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1
마유즈키 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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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정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타치바나 아키라, 17세. 고교 2학년.
감정 표현이 서툰 그녀가 남몰래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는
아르바이트 중인 패밀리 레스토랑의 점장 콘도 마사미, 45세.
청춘의 교차점에 멈춰 서 있는 그녀와
인생의 반환점에 접어든 그가 엮어 나가는 자그마한 사랑 이야기, 개막.

2016년 일본만화대상 노미네이트
코믹나탈리대상 2015 2위
2015년 일본 3000개 서점직원 선정 '이거 읽어봐' 만화랭킹 3위
이 만화가 대단하다! 2016 4위 (남성부문)
제 2회 다음에 올 만화대상 10위

 

리뷰를 적는 본인의 나이를 살짝 밝히고 시작하자면, 고등학교 3학년이다. 열 아홉살. 주인공인 타치바나와 얼추 비슷한 나이대를 걷고 있는 중이고, 점장님은...... 아빠랑 비슷하려나?
세간에서의 17살 여고생과 45살 남자 어른은 그 정도 관계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빠와 딸.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아니라면, 아빠뻘과 딸뻘의, 어찌되었건 그 안에서는 벗어나기 힘든. 게다가 미성년자와 성인이다. 법적으로 아슬아슬하다. 위험하다. 책의 띠지에 적힌 '17세 여고생과 마흔다섯 연상남의 유리구슬처럼 투명한 사랑 이야기, 개막'이라는 문구를 보고 절로 입이 벌어지며 머리에 든 생각들이다.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사랑을 그려낼거란 기대가 이 책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정말로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고, 그렇기에 깨지기 쉬운 위태함이다. 하지만 모 아이돌의 노래 가사에도 그런 가사가 있지 않았던가,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쉽게는 깨지지 않을거라는.

 

 

열일곱 아이들은 이성에 대한 감정이 피어나기 쉽고, 호기심도 많을 나이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무언가 속에서 끓어오르는, 드라마나 소설, 만화에서만 보아왔던 '사랑'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그런 감정이 찰나의 순간에 문득 찾아와서는 시야가 상대방으로 가득 차서, 결국 일상마저 흔들리는 마법에 홀린다. 타치바나는 감정 표현에 서툰 여고생이지만 시선만은 올곧다. 말로 뱉어내지 않는 감정들을 전부 눈에 옮겨담아 그대로 뿜어내고 있는 똑바른 시선에 비치는 것은 아르바이트 중인 레스토랑의 점장님. 타치바나는 점장님이란 마법에 폭 빠졌지만, 또래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사랑의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에 쉽사리 입 밖으로 그 이름을 내놓지 못한다. 누가 좋아, 저기 쟤는 어떻니. 이상형은 어떤 사람이야? 쏟아지는 질문에도 단지 추상적으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하면서 이미 좋아하고 있는 상대를 이상형으로 묘사하며 꽁꽁 감추는게 전부다. 말도 안되는 오해를 받아도 절대 점장님의 이야기는 꺼낼 수가 없다. 일반적인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은 타치바나 본인이 잘 알고있기 때문에. 친구들의 호기심 가득한 순수했던 질문이 순식간에 경멸의 그림자로 뒤덮이는 기분은 별로 겪어보고 싶을 만한 경험이 아니다. 주변인에게는 적당히 선을 긋되 감정은 여전히 마음에서 자라나고, 자라난다. 일반적이지 않기에 타인의 시선에서는 특이하다 못해 이상함의 선을 한참이고 넘어갔다 여길 수 있는 상대이지만, 타치바나에게 피어난 마음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조건마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랑이라는 걸 실은 어렵게 여기곤 하지만, 단어 자체의 사전적 정의만 보아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이란건 언제 어디나 누구에게나 자라날 수 있는 새싹이다. 굳이 그렇게 재보지 않더라도 애초에 사랑이라는게 정해진 것이었느냐, 부터가 그렇지 않은 것이지만. 타치바나의 사랑은 무엇보다도 투명하고 순수하다. 사랑은 상대로 인해 규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 그 자체만으로 사랑스러운 소중함이다.

 

 

당신의 매력은, 나만의 것.

 

장맛철, 미처 준비하지 못한 우산. 언제 그칠지도 모르는 비에 막연히 기다릴 수도 없어 결국 그대로 뛰어나가기로 결심한 여름날. 문득 그런 기억이 떠올랐다. 교복은 축축하게 젖었고, 우산 대신 머리에 얹고 달려왔던 탓에 마찬가지로 푹 젖어버린 가방이. 씻고 말려도 기분까지 깔끔히 씻겨나가지는 않는다. 눅눅한 기분. 그럼에도 싫어하지는 않는 날씨. 가끔은 푹 젖어도 괜찮을 하루.
책은 전체적으로 잔잔한 분위기를 이어나간다. 보통의 순정만화처럼 종일 핑크빛인 쌍방향의 사랑스러움은 존재하지 않음에도 제목처럼 비가 갠 뒤의 분위기는 충분히 사랑스럽다. 짝사랑도, 흔하지 않은 사랑도 언제나 사랑스러운 사랑이란 것은 다 똑같은 사실이라서 그런 것일까, 핑크빛 못지 않은 분위기가 매 페이지마다 물씬 풍긴다. 비가 갠 뒤의, 결코 싫지 않은 날씨. 그렇기에 사랑에 빠진 소녀가 존재한다.
타치바나 아키라는 콘도 마사미로 온통 젖어있다. 씻어내도 어딘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사랑에도 젖어버렸을 레스토랑에서의 기억. 소녀는 남자를 통해 사랑을 바라보고, 남자는 소녀에게 제 청춘을 투영한다. 이제 막 청춘에 발을 딛은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이기에 타치바나는 사랑이라 믿는 제 감정을 쭉 이어갈 수 있고, 남자는 인생의 반환점을 시작한 어른이기에 소녀의 사랑을 눈치채지 못한다. 눈치채지 못하는 것일까, 눈치채지 못하려 하는 것일까. 전자이건 후자이건, 타치바나의 시선은 여전히 올곧다.

책의 마지막을 덮고 나니, 타치바나의 마음이 먼 미래에 돌이켜봤을 때 그저 청춘이 저지른 실수로 여겨질지, 여전히 사랑스러웠던 청춘으로 남게 될지가 궁금했다. 물론 이건 작가님의 상상으로 꾸며지는 몇천장의 판타지기에 후자의 결말일 가능성이 크지만, 혹 전자라면, 타치바나의 눈동자가 시들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매 순간순간의 현재까지 미리 별볼일 없는 것이 되지는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사랑을 하고 있는 타치바나가 사랑스러웠다. 괜시리 한때 꿈꾸던 나의 판타지도 떠올라서 행복했다. 타치바나와 함께 짝사랑의 기억에 푹 젖었던 수 페이지의 사랑스러움. 어쩌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나의 타치바나가 그 안에 함께 덮여 잠들지는 않았을까. 후에 다시 읽으려 펼쳤을 때 언제고 다시 생생히, 타치바나와 사랑을 추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내내 들었다.
봄과 여름 사이의 지금 이 계절에 딱 맞는, 특별한 짝사랑의 만화. 

* 이 리뷰는 대원씨아이의 지원으로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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