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스!
햐쿠타 나오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다.
이것도 저것도 시들할 때, 그럴 땐 어느 하나에 맹목적으로 매달려 그 하나로 밀고 나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꺼내들곤 한다. 내겐 만화책 <슬램덩크>가 그랬고, <BECK>이 그랬다. 좋아하는 것 하나로 무식하리만치 밀고나갈 수 있는 청춘, 십대 때의 나부터, 지금의 나까지,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싶다. 그래서 조금은 현실성 없이 하나에 매달릴 수 있는 그들이 부러운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를 읽고는 한참을 그들의 열정에 휩싸여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나로 재충전되는 것도, 청춘의 이야기를 읽는 하나의 이유다.

좋아하는 것 하나로 밀고나간다는 건, 그만큼 다른 것들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말이다. 아니, 그것이 포기인지 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나간다는 거다. <복스!>의 주인공들은 묵묵히 복싱에 청춘을 바치는 이들이다. 그들에게 이기고 지는 건 상관 없다. 그저 진다면 자신의 실력이 부족함을 알고 더욱 매진할 뿐이다.

복싱이라니, 서로 싸우는 스포츠가 아닌가. 조금 야만적이고, 못볼 스포츠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무한도전에서 우리나라 소녀와 일본의 소녀가 싸우는 복싱 특집을 보고는 그야말로 정직한 스포츠임을 알았다. 최근에 화제가 된 아마추어 권투선수 이시영 또한 이런 매력에 빠진 것일 거다. 서로의 강함을 대결하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무엇보다 룰에 따라 강함을 겨루는 정직한 운동. 시합 땐 원시적인 공격성이 보이지만, 결과에는 어느 누구도 불복하지 않는다는 단순명료한 진리. 텔레비전에서 보고, 또 책으로 보니 참 멋진 스포츠라고 생각이 바뀐다.

아, 이런 스포츠 소설에서 꼭 나오는 구도가 있다. 천재와 노력가. <복스!>에서 또한 복싱에 타고난 재능을 보이는 소년과 묵묵히 한걸음 한걸음씩 자신의 실력을 닦아 강해지고자 하는 소년이 있다. 그들은 둘도 없는 친구이기 때문에, 때론 서로에게 좋은 자극제이며 때론 둘도 없는 같은 편이다. 처음에, 이 둘은 모두 어리다. 타고난 소년은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고, 노력가 소년은 복싱이라곤 해본 적도 없는 모범생일 뿐이다. 그들이 같은 학교의, 같은 복싱부가 되어 하나하나의 시합을 거쳐가면서, 자신보다 강한 이들, 자신을 위해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이들과 만난다. 하나의 만남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들에게는 성장 촉진제이다. 스스로 자라나는 청춘들. 이름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난다.

길고 긴 소설을 그들과 함께 했다. 웃기도 웃고, 울기도 울면서, 새삼 하나에 이렇게 매진할 수 있는 용기와 정신력이 부럽기도,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리프레싱되는 나 자신을 본다. 순수한 정신력이란 그 자체로 얼마나 기쁜지. 고루한 어른처럼 이것 저것 재는 것 따위 일시에 그만 두게 된다. 청춘소설의 매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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