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코너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1
존 치버 지음, 박영원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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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줄곧 들어왔던 존 치버의 소설을 이제야 접한다.

 

표지는 이것이 그닥 가볍지 않은 내용임을 암시하지만 요사이 묵직한 힘의 소설들이 그리웠던 차에, 타임지 선정 최고의 영미소설 100선에도 꼽힌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이다.

 

주인공인 패러것은 마약 중독과 형을 살해한 죄로 팔코너라는 이름의 감옥에 들어온 사람이다. 그래도 한때 대학의 교수였던 사람이 감옥에 들어간 것이다. 훨씬 적응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 건 비단 나만이 아니리라. 범죄자들이 모여있는 곳이 감옥이라는 인상은 그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뿌리깊은 편견에 기인한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그들이 키우는 고양이들을 대량 학살하는 교도관들과 사람을 살해하거나 해친 그들이 다르지 않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감옥의 그들은 고양이를 아끼고, 누군가 자신의 사연을 끊임없이 들어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내 얘기를 좀 들어봐.' '내 얘기를 해주지.' 등 끊임없이 소통하고 싶어하는 그들이 안쓰럽다. 그들의 소통은 단순한 외로움에서 시작하여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으로까지 보인다. 가족들의 냉대와 사회의 무관심속에 자신이 잊혀져 가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감옥의 죄수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사진을 찍어 가족에게 보내주기로 한다.

 

치킨은 자기 차례가 되자 손에 들고 있던 신청서를 내보였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북극, 고드름 가, 산타클로스 부부 앞.' 사진사는 활짝 미소 지으며 나머지 죄스들과 치킨의 농담을 공유하고 싶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곧 장엄한 분위기까지 풍기는 치킨의 외로움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한다. 감옥 밖의 자신의 존재를 잊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맺고 있던 관계가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곧 정체성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때문에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 어렵지 않은 행위에 그들은 보상까지 한다.

 

그러한 감옥에서 그들이 켜 놓은 텔레비전은 그 아이러니를 잘 드러내준다.

어떤 형태의 삶과 죽음에도 아랑곳없이 무차별적으로 방송되는 TV의 아이러니는 피상성과 우연성에 있었다.

 

어쩌다 마약 중독자가 되었나. 하는 반복적인 물음. 그에 대해 패러것이 내놓는 답은 그의 가족들이었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아버지. 강박적인 형과 어머니.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남편에 대한 사랑을 잃어갔던 아내. 습관적인 마약복용과 가족에 대한 불안감은 그를 극단의 상황에까지 몰고 간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감옥 밖에서도 외로운 남자였다. 그가 감옥 안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는 그가 진정한 인간들과의 관계를 맺은 것이라 생각했다. 비록 고립된 장소지만 그는 새로이 시작할 '인간적인 어떤 것'을 그곳으로부터 얻은 것은 아닐까. 조디와의 관계, 치킨이라 불리는 이와의 관계, 그리고 토마토를 가져다주던 간수와의 관계. 그리하여 그가 새로운 삶을 찾아 감옥을 나왔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강박적일정도의 기쁨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자네한테 말해주고 싶은 건 모든 게 실수라는 거야, 그것도 끔찍한 실수. ... 어떤 여행이든, 심지어 바보가 하는 여행이라도 그 끝엔 황금 단지나 젊음의 원천, 전엔 결코 본 적이 없는 바다나 강, 아니면 최소한 구운 감자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처럼 좋은 뭔가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지. 모든 여행의 끝에는 반드시 좋은 뭔가가 있어야 하고,"

 

이러한 치킨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소외시킨 세상에 대한 분노와 그 끝에서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희망. 너무나 인간적인 욕망과, 인간적인 좌절과, 인간적인 공감이 있던 <팔코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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