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더 선 시스터 문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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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 선, 시스터 문

 

내 20살의 기억의 대부분은 낡은 학생회관과 어두운 암실이다.


학생회관은 낡고 너저분했지만, 오후의 햇살이 참 좋았다. 고등학교때와 달리 '수업에 들어가기 싫은 날'이라는 특권이 존재했기에 그곳에서 한껏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었다. 그 무엇도 결정된 게 없음에도 갑자기 시간은 주어져서, 아마도 나는 이렇게 넘쳐나는 시간을 어쩌면 좋을지를 잘 정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아무 느낌도 없이 흘려보냈던 시간이, 지금은 많이 그립다. 그렇다고 돌아가고 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어쩐지 너무 빨리 깨버린 아쉬운 꿈 같아서 괜스레 다시 잠들어보고 싶은 그런 느낌인 거다.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은 그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생각 없이 흘려보낸 시간들이 모이고 쌓여서 어떻게 되는지.
나중이 되어 생각했을 때엔 어쩐지 희미하게 기억나는 사소한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 그 안에서 겹쳐져 있는 세 명은 각각의 기억 속에 또한 각각으로 존재한다.

 

'대학생이라는 존재는 좀 더 어른일 줄 알았는데, 예전에 고등학생은 좀더 어른일 거라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알고 보니 어른이 아니었다. 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열일곱 살도 실제로 되고 보니 대단히 시시했던 것처럼, 스무 살은 그보다 한층 더 별볼일 없었다.'

 

세 명의 화자. 세 개의 기억.
어쩐지 우연치않게 각각 작가, 베이시스트, 영화 감독이 된 이들의 세 개의 기억은 그들의 직업처럼 특별하지도 않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이들의 기억이자 우리가 마음 한 켠에 꾸깃꾸깃 구겨 넣었던 꿈이다.

 

나도,
말로 만들어 보이기엔 너무 거창하고 허황된 것 같은 꿈이 스무 살의 일상 속에 있었다. 낭비와 낭만 사이의 스무 살이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갖고 있던 작은 소망같은 것이 구겨질대로 구겨져 마음 속에서 굴러다닐때면, 구깃한 모서리가 가끔 마음벽을 찔렀다. 그 따가움을 못내 이기지 못해 책의 주인공들은 꿈을 꺼내어 편다.


이 책이 어떤 사람에게도 모종의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는 이유는 한 켠에 있던 따가움을 보여줘서다. 일상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으나 이 책을 통해 본다. 희미하나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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