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함석헌선집 1 -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함석헌 지음 / 한길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함석헌 선생의 이 책을 두고 역사서로 생각한다면 오해일 것이다. 사료의 부족 때문이었는지, 연구의 부족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논리나 해설은 때때로 구태의연하며, 심지어는 일본에 의한 왜곡된 논리가 많이 뭍어나오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의미없는 것은 아니다. 선생의 역사 해석이 어떠하든간에, 그는 적어도 현재의 대한민국을 해석하고자 하며, 그 존재의미를 찾고자 하고, 그것을 나누고자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개별민족으로 태어난 자신을 잊지 않는다. 그는 섭리라 부르는 뜻에 의해 한국인으로 태어난 자신의 실존을 존중한다. 그토록 넓은 사고관을 가진 그지만, 코스모폴리탄적 방관자로 한국을 보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 내세울 것도 없이 고난 속에 압제 당해온 이 땅의 후손임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한국인으로서 ‘던져진’ 자신의 삶에서, ‘함께 던져진’ 한국 민족을 사랑하며, ‘함께 그렇게 던져진’ 이유를 알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된 개별적, 민족적 뜻이 있으며, 태어남 당한 이 삶을 그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뜻을 알기 위해 역사를 탐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단순한 학문적 탐구대상으로서의 역사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 그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지 않는다. 그는 2세기에서 머물지도, 15세기에서 머물지도 않는다. 잠시간 그 옛날의 일들을 탐구하며 가슴 치기도 하고, 애통하기도 하며,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지만, 적어도 거기서 멈추어 있지는 않는 것이다. 그 때를 향한 통한의 눈물도, 통쾌한 함성도 그에게 있어선 모두 지금을 위해 존재한다. 그의 눈은 2세기와 15세기를 보더라도, 그의 발은 언제나 지금의 시간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그에게 있어 역사는 현재의 필요를 위해 선택된 사실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필요는 ‘뜻’을 알기 위함이다. 현재의 나와 우리를 알게 해주는 역사. 나와 우리의 존재의미를 밝혀주는 역사. 더불어 나와 민족의 미래를 계시해주는 역사. 함석헌 선생이 알고자 하며, 나누고자 하는 역사는 그런 것이다.
선생은 이 책을 통해 한국의 우월성을 고취하고자 하지도 않으며, 열등감과 부끄러움의 자학에 빠지도록 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는 이 민족이 가진 역사적 의의를 열정적이고도 뜨거운 가슴으로 토로해내기 시작한다.해답은 이렇다. 그가 이 민족의 역사에서 발견한 것은 고난이다. 또한 그의 신앙에서 발견한 그리스도 또한 고난이었다. 그 지점에서 그는 고도의 비약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유비 아래서 한국 민족이 그리스도로 화하는 것을 소망하게 된다. 여기에 그가 발견한 민족적 ‘사명’, 섭리의 ‘뜻’이 드러난다. 그에게 있어서 민족의 고난과 굴욕은 결코 부끄러움이 아니게 된다. 그는 우리가 받은 고난이 세계 대속의 위대한 출발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이 인류의 구원에 이루었듯이, 이 민중의 고난과 눈물은 이제 자신을 비롯한 인류의 구원이 될 것임을 소망한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을 새롭게 깨달은 민족이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이제 자신이 그리스도의 길을 걷기 위한 의인이 되어야 하며, 옳고 바른 일을 위해 피 뿌리는 민족이 되어야 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 역사를 통해 우리 민족이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할지를 예정한 ‘뜻’일 것이다. 그 ‘뜻’이 그로 하여금 이 책을 쓰도록 한 것이다.이 책을 읽고 이기적이고도 소시민적인 자기 만족에 살던 나의 마음은 뜨거운 회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땅과 민족과 세계를 위한 새로운 기도를 시작하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