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헤르타 뮐러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컴플렉스의 이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연민을 느끼고 가해자를 사랑하게까지 되는 컴플렉스가 있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는 제목 또한 이러한 컴플렉스와 관련있다.

독재에 눌리다 못해 적응되고, 어느 새 내면화시켜버리는 사람들.

그래서 여우는 이미 자신을 죽이는 사냥꾼과 동일시 되어버린 것이다.

이들은 어느새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독재를 옹호하고, 자유를 혐오해 버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군부독재시절을 그리워 하는,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대통령이 그에게 카네이션 꽃다발을 바친다. 노동자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그들의 입술은 양손의 박자에 맞춰 열렸다 닫혔다 한다. 파벨은 자신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모든 공장엔 검은색 자동차가 있어. 그리고 클라라가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당신은 공장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잖아요. 그는 팔을 뒤로 뻗어 텔레비전을 끈다.

 

 

어떤 현실적인 스릴러 못지 않은 비밀경찰의 소행도 눈에 띈다.

하루하루, 바닥에 깔린 여우 장판의 다리가 하나씩 사라진다.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표시. 그러나 다른 흔적은 없다.

이러한 상황들에서 미쳐버리지 않고 살아갈 방법이 있을까.

 

소설은 이러한 상황의 묘사를 위해 위태하고 단편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헤르타뮐러 작가의 말처럼, 끔찍하게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