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기독교인이다. 거기에 골때리는 보수 교회를 다니고 있고, 그 가르침을 진리로 믿어오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그렇다고 꼴통처럼 귀를 막고 있지는 않다고 자부한다. 다른 종교, 다른 사상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대하려 하고 있으며,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자 애쓰고 있다. 그러나 한계를 분명히 느낀다. 나 자신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문자적 가르침을 거부할 권리가 있는가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종교가 준 두려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볼 수도 없다.

나는 오강남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여러 면에서 동감하면서도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우선 오교수와 같은 다원론자들의 주장의 이면에는 종교에 대한 실용주의적 사고가 많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들은 종교보다 그들이 생각하는 진리의 체계, 평화, 사랑, 공존 등의 가치를 더 높이 두고 있다. 아니 그들에게은 현실 종교는 거부하지만, 다른 이상과 가치의 종교를 창시하고, 그것을 섬기며, 그것을 위해 현실 종교를 벗어나길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상에는 그들이 원하는 그 이상과 가치는 비록 성숙하고 아름다운 것이기는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에 대한 헌신, 자신이 선택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헌신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종교라는 것을 단순한 나 자신의 의지와 기호에 의해 선택될 수 있는 것이라 여기지 않는다. 나 뿐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비이성적이고, 주체적인 사고가 아니라는 비판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주체나 이성적 사고라는 것도 사실 헛된 몽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성과 비이성, 주체와 비주체라는 것의 구분선도 얼마나 모호하고 어려운 것인가? 누가 충분히 주체적일 수 있으며 누가 충분히 이성적인가? 도리어 종교가 제시하는 진리를 나의 진리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주체적이지 않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기독교에 귀의한 나는 나의 기호와 멋짐을 위해 기독교를 재단할 마음은 없다. 그냥 기독교의 종교적 체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믿음의 저변에는 이 종교가 우리의 경험상 선하고 좋으며, 아름다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하는 증거들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믿어서 기독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나니 그렇다는 것을 자꾸만 확인하게 되는 것이리라.

그러나 오강남 교수의 지적이 잘못된 것 만은 아니다. 그의 생각은 적어도 기독교인, 교회가 가지고 있는 현실의 문제, 비록 그것이 다원주의적 사고만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타인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라는 예수님의 사역의 아름다움을 잃은 모습에 대한 비판으로서는 정당하다고 본다. 그것이 예수를 하나님으로 여기느냐, 여기지 않느냐의 신학적 문제를 가지고 싸울 일은 아니다. 적어도 예수가 하나님이든, 단지 인간일 뿐이든간에, 둘을 주장하는 모든 사람은 예수의 마음, 사역, 사랑, 존중에 대해서는 손을 잡고 전파하며, 실천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실 교회와, 한국의 개기독교인의 대다수들, 그리고 나 자신은 이러한 것에 대해 자랑할 것이 없으며, 회개해야할 뿐임을 알고 있다. 오강남 교수의 그 지적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와 교인들은 이 책을 통해 자성의 마음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교수의 마음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그 안에 있는 진리에 대한 열정이 결단코 누구보다 적은 것이 아님도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믿음을 공고히 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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