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좋은 삶을 사는 것에 관하여 잘 숙고하는 사람’이 실천적 지혜가 있는 현명한 사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여러 각도에서 질문을 던지며 시의적절하고 상황에 잘 맞은 답을 끌어내는 것이 바로 프로네시스이겠지요.
‘회의’란 어떠한 진리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지는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진리라고 믿는 것조차도 끊임없이 검토하겠다, 즉 그것이 진리라고 판단하기를 유보하겠다는 태도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고려하면서 의도적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선택하고 적절하게 드러냅니다. 때로는 그러려고 애쓰지 않는데 자연스럽게 되기도 하고요. 이건 이중성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정리된 ‘나’야말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확신은 우리가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를 안주하고 엉뚱한 길로 가게 하거든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스스로의 모습과 행동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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