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부수는 말_이라영왜곡되고 둔갑되는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기. 타인의 고통을 나의 언어로 옮길 때와 마찬가지로 내 마음이 타인의 언어로 전달될 때 의도치 않은 오역이 발생한다. 그렇기에 영원히 내가 닿고 싶은 아름답고 정확한 언어의 세계에 닿지 못할지도 모른다. 정확하게 말하고 싶다는 나의 열망은 끝내 완수되지 못할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고 싶다는 나의 열망은 끝내 완수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쓰는 것이 아니라, 화두를 던지기 위해 쓴다. 권력의 말을 부수는 저항의 말이 더 많이 울리길 원한다. _작가의 말[여성은 시간에 갇힌다]남성 가부장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시간은 늘 무시당한다. 자본이 노동자의 시간을 소유하듯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여성의 시간을 소유한다. 결혼제도는 여성의 시간을 남성의 삶에 이식하는 제도이다. 시간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여성의 경우 삶의 맥락이 뚝뚝 끊긴다. '경력단절'은 여성의 경제활동만이 아니라 개인의 서사마저 단절시켜 언젠가부터 대부분의 여성은 이름 없는 '어머니'가 된다. 육아를 비롯한 돌봄노동과 집안 노동은 경력이 되지 못한다.[노동자의 언어를 정부의 언어로 오역하기]사회의 약자와 소수자에게 부지런히 언어를 빼앗는 권력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언어를 활용한다. 권력은 어떻게 언어의 보호장비를 갖추는가. 권력은 자신들의 특권과 비리, 각종 부패를 순화된 언어로 표현하거나 아예 다른 의미로 변형시킨다. 힘 있는 자들의 약탈과 착취는 늘 '관행'이란 이름을 얻는다. 권력은 언어의 개념을 지배한다. 여전히 다수의 언론은 성폭력을 '몹쓸 짓'이라는 완곡어법으로 얼버무린다. 미성년자 성착취를 '원조교제'라 부르고, 여성 성착취를 '스폰서'라 부름으로써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남성권력이 아니라 성을 이용해 돈을 받아내는 여성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린다. 힘이 윤리를 지배한다.[관심 없음]'나는 동물권이나 채식에는 관심 없다, 나에게는 젠더 문제가 우선은 아니다'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을 만난다. 자신의 상대적 무관심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무심한 공격성을 느낀다. 당연히 모든 사람이 모든 문제에 동일한 관심을 보일 수는 없다. 그러나 '관심 없음'을 입 밖으로 뱉어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관심이 없어도 괜찮은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권력 행위이기 때문에 놀란다. 고통의 우선순위가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은 이 사회의 권력이 정한 고통의 크기에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