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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
올더스 헉슬리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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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슬리의 타임머신이 사상의 지평선을 막 빠져나오자마자 뒤쪽의 웜홀게이트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구조물을 광속에 가깝게 가속, 감속을 시킨 탓에 부하를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웜홀의 시공간에 갇혀 영원히 빛을 보지 못했으리라. 헉슬리는 식은땀을 훔치며 계기판을 내려다보았다. 년대 측정기의 바늘은 정확히 1931년을 가리키고 있었다. 60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타임머신은 자동으로 적정입사각을 계산해내어 조심스레 대기권진입을 시도하였다. 선체가 심하게 요동치며 두랄루민 합금판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헉슬리는 재빨리 초내열 합금 개폐장치 스위치를 누르면서 동시에 터빈 블레이드 감속장치를 작동시켰다. 이 응급조치는 즉각 그 실효를 발휘해 극심하던 선체요동이 금방 잔잔하게 잦아들었다. 이제 순조롭게 지구로 내려앉으면 되는 것이다. 모든 상황등에 녹색불이 켜지는 걸 확인한 헉슬리는 한숨 돌리며 의자 등받이에 깊이 몸을 묻었다. 그리고는 품에서 작은 다이어리 하나를 꺼내들었다. 고풍스런 가죽양장의 표지를 넘기자 첫 장에 <공유, 균등, 안정>이라는 세 개의 단어가 적혀있는 것이 보였다. 이것은 그가 지난 몇 달간 여행했던 미래의 지구를 지배하고 있던 절대적 가치관을 표현하는 표어였다.

놀랍게도 미래에는 지구가 세계국가라는 미명아래 하나로 통합되고 완벽한 통제를 통해 인간이 인간을 제어하는 세상이 도래하는 것이었다. 20세기 사람들로선 상상도 할 수 없을정도의 눈부신 과학발전으로 인해 사람을 배양시험관에서 대량으로 생산해내고, 사회안정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사람이 만들어지는 그 순간 계급을 부여해 평생 자신의 맡은바 소임만을 다하도록 세뇌교육을 시킨다. 사람은 공장 시험관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으로 부모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부부관계 역시 맺을 필요가 없다. 만인은 만인의 것이다. 헉슬리는 자신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성관계를 제안하던 조건반사 양성소 여간부의 얼굴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미래에는 남녀간의 성관계가 더 이상 금기사항이나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매김해 있었다. 배양관 아기라는 과학기술을 통해 부부, 부모라는 개념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이러한 자유연애가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헉슬리는 기계문명의 발전이 이렇게 인간의 사회관습마저도 변화시키는 것을 보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더 섬뜩한 것은 그 세계에는 분명히 진보된 과학기술을 악용하는 전체주의적 망령이 맴돌고 있었다는 점이다. 유전형질의 우열을 기준으로 다섯등급으로 나누어 사람을 생산해내고, 상위계급의 사람들이 하위계급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한창 득세하는 나치의 생물학적 결정론이 먼 미래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에 헉슬리는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사람은 분명 우월한 유형과 열등한 유형으로 분류되고, 우월한 유형이 열등한 유형에 의해 오염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잠꼬대, 우수한 개체끼리만 짝짓기를 해서 인류를 개선시켜야 한다는 술주정, 미국과 영국의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이 우생학 운동도 다 삐뚤어진 권위주의와 과잉한 자의식에서 기인한 망상일 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자신이 본 미래세계는 나치나 우생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런 장밋빛 유토피아가 결코 아니었다. 연필깎이 기계로 일정하게 뽑아놓은 연필 같은 노동자계급의 클론들은 극단적 전체주의에 의해 변질된 미래세계 유령 그 자체였다. 헉슬리는 이번 여행에서 말 그대로의 지옥을 보고 온 것이다. 그는 훑어보던 다이어리를 덮으며 이번의 이 여행 기록을 꼭 출판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런데 책으로 만든다면 대체 어떤 제목이 좋을까? 아무리 고심을 해봐도 적당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순간 머릿속에서 어떤 문구 하나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 5막 1장에 나오는 대사였다. 헉슬리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읊조렸다. '인간이란 얼마나 멋진 존재인가! 오~ 멋진 신세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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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스타 스토리 The Five Star Stories 1
나가노 마모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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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책 1권을 처음 읽은 것이 10년 전이다. 당시 모든 또래친구들이 그랬듯 나 역시 드래곤 볼에 혼을 팔고있었고, 북두신권과 시티헌터 해적판에 심취해 있었다. 항상 교과서 안쪽에 손바닥만한 해적판을 끼워 넣고선 책 읽는척하면서 만화를 봤다.

얼마나 열심히 시선고정을 했던지 선생님께서 저 녀석은 책을 향해 한번 고개를 파묻으면 절대 딴청을 부리지 않는다고 나의 집중력에 대해 칭찬까지 해주실 정도였다. 그렇다. 이것은 그 어떤 웃긴 장면이 나와도 절대 웃지 않는 완벽한 포커페이스 연출과 교과서 밖으로 만화책이 삐져나오지 않도록 하는 전광석화와도 같은 손놀림 등으로 일구어낸 전설적인 일화라 할 수 있겠다.

아무튼, 나는 이토록 만화를 사랑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다양한 시간과 장소에서 더 재밌는 만화를 더 많이 볼 수 있을까에 대해서 항상 탐구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었다. 그렇게 만화를 탐독하며 유유자적하던 어느 날, 운명과도 같은 그녀들과의 만남이 찾아들었다.

그 날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던 5월의 눈부신 어느 날이었다.(우웩~) 나는 교실 창가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졸고있었다. 그런데 왠지 햇살의 빛깔이 이상했다. 그것은 찬란한 황금빛, 감은 눈이 시리도록 눈부신 황금빛이 내 얼굴 전체를 물들이고 있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그녀들이 거기 그렇게 있었다. 앞자리 친구녀석이 자랑삼아 흔들어대던 그것, 황금의 기사와 운명의 여신이 함께 그려진 너무나 아름다운 표지, 만화일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한 채 받아들었던 파이브 스타 스토리, 그 때까진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독특한 그림체와 멋진 스토리, 그리고 순식간에 내 눈을 멀게만들고 영혼을 집어삼킨 아름다운 파티마들과 FSS만의 독특한 분위기에 나는 겉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 갔다.

만화책을 본 후에 접했던 애니메이션은 그야말로 결정타라 할 수 있었다. 가슴이 진탕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당시 FSS를 향한 내 마음이 딱 그러했다. 분명히 사랑하는데 왜 사랑하냐고 물어오면 조목조목 짚어서 설명해줄 게 잘 생각나지 않는 것과도 같이 그렇게 FSS에 열광했다. 뭔가에 그렇게 심하게 필이 꽂혔던 건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실직고를 하자면 난 10년 전에 1권을 읽고 10년 후인 올해들어서야 2권부터 9권까지 다 읽어봤다. 이 말은 곧 지난 10년간 오직 FSS 1권 하나에 열광을 했었다는 얘기가 된다. 나 스스로 생각해봐도 신기하다. 그렇게나 좋아하면서 왜 후속권을 읽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자기합리화를 통해 도출된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나에게 있어 FSS라는 만화책은 바로 1권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 벚꽃이 날리던 어느 봄날 있었던 사춘기 소년과 여신과의 운명적 조우, 그것은 이성으로는 딱히 설명 불가능한 정신적, 문화적 충격으로 나의 뇌리에, 나의 가슴에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후속권을 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로선 눈부셨던 애니메이션도 1권 분량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이 점도 나에게 FSS하면 1권이라고 하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준 요소가 된 것인 듯 싶다.

영화건 만화건 소설이건 간에 하나의 예술작품이 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이토록 집요하게 지배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대단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 어떠한 명화나 명곡도 FSS처럼 10년 동안이나 나를 매혹시키지는 못했기에, 비록 조금 난잡한 스토리 전개가 눈에 거슬려도 흔쾌히 명작이라 인정하는 바이다.

p.s 1 : 하리수 씨 보면 항상 소프가 생각난다. 둘이 너무 닮았다.
p.s 2 : 앞짱구 메가엘라 너무 예쁘다. 엘라 짱! 엘라 짱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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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callas 2004-06-02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리수라니! 소프에 대한 모독임다.

슬라임 2008-03-14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리수라니!! 당신은 소프를 볼자격이 없어!!
 
이기적 유전자 - 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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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 라는 SF영화가 있다. 그 영화 속에서 인류는 유전자 조작 기술로 질병 발생률 0%, 폭력성향 0%의 인간을 만들어내고 모든 열성인자의 제거는 물론이거니와 남녀 성별까지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유전공학으로 슈퍼 옥수수를 만들어내듯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슈퍼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휴먼 게놈 프로젝트(H.G.P)가 완성되어 DNA의 염기배열 구조가 모두 밝혀지면 머지않아 실제로 다 경험하게 될 일들이다. 이런 일들이 가능한 이유는 유전자 속에 우리의 모든 생물학적 성향을 결정하는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고 또 그 짜여진 프로그램대로 하나의 생명체가 형성되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렇게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생명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도킨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단순히 유전자의 꼭두각시로서 유전자가 미리 짜놓은 프로그램대로 생각하고, 움직이고, 사랑하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유전자가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생존기계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이제 유전자의 보존과 직결된다. 내가 가족들을 아끼고 위하는 것은 나와 비슷한 유전자를 지닌 인간들에게 도움을 줘서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행동일 뿐이고, 선행을 하는 이타적인 행동도 결국은 남을 도움으로써 현재의 주변 여건을 개선시키려는 행위, 즉 유전자의 안전한 보존에 그 동기가 있다. 한 마디로 유전자는 자신의 생존 외에는 그 어떠한 것에도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존재인 것이다.

도킨스의 이 유전자 결정론은 극단적인 환원주의임에 분명하다.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단순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하지만 단순하면서도 현명한 통찰력이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까운 미래에는 틀림없이 유전자 상품화(green gold) 붐이 일어날 것이고, 그 때 이 게놈혁명에 불씨가 되어준 패러다임을 찾아들어가다 보면 그 시작점에 분명히 이기적 유전자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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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중 나선 - 유전자, 생명체 그리고 환경
리처드 르원틴 지음, 김병수 옮김 / 잉걸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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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보면 인위적인 제어를 통해 우성과 열성의 인간을 따로 생산해내고 그들을 각각 알파, 베타, 델타, 감마, 엡실론 급으로 나눈다. 이렇게 한번 정해진 우열의 법칙은 결코 깨트릴 수 없으며 유전적으로 우수한 부류가 그보다 못한 열등인자의 인간을 지배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계급에 의해 한 인간의 일생이 정해지고 그 계급이 그 사람의 모든 됨됨이를 대변해주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멋진 신세계의 사람들은 조금의 불만도 없다. 불만은커녕 그러한 부조리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그 세계에선 유전자의 우열이 모든 계급간 차별을 정당화 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에드워드 윌슨과 리처드 도킨스의 유전자 결정론이 악용되었을 때 닥칠지도 모르는 암울한 세계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한 세상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유전자 결정론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리처드 르원틴이다.

르원틴은 이 3중 나선에서 하나의 생명체를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뿐만이 아니라 그 생명체가 살아가는 주변환경도 한몫을 톡톡히 한다고 주장하면서 극단적인 생물학적 결정론을 비판한다. 개인적으로 이 주장에 상당부분 공감하는 편인데, 실제로 일란성 쌍둥이라해도 사회관습이나 생태학적 여건이 전혀 다른 곳에서 자라게되면 성격이나 취향뿐 아니라 외형적인 모습마저도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되어있다. 3중 나선에선 실증적인 실험 데이터를 내세워 이러한 이론에 타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일방적인 전문지식의 나열과 딱딱한 어조 등으로 다소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르원틴이 근본적으로 주창하려는 바가 인간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일깨우는 호소인 듯하여 나름의 애정이 가는 책이다. 유전자의 선택에 의해, 유전자가 정해준 대로만 걸어가야 한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지 않은가? 누가 알겠는가, 무저항 비폭력의 간디가 실제론 반사회성 성격장애라는 이상심리 유전인자를 지니고 있었을지 말이다. 만약 정말 그랬다면 그가 조폭이 되지 않은 이유는 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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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1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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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보기로 빌딩을 들이받은 알 카에다의 자살특공대, 일부 사람들의 눈에 이 행위는 테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은 이를 '성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9.11 사태를 '테러'라 칭하는 사람이건 '성전'이라 칭하는 사람이건 간에 양쪽 인물들의 공통점을 꼽는다면 저마다 다 하나의 강력한 신념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자신과 전혀 다른 타인을 마치 한 몸처럼 이어주는 정신적 신념, 동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전염성 강한 이 문화적 신념을 밈(Meme)이라 칭했다. 인류사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밈을 들라면 역시 뭐니뭐니해도 종교를 말할 수 있겠으나, 이 종교를 능가하는 인간의 신념으로 이데올로기가 있다.

태백산맥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이데올로기 대립을 그 배경으로 하고있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저마다 강력한 정신적, 문화적 신념에 휩싸여있거나 그 가장자리를 배회한다. 사회주의 이상향을 꿈꾸는 정열의 염상진,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김범우, 공산당이라면 이를 가는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 등은 이데올로기라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친구, 형제간에도 총부리를 겨누고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다. 민초들의 해방을 위해 공산당에 투신한 하대치는 신념의 화신 그 자체이고, 정하섭이라는 남자의 그림자만을 쫓다보니 어느새 빨치산이 되어있는 무당 소화의 신념은 사랑이다. 대체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지주계급 역시도 과거 유교사상에 입각한 나름의 신념이 있다. 양반은 양반, 상것은 상것, 각자의 본분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정도랄까. 피해자로 설정되어 있는 소작농에 반하는 지주들의 이러한 신념은 다분히 자기합리화에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유림의 태생적 토양을 생각할 때 뿌리부터 전제적인 지주들의 사상은 그들로선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이렇듯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엔 백치가 없다. 각계각층,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마다 다 나름의 신념과 의지에 휩싸여있고 그들의 언행에선 힘이 넘쳐흐른다. 역사의식이 투철한 이 소설의 힘은 저 개성 강한 캐릭터들에서 기인한 것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태백산맥에는 유달리 자기만의 신념을 지닌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가? 그것은 아무래도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에 기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당시 한반도는 온갖 인간군상과 집단의 이해관계가 얽히던 혼돈의 땅이었다. 침략과도 같은 강대국들의 간섭에 시달리고, 새로이 고개를 들기시작하는 이데올로기의 실험장이 되어야했으며,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기존의 사회구조를 사수하려는 기득권자와 이를 전복시키려는 소외계층간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런 혼탁한 시대상황 속에 내던져진 인간이 그 어떠한 심경의 변화도 없이 고요하기만을 바란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붕어가 탁류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탁류에 걸맞는 연어로 변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저마다 피눈물나는 기구한 사연 속에서 마지막 구원과도 같은 신념 하나 품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 수 없었던 민초들의 이야기가 태백산맥에 녹아있다.

이 소설을 읽어봐라. 그럼 비행기로 빌딩과 헤딩을 할 정도로 자신만의 신념에 찬 자살특공대의 정신세계를 조금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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