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노운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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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존재를 남들에게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몇가지나 됩니까? 필사적으로 내 존재의 증명이 필요할 때, 나 자신마저도 내가 맞는지 혼란스러울 때 그 방법들을 다 써보고도 증명이 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언노운>에서는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나는 누구인가?'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전화기가 전화기인 것은 사용 방법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 년 전의 사람들에겐 전화기가 전화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란 사용 방법 같은 것은 없다. 만들어진 목적이 없는 것이다. (물론 혹자는 신의 이름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그리하여 사람의 정체성은 어떤 용도로 규정되지 않는다.

인간은 인간들 사이의 관계로 정체성이 규정된다고도 할 수 있을까.
그녀의 남편, 옆집 사람의 옆집 사람, 00회사의 어느 부서의 사원, 00의 아빠, 00의 아들 등등등..
또 하나, 인간들 사이에 이루어 놓은 목적으로도 규정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논문의 작성자, 어떤 책의 번역가 같이.

그런데 이러한 방법이 하나도 먹혀들지 않을 때, 아니, 그러한 '증거'들이 다 사라져 버렸을 때 나의 존재는 누구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규정될 수 있을까?

사고 후 주인공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가 관계맺었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쉽사리 없어져버리는 자신의 정체성. 그 가운데에서 그는 다른 방법들을 동원하여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행세를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알기 위해 힘쓴다.

'자신'의 뒷조사를 부탁한 사립탐정은 '당신은 가짜'라는 결론을 내린다. 자신을 치료한 의사는 다른 사람의 기억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정체성 밝힘의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사람들마저 자신이 자신임을 부정한다. 이런 지경에 이르른다면 나는 어떻게 '나'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러한 철학적 물음은 마치 답이 없는듯 주인공을 둘러싸고 빙빙 돈다. 모든 것이 악몽인듯 하고 꿈은 깨지 않을 것만 같다. 책의 표지처럼 안개만이 가득한 것처럼 보이는 미로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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