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의 엄지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0
미치오 슈스케 지음, 유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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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의 엄지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아니, 자세히 들여다보니, 진짜 '가족'은 아니고, 어쩌다 보니? 모이게 된 가족이다.
한 때 아버지였던 사람 둘. 한 때 귀여운 딸들이었던 사람 둘.
그리고 한 명의 왕덩치 발기부전 남과 야옹야옹 고양이.

이들의 공통점은 밥벌이가 불법적이라는 것 외에도 또 하나, 사채업자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이 곳까지 어찌어찌 흘러왔다는 점이다. 어찌어찌 흘러와 어찌어찌 모이게 된 이 가족. 직업들은 무섭지만 하는 대화는 어째 나사가 하나 풀린 느낌이다.


고양이를 위한 선물이 있다고 하더니 턱시도를 입고 노래를 부르질 않나, 두부가 몰캉몰캉하니 엉덩이같다는 말을 하질 않나, 이건 완전 사기 범죄 미스터리를 가장한 가족 코미디 아니냔말이다.

물론 중간중간 이들의 사연은 어쩐지 코 끝이 찡하다. 결국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었구나 싶은 게. 이들의 '알바트로스(왠지 이 이름도 웃겨)'작전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들은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듯 했지만, 그 옛날 상처받았던 사채업자로부터 점점 위협의 폭이 좁혀지자, 이 사채업자를 상대로 한 대규모 사기극을 조직하게 된다. 그리고 이 대규모 사기극이 성공했나 싶은 무렵, 반전의 반전으로 소설은 급격한 롤러코스터를 탄다.
까마귀는 일본어로 프로 사기꾼과 발음이 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까마귀의 엄지가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 '엄지'가 밝혀질 무렵, 나를 비롯한 독자는 이 책 대단한데~ 하며 앞표지를 다시 들추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처음엔 조금 슬픈 사연으로 시작해서, 우스꽝스러운 대안 가족의 코미디로 이어지고(이 부분에선 영화 가족의 탄생과 킬러들의 수다가 생각난다.), 머리싸움 치열한 대규모 사기극이 펼쳐지다가는 (이 부분에선 범죄의 재구성이 떠올라!) 그리고 뒤통수를 턱! 얻어맞아버리는 반전.

마음놓고 서서히 웃으며 올라가다가 정점에서 90도로 하강해버리는 롤러코스터의 느낌이랄까.

그런 소설이다. 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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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바닥의 달콤함 플라비아 들루스 미스터리 1
앨런 브래들리 지음, 성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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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소녀의 추리_ 파이바닥의 달콤함

천진난만한 소녀와 추리는 어쩐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다. 11살 소녀탐정과 추리의 매력적인 조화. 11살 소녀 플라비아는 퀴리부인의 화학적 재능을 가졌다. 화학광이자 독설의 대가. 11살짜리가 어찌 이렇게 깜찍할 수 있을까?

얄미운 언니의 립스틱에 피부가 뒤집어지는 독소를 집어넣고, 집 마당에서 시체를 발견하고도 눈을 빛내며 흥미로워한다. 일견 엽기적일 수도 있는 소녀지만 어찌나 똑똑한지, 어른들 살살 구슬려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는 능력이 최고다.

사람들은 원래 영웅보단 악당에 묘하게 끌리는 게 아닌가?
독자가 영악한 플라비아에 빠지는 동안 그녀는 신중하게 독을 고르며 사건을 풀어나간다. 게으른 경감 나리들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동안 그녀는 잰걸음으로 이런 저런 사건의 정황을 캐는 것이다.

진정한 파이의 맛은 그 바닥에 있는 달콤함이다. 이 사실을 아는 영악한 꼬마탐정이 전혀 밉지 않고, 줄거리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아이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착한 구석은 전혀 하나도 없고, 어른같은 아이의 독설 사이로 어른들의 멍청함?이 빛을 발한다.

500페이지 내내 맛있는 추리소설, 바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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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신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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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과도 같은 소설_ 홍수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다는 걸 안다. 몸 안에 비가 내리는 시기. 차고 넘쳐서 흘러내리는 시기. 청년 르 클레지오는 그 시기를 한 편의 소설로 묶어냈고, 이 소설은 청년인 르클레지오만이, 그 때 만 쓸 수 있는 폭풍같은 소설로 남았다.

도시 문명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들과 주인공 프랑수아 베송은 대립한다. 프랑수아 베송은 비록 거대한 문명 속의 작은 개인이지만, 그가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더욱 거대하다. 한 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의 성장과정. 이것은 마치 어려운 미션을 뚫고 성장통을 앓듯, 성인식을 거행하듯 어렵고 거대한 일이다. 그리하여 오감을 통해 받아들여야 하는 언어의 형태로 르 클레지오는 이 성인식을 이야기하고, 소설 속에서 프랑수아 베송은 혹독한 성인식을 치른다.  

 

폭풍우와도 같은 내면을 이기지 못하고 거리를 배화하는 베송, 조제트와 마르트를 만나고, 어린 시절 쓴 소설을 발견하고, 광견병으로 죽어가는 개와 구경하는 사람들을 보고, 자신이 쓴 모든 것을 불태우는 베송은 변화의 소용돌이로 가득한 자신을 뒤로 하고 한 단계 탈피하는 누에고치와 다르지 않다.

성장에 있어서 그 모든것들이 성장하는 이의 내면에서 어떻게 소용돌이치고 가라앉아 고요해지는지, 청년 르 클레지오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누구보다 깊이 들여다보고 서술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온 몸으로 받아들여 읽어야 하는 이런 폭풍우같은 소설이 탄생한 것은 아닐까. 그때의 르클레지오만 쓸 수 있었던 소설. 이 소설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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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제럴딘 매코크런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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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에게_ 시라노

영국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시라노>가 있다. 본인은 자신없어 하지만 우아하게 큰 코를 가진 시라노. 누구보다 아름다운 언어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군인.

먼 친척 록산을 향한 열정을 품고 있지만 록산이 사랑하는 이는 그의 근위대에 속한 잘생긴 크리스티앙이다.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의 대필자로서 그녀에 대한 사랑을 편지에 쏟아붓고 크리스티앙과 록산은 결국 결혼에 이른다.

창마다 대낮처럼 불을 밝힌 록산의 집이 몇 걸음 앞쪽에서 범선처럼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지금쯤 집 안에서는 크리스티앙이 달처럼 하얀 제병祭餠을 받아먹으려고 입을 벌렸다가 다물고 그것이 혀끝에서 녹아내리는 감촉을 느낄 것이다. 크리스티앙이 록산과 결혼식을 올린다. 그가 시라노의 하늘에서 달을 빼앗아 삼켜버리면 시라노에게 남는 것은 어둠뿐이다. _89쪽

그러나 전쟁으로 그들은 서로 헤어지게 되고, 시라노는 전쟁터에서도 틈틈히 록산에게 크리스티앙의 이름으로 편지를 쓴다. 죽는 날이 되어서야 록산에게 자신의 본심을 말할 수 있게 된 시라노는 그녀에게 자신이 썼던 그 사랑의 구절들을 읽어주며 죽어간다.

 산더미처럼 많은 깃펫이 닳아 없어지고 잉크가 강물처럼 흘렀다. 그가 그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록산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움으로써 그녀를 향한 갈망으로 터질 듯한 가슴을 비워내기 위해서였다. _104쪽

누구보다 열정적이며 용맹한 군인이었지만 사랑 앞에서 너무나 나약했던 군인이자 시인은 프랑스 역사에 길이 남았다. 그리하여 여러 다른 소설 속에도 등장하고, 연극으로, 뮤지컬로 계속 재창작된 것이다. 본래는 희곡이어서 줄줄 스토리로 읽히기는 어려웠던 시라노를, 제럴딘 매코크런은 소설로 옮겼다. 캐릭터 뿐만 아니라 언어 유희, 그리고 마음 찡한 감정선까지.

조금 더 깊이있는 글의 맛을 느끼고싶은 독자라면, 희곡보단 이 메코크런의 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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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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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 라디오 광고로 뻔질나게 들었던 <로마인 이야기>.
세계사 교과서보다 훨 재밌다는 이유로 1권을 샀고, 순식간에 다 읽었었다.

그런데 이럴수가수가수가
시오노 나나미 할머니의 필력이 이정도였단 말인가.
십자군 이야기라니, 70세가 넘은 노작가의 십자군 전쟁 이야기라니!!

사실 나는 역사공부엔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라는 이름 하나만을 믿고 예약판매를 기다린 보람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는 순식간에 읽어버렸고, 부분부분 인상깊고 재미있는 역사적 장면을 포스트잇으로 표시해두었다. 어딘가 신비한 느낌이 가득한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와 함께

중세 유럽은 암흑기라고 일컬어진다. 그 거대한 배경엔 기독교와 십자군 전쟁이 있다. 대체 그 기간 동안 유럽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 

 '신'이라는 이름과 각종 명분들이 합쳐진 역사상 최대의 전쟁.
사실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 뭉쳐서 역사는 굴러가는구나 하고 느낀다.
수정구슬을 굴리는 마녀처럼, 시오노 나나미는 중세를 한 손에 들여다보며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거대한 역사의 한 부분은 언제고 되풀이 된단다 하고, 그러니 이 책을 보면 흐르는 시간을 손에 잡고 들여다볼 수 있게 되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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