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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번의 낮
신유진 지음 / 1984Books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열다섯 번의 낮, 신유진 글, 신승엽 사진, 1984books
📝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 통역사 번역가 소설가 작가….
신유진 작가는 열다섯 편의 산문으로 단편적인 프랑스의 생활을 보여준다. 생활이 녹록지 않은 파리에서 공부하는 자신과 그 옆에 선 연인, 파리 19구에 사는 또 다른 이방인, 이제는 연락이 끊어진 파리의 한국인 친구,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는 친구, 멀리 한국에 있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생과 기억을 꾸리는 이야기를 화려하지 않은 문체로 전달한다. 이렇게 치장하지 않은 문장은 다른 유려한 글보다 더 쉽게 마음에 콕콕 박힌다.
• 시큼하고 아린 이 맛이 싫은 건, 여름을 빼앗긴 탓인가? 입맛이 변해서인가? 무엇이 변했다면, 매일 눈치를 채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찾아왔을 것이다. 별것 아닌 작은 변화들은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 뻔뻔하게 내 안에 자리를 잡는다. -218p
이 책을 본 것은 지난 주말에 참석한 직장 선배의 결혼식 후였다. 날씨 좋은 주말에 밖으로 나왔다 세 시간 만에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쉬워 들른 잠실 교보문고 옆에 있는 작은 독립서점. 문 없이 교보문고와 이어지지만 사뭇 다른 분위기에 ‘여기는 뭐지?’하고 들어서게 되는 곳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해방촌에서나 보았던 동네책방 에디션이나 독립출판사의 책이 많았다. 1984books의 아니 에르노 시리즈 번역을 했던 신유진 번역가의 수필이 열다섯 번의 낮이 눈에 들었다(오늘 안 사실인데 출판사의 대표이자 사진 작가님인 신승엽 대표님과 남매 사이라고 한다).
서문을 읽자마자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쓸쓸한 말이 따뜻한 봄에 어울리지 않았지만 괜히 밖을 떠돌고 있던 나에게는 잘 찾아 든 글이었다. ‘수도권’이라는 말을 어색해 하고 아직도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쌓아 올린 건물이 쏟아질까 두려운 나는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에서 풍겨오는 이방인의 분위기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방인, 회사 외의 공동체 생활이 없는 나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 토마는 몇 번이고 내게 ‘우리 같은 외국인들’에게 자신의 쓸모를 나타내는 직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얘기했다. 그때마다 내가 그의 충고를 썩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그가 자신과 나를 하나로 묶어서 ‘우리 같은 외국인들’이라고 하는 것에 묘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167p
파리 19구, 파리 북부로 묶이는 이민자들의 도시.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있으면 훔쳐 간다고 중동의 언어로 주의를 주던 히잡을 두른 여인이 있던 곳. 지린내가 나는 골목과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들. 그럼에도 처절하지만은 않다.
• 제제는 뽀르뚜가를 보내고 열병을 앓았다는데 우리는 뽀르뚜가를 보내고 덤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낮에는 덧창을 닫고 밤에는 그것을 열어 생존을 알리며, 지금은 여기서 함께 잘 견디고 있음을 위로 삼는다. -122p
살아간다. 갚아야 할 돈으로 마이너스를 표기하는 자산을 매일 확인하며 도저히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르는 직업으로 돈을 벌며 재개발을 기다리는 지역에 붙어 꾸역꾸역 그럴듯하게 살림을 차려 잠들고 눈을 뜨고 읽고 일하고 쓰고….
나는 레이첼 야마가타의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디아스포라와 레이첼 야마가타라니, 내가 생각하는 파리의 분위기가 이런 것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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