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어떻게 보면 상상력이 넘치다가도 한 편으로 하나의 철학줄기를 잡고있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먼 그리스로부터 시작된 영혼과 몸의 이분법에서부터 , 몸은 그저 기계적으로 연쇄반응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는 행동주의까지, 마테오 콜롬보의 견해에는 사람의 영혼과 욕망에 대한 스펙트럼이 담겨있다. 그를 둘러싼 두 명의 여성들로 인해 밝혀낼 수 있었던 '비너스의 사랑'과 함께 암흑의 시대였던 중세의 이야기가 또한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 안에는 종교재판과 마녀 사냥, 악마 숭배 등 가장 자극적이고 흥미있는 역사가 담겨있고, 그 중점에 마테오 콜롬보의 '비너스의 사랑'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경건함을 내세웠던 중세라 할지라도, 결국 인간사는 어쩔 수 없이 욕망과 관계되어있는 건 아닌가 한다. 교황의 더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 남성과 여성의 사랑받고 쾌락을 느끼고 싶은 욕망, 해부학자의 자신의 연구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 그런 욕망들 말이다. 이것은 거대하고 딱딱한 종교 안에서도 소용돌이 치는 삶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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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아저씨의 오두막 2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4
해리엣 비처 스토 지음, 이종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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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어 새길 이야기 - 톰 아저씨의 오두막    

 

’불편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시간이 지났다고 그저 외면해버리고 싶었던 역사들. 우리에겐 일제시대와 관련된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일화들이 특히 그렇다. <앵무새 죽이기>로 대표되는 미국의 역사 또한 그렇다. 흑인과 백인의 대립이라는 꽤 오래되고도 아직까지 불편한 진실은 쉽사리 마주하기 힘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 마주하기 힘들었던 이야기의 정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성인판본으로 나왔다. 그림책으로, 만화책으로, 그저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이야기로 여겨졌던 <톰 아저씨의 오두막>. 나 역시 그림책으로 읽었던 이 책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이 책을 보니 너무나 반가웠다. 


"당신이 이 엄청난 전쟁을 촉발시킨 책을 쓴 바로 그 조그마한 여인이로군요."
 - 에이브러햄 링컨


남북전쟁을 촉발시킨 위대한 소설이라. 지성인이 되고자 하는 한 사람으로서 어찌 읽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까. 그리하여 충격적이고 쉽게 잊히지 않을 내용을 다시 한번 꼼꼼히 곱씹고 싶었던 것이다. 


내용 중 가장 충격적인 사실 중 하나는 흑인 노예들에 대한 그들의 비현실적인 견해였다. 흑인노예를 애초에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견해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부당하다. 그들을 사고파는 것이 당연시되고, 부모와 자식이 떨어지지 않으려는 인륜의 정을 매섭게 끊는다. 그것은 그들을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으니 당연한 것이라 치더라도, 죽을 때까지 힘든 일을 시키는 소모품 정도로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이 너무나 끔찍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 따뜻한 남부 백인가정의 노예들은 주인의 빚때문에 팔려가기에 이른다. 작은 아이에게 힘든 경험을 겪지 않게 하려는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지만, 누구보다 주인에게 충성하는 톰은 도망치지 않고 순순히 팔려간다. 어린이판 소설에는 나오지 않던 이 엄마와 아이는 캐나다로 도망갈 계획을 세우고, 도망노예를 잡아 한 몫 단단히 챙기려는 자들이 그 뒤를 쫓는다. 북부 미국이라고 남부와 다르진 않았다. 도망노예를 숨겨주면 벌을 받고, 도망노예를 신고하면 상금을 내리는 법이 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따뜻한 백인들이라고 해도, 노예들을 그저 ’기독교도인 불쌍한 것들’이라고 볼 뿐 본인들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보다 더 독실하고 지혜로운 톰과 자식을 지키기 위해 너무나 위험한 길을 택하는 여인. 이들의 이야기는 미국에 사는 흑인들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을 용기있게 견뎌냈는지, 이러한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주의깊은 통찰력과 분노를 통해 보여준다. 2권임에도 하루만에 다 읽을 정도로 흡인력 있었던 소설이었다. 그리고 어떤 작은 차이로 차별을 하는 모두에게, 추천하고픈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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