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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덜 외로운 ㅣ 걷는사람 세계문학선 2
고이케 마사요 지음, 한성례 옮김 / 걷는사람 / 2018년 1월
평점 :
이 소설에서는 ‘나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각 장마다 나무와 관련된 제목이 붙어있는데, 나무의 중심에 주인공이 있고 그 중심에서 출발하여 남자와 만나고 관계를 하고 다시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중심’이 자신이고 남자는 그 주변에 ‘원’을 그리는 형태로 존재한다. 자신의 남편과도 관계한 것을 안 친구에게서 “넌 왜 그렇게 가볍게 남자와 관계를 갖는 거냐.”라는 말을 들을 정도이지만 그렇다고 쾌락에 빠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무를 껴안고 있는 쪽이 더 행복하다. 이처럼 남자에게서 꺾어 돌아오는 운동을 반복하며 수직으로 뻗어간다. 가지를, 나이를 주위로 펼치면서 수직으로 자란다. 꺾어 돌아올 때마다 주인공 가쓰라코라는 나무는 성장하고 높아지고 흙 아래의 보이지 않는 부분은 깊이깊이 뿌리를 내린다. 주인공 자신도 모르는 어떤 존재를 찾아 뿌리를 내리고 타인을 호흡하고 타인을 자신 속으로 끌어들여 큰 나무가 되어 간다. 여기서 자신도 모르는 존재란 수맥이고, 호흡하는 것이란 쾌락 또는 엑스터시이다. 엑스터시의 어원은 ‘나에게서 나가서’, ‘내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즉 타인이다. 새로운 타인의 물을 빨아들여 수직으로 수직으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주인공은 동물적이고 감각적으로 격류 같은 인생을 흘러가지만 의지를 가지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