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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탄 ㅣ 위픽
백은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4월
평점 :
막 스무 살을 넘긴 나는 몹시 취약했고, 어디에도 제대로 발붙이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갈 곳은 없었고, 무너지는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기댈 곳 또한 없었다. 결국 가장 쉽게 손을 뻗을 수 있었던 인터넷 속에서 한참이나 나이 많은 언니를 만났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우스울 만큼 허술한 거짓말들이었다.
조금만 떨어져 바라보면 금세 알아챌 수 있었을 말들, 모순투성이의 태도들. 그런데도 그때의 나는 이상하리만큼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믿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간절히 선택되고 싶었고, 이해받고 싶었고, 버려지지 않고 싶었다. 결국 남은 건 사랑이라기보다 구걸에 가까운 마음뿐이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묻어둔 과거의 감정들이 천천히 부상한다. 사람은 왜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관계에 머무르는지, 왜 어떤 거짓은 알면서도 끝내 외면하게 되는지. 함부로 단정하지 않으며 대신 결핍과 외로움,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얼마나 쉽게 한 사람을 흔들리게 만드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어릴 적부터 나는 누군가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연인이 되었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깊게 얽혀 들어가는 감정들 앞에서 나는 언제나 침묵하는 쪽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 속 인물들의 위태로운 마음이 낯설지 않았다. 사랑을 믿고 싶은 마음과 사랑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단순히 누군가를 사랑했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가장 약했던 순간의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읽는 내내 오래된 감정들이 천천히 젖어드는 기분이 들었다.
“장마도 다 갔는데 아직도 비가 오면 어쩌지 싶어. 편지가 다 젖어버리고 잉크가 다 번져버리면 그 안에 든 마음까지 버려질까 봐.”
책 속 이 문장을 읽고 한참을 멈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