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자키에게 바친다 1
야마모토 사호 지음, 정은서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현재의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은, 그날로부터 시작되었다.
'야마모토'와 조금 독특한 소녀 '오카자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1990년대의 어느 마을에서 두 사람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이 만화는 '야마모토'가 '오카자키'에게 바치기 위해서 그린 어린 시절의 추억담.

어쩌다 어른이 된, 서투른 당신에게 바치는 감성충만 헌정 에세이

2016년 일본만화대상 노미네이트
일본 웹사이트 [note] 최단기간 1,000만 조회수의 화제작!
엔터브레인 전국 3,000점포 서점 직원들이 선정한 2015 이거 읽어봐 랭킹 4위
이 만화가 대단하다! 2016 8위 (남성부문)

 

 

어쩌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쩌다가. 원하지 않게, 덜컥. 갑자기? 
애초에 어른이 되고 싶어서 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어른이 되고 싶어서 되는 거라면, 어른아이니 어른이니 하는 그런 모호한 경계도 없었을 테고. 어른은 그저 될 때가 되었기에 자연스럽게 될 뿐이다.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될 때 처음 입게 되는 교복과,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될 때의 그동안과는 달랐던 새로운 교복을 입게 되는 것과 같이, 열아홉과 스물의 경계에선 옷을 갈아입지 않을 뿐 사회가 나를 읽는 이름표를 바꿔 다는 것이다. 앞자리를 1에서 2로, 계단 쌓아올리는 댓가로 어른을 선물받는다. 이쯤이면 반강제보단 강제적이다. 우리는 모두 '어쩌다' 어른이 되었다. 때가 되었으니까. 그게 다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덜컥 등떠밀려 어쩌다 어른과 아이의 선을 건너와버린, 아무런 준비 없이 어른의 범주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기에 서투를 수 밖에 없는 우리 모두에게 작가님이 바치는 에세이다.

 

                

야마모토와 오카자키는 처음부터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친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인물에 범주에 속해있었으며, 그 이야기가 실린 책의 극초반부를 읽었을 때 나는 당최 어떻게 친해졌을지에 대해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회상하는 나이대가 나이대인 만큼, 생각보다 둘이 친해지는 에피소드는 너무나도 단순했다. 어린아이의 순수함 덕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만 커도 계산적으로 인간관계를 꾸려나가기 때문에 그만큼 얄팍하고 옅으니 순수하게 친구 그 자체가 중요했을 어렸던 둘에게는 한밤중의 패미컴만으로도 친구가 되는것이 어렵지 않았다. 야마모토가 오카자키를 어려워했던 순위 리스트같은 건 단지 겉으로만 판단한 못된 나열일 뿐이다. 서로 다른 집안 환경에 대한 어린 부러움도 오가며 서로 함께 공유하는 시간, 놀이, 추억들이 조금씩 늘어갈 수록 둘은 더욱 친한 단짝친구가 되어간다. 게임센터에서의 뽑기, 콧쿠리상(번역은 분신사바로 되어있는 듯 하지만, 귀신이나 요괴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놀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니까)과 다마고치, 직접 그리던 만화라거나.
책에서 다뤄지는 둘의 추억 속 화별로 메인이 되는 주제들은 우리도 언젠가 한 번쯤은 겪어봤고 갖고 싶어했고 가졌던 것들이었는데 덕분에 더 공감이 되고 함께 끄덕이며 매 페이지를 즐길 수 있었다. 야마모토네가 갖고싶어 하던 다마고치를 보며 내 연두색 다마고치(짝퉁이었지만 짝퉁마저 갖고싶었다)를 떠올리기도 하고, 야마모토가 모았다던 디저트 모양 지우개들을 보며 서랍 한켠에 아직도 들어있을, 나도 모았던 지우개들을 다시 꺼내보기도 했다. 지우개라 하면 지금은 그저 웃기지만 당시의 나에겐 심각했던 일이 하나 떠오르는데, 용돈을 모아가며 겨우겨우 한 세트씩 사모았던 케이크, 패스트푸드 세트들을 엄마가 전부 버려버린 일이 그것이다. 디저트 모양의 조립형 장난감 지우개들은 지우개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지우는 기능관 친하긴 커녕 오히려 고무덩어리에 가까웠는데, 그렇기 때문에 어차피 지워지지도 않는 것 왜 가지고 있느냐며 버렸었다고 기억한다. 우스운건, 조금 큰 후의 나도 그것들이 예쁜 고무덩어리라는 사실을 알고선 괜히 남동생한테 시비를 걸고 싶었는지, 엄마가 버렸을 때의 기분을 알고 있으면서 괜히 남동생이 그런 지우개들을 사모으려고 하면 돈아깝다고 시작부터 사지 못하게 막았던 거?

아주 멀리까지 왔다고 생각했지만,
여기가 고작 두 정거장 떨어진 곳이라는 것은 어른이 된 후에 알게 되었다.

 

 

온갖 생명이 만개했던 봄이 장마에 한 풀 꺾였다. 비는 여름의 시작을 알렸고, 저마다 쏟아질 더위를 대비해 나름의 돌파구를 찾기 시작했다. 교복은 한 겹씩 떨어져서 어느덧 순식간에 하복 철이 되었다. 그동안 묵어있던 선풍기의 먼지를 닦을 사람은 지각한 아이가 벌청소를 겸해 맡게 되고, 에어컨 필터의 먼지도 털었다. 준비는 만반이지만 정작 선생님들은 아직 냉방기구를 틀 정도로는 덥지 않다며 전원을 올려주지 않는다. 교무실은 어차피 시원하니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라며, 열심히 준비했던 아이들은 실망한 투로 불평을 뱉는다. 하복 셔츠를 펄럭이며 연신 부채질도 멈추지 않는다. 물총은 또 언제 챙겨온건지 장소 대상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쏘아지는 물줄기에 바닥은 흥건하다. 더워서 쌓인 스트레스를 소리치는건지, 아니면 더위 그 자체를 표현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이미 여름이다.

그 탓일까,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잠들었을 새벽은 습해진 공기에 목이 메여서 깊이 잠들지 못하는 시간으로 돌변했다. 분명 잠에 취해서 누웠을텐데 깨어버린 새벽은 어쩐지 평소보다, 심지어 낮보다 선명한 것이 다시 잠들기는 힘들 정도로 또렷하다. 괜히 애꿎은 베개에 머리를 묻고, 여기저기 구르다가 똑바로 덮었던 이불을 발 밑으로 차버리기 일쑤다. 아무리 이불을 던지고 있는 그대로 몸만 누워도 공기는 텁텁하다. 이대로 다시 잠들지 못한다면 분명 피곤할 내일의 몸을 생각하니 여간 억울한게 아닌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새벽이니 새벽감성까지 물밀듯 몰려온다. 이런 걸 기억하고 있었나? 싶은 것들까지 온통 저 구석에서 몰려와 전신을 덮친다. 그땐 이랬지, 이때는 또 이랬구나. 대체 왜 그랬을까. 같은, 밀려오는 온갖 감정에는 이름을 모를 복잡함도 있겠지만 그리움도 추억도 분명히 존재한다.

여름과 여름의 새벽은 꼭꼭 숨어있던 내 '오카자키'를 불러내주는 하나의 신호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나에게는 새벽이 끌어다 준 오카자키인 것처럼, 무언가를 계기로 해서 잊고 있던 옛날의 추억을 종종 떠올려 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느낀다. 소중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기억이 지워졌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때로는 나도 모르게 문득 떠오르는 것이 옛 기억이다. 지워지지 않은 채로, 다만 그 위로 수어겹 쌓아올린 다른 소중함에 가려져 잠시 보이지 않았을 뿐이지, 결코 소중함과 중요함을 잃은 덩어리는 아니다. 옛 추억은 언제나 저 밑 한켠에서 다시 떠오를 계기를 기다린다. 그 계기가 이 책이 된다면 분명 작가님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하고. 어쩌다 어른이 되어 방황하고 헤메이는 서툰 우리가 다른 의미로 서툴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좀 더 힘을 내고 어른을 마주보아, 끝내는 어쩌다 된 어른이 아닌 성장한 어른으로서의 재시작점을 잡을 수 있다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설령 계기가 있다고 해도 떠올라줄 오카자키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여전히 머물러주는 내 오카자키. 고마워.

* 이 리뷰는 대원씨아이의 지원으로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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