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소녀의 짓궂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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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사와 순정에 대한 미시 서사 <나쁜 소녀의 짓궂음> 

 

1. 순정


 대대로 '순정'이라는 건 이상적 세계에서나 사랑의 완성으로 쓰일 뿐이다. 현실에서 10년동안 한 사람을 짝사랑했다고 하면 그건 미련함의 대명사이니까. <나쁜 소녀의 짓궂음> 속 리카르도는 다르다. 무려 40년 간의 짝사랑. 꿀색 눈동자에 바치는 순정. 그러나 이 사랑은 어쩐지 더욱 세련되어 보인다. 그 이유는 뭘까.
 칠레에서 왔다고 '뻥'을 치고 도망가버린 나쁜 소녀의 꿀색 눈동자에 흠뻑 빠져버린 착한 소년. 그녀를 잊지 못하고 파리로 간 착한 소년에게 나쁜 소녀가 나타나지만 그녀는 이미 예전의 그 이름이 아니다.
 '이름'은 그 사람을 칭하는 말이고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이름'이 나에게 특별해지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리카르도에게 있어서 계속 바뀌어버리는 나쁜 소녀의 이름은 잡힐듯 잡히지 않는 존재다. 두 개의 이름이 만나야 하는 사랑이 여기에서 아쉽게 아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다. 이러한 릴레이가 각 국을 돌며 끊임없이 이어지니 지루할법도 한데, 또 전혀 지루하지는 않다. 계속해서 정체를 바꾸는 나쁜 소녀, 그리고 역사의 중요 사건이 이루어지는 무대, 착한 소년의 사랑은 그래서 순정적이지만 재미 없지는 않다.

 

2.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사


 20세기는 그야말로 격변기였다. 전쟁과, 반전시위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와, 그 모든 것들의 혼란 속에서 어느 곳에선 폭탄이 터지고, 어느 곳에선 히피문화가 탄생하고, 어느 곳에선 눈부신 경제발전이 이루어진다. 20세기 각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그 사건의 중심에 착한 소년과 착한 소녀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사랑은 결코 개인적인 일이지만 세계와 무관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직 간접적으로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계의 구조를 우리는 그들의 시점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거기 없었음에도 개인의 시선에서 역사를 볼 수 있는 이유는, 각종 소설에서 이러한 미시적 시점을 택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3. 사랑의 완성


 작가는 말한다. 모든 낭만적 신화에서 벗어난 사랑을 살펴보고 싶었다고. 그래서 이 이야기에 담겨있는 사랑의 모습은 삶의 한가운데,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구애하고, 도망치고, 다시 구애하는 성스럽지 않은 사랑이다. 하긴 그렇다. 아무리 리카르도가 나쁜 소녀를 순정바쳐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는 어떻게 보면 뻔뻔할 정도로 구애를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 나쁜 소녀는 그녀다운 특별한 방법으로 리카르도의 사랑을 완성시킨다.
 사실은 이게 뭔가 싶지만, 이 둘은 어쩐지 깔깔대며 서로 짓궂은 장난을 치는 연인같다. 평생을 진지하지 않게 장난치다가, 결국 서로를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받아들이고 마는 것. 낭만적 신화를 벗어났지만 이 또한 사랑인지라 어쩔 수 없이 낭만적이다. 서로에게 어떤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사랑이라면, 이들은 이미 연인일 것이다. 이야기 자체의 힘을 가진 '재미있는' 이야기. 바르가스 요사 만의 이야기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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