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지 않기 - 혹은 사라짐의 기술
피에르 자위 지음, 이세진 옮김 / 위고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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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어딘가에는 삶의 정답이 있으리라고 가정한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때로는 무소유가, 겸손이, 내면이, 너그러움이, 다른 한 편으로는 적극적인 투쟁이 정답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실질적으로 그렇지 못하게 살아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또한 그렇게 살면 언젠가는 과연 삶의 진실에, 기쁨에 도달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괴로움도 마음 한 편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제3의 길’이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것은 굉장한 도인이나 선인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한다. 이 시대에 누구나 추구할 수 있고 연마할 수 있는 기술이며, 신의 창조, 예술의 본질에서부터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까지 내 삶의 먼 곳부터 가까운 곳까지 닿아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제 3의 길, ‘드러내지 않기’란 무엇인가? 나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그것의 실체를 알기 위한 호기심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다.


행복은 재화의 누적에서 오는가? 무소유에서 오는가?

나는 세상을 볼 때 먼저 나를 보아야 하는가, 남을 보아야 하는가?

나는 남보다 위에 있어야 하는가? 나를 낮춰야 하는가?

예술은 작가의 내면을 고려해야하는가, 작품 그 자체인가?

민주정치란 나를 내세우는 것인가, 대의에 순응하는 것인가?

사랑은 소유인가? 끝없는 너그러움인가?

신의 창조는 과연 신의 전능함을 말하는가?

행복은 삶의 연속선상에 존재할 수 있는가?


이러한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두 가지 가운데 선택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나에게 그밖에 제 3의 답이 있다는(혹은 정답이라는 것 자체의 존재를 부정해버리는) 저자의 주장은 꽤 설득력 있고 매력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 드러내지 않기에 대한 앎과 삶 사이에는 간극이 너무나 크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한 번 책을 읽은 것으로는 드러내지 않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실체만을 막연하게 그려낼 수 있을 뿐, 그렇게 사는 일은 또 다른 단계와 과정의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 독서는 드러내지 않기가 무엇인지 알기 위한 것이었다면, 다시 읽을 때는 드러내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한 독서가 될 것이다.


좀 더 꾸준히 그리고 의식적으로 연습과 생각을 반복한다면 언젠가는 내 삶 속에서 드러내지 않기를 통한 만족감을 순간순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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