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의 쥐
이은 지음 / 예담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고상하지 않은 그곳에 대한 이야기

생전 처음으로 미술관이라는 곳에 가 보았던 때는 언제일까.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별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름 상업미술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분명 반성해야할 일이다. 그렇지만 어렵고 복잡한 현대미술을 관람하는 것보다 차라리 예술품 관련 서적 탐독을 더 선호하는 나로서는 미술관에 대한 특별한 기억 같은 것은 없다. 대신 아는 사람에게 들은 미술계 이야기가 있다. 그 해 그림 몇 점을 몇 억에 팔았다는 그 화가는 내게 자랑스럽게 이렇게 얘기했다. “예를 들자면 말이지, 내가 그림을 1억에 팔았으면 중개상에게 어떻게든 절반은 줘야 해.” 어떤 방식으로 돈을 주냐고 묻자 그 사람은 손을 들어 도박을 하는 흉내를 냈다. 일부러 화투에 져서라도 돈을 쥐어줘야 한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화가는 너무나 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었다. “그렇게 해야 다음 그림을 사 주니까.” 그랬다. 그림은 상품이었다. 제작과 홍보, 그리고 심지어 로비까지 필요한 막대한 가격의 상품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화가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의 허풍이 들어갔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하지만 소위 말하는 미술품 거래에도 로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당시 아직 청소년이었던 내게 나름 큰 충격으로 남았다. 그런 미술품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 그것도 한국작가가 썼다는 추리소설이어서 굉장한 기대를 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갓 데뷔한 신인에게는 전시회를 허락하지 않는다며, 드높은 콧대를 자랑하던 정로 미술관의 관장이 자살한다. 그는 죽기 직전 자신을 방문한 신진 화가에게 이렇게 묻는다.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나?”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매체를 통해 문화를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정도는 그런 자문을 해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진부한 질문이지만 그 누구도 자신만만하게 정답이라고 외칠 수 없는 이 물음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주제이다.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림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화가를 연결해주는 중개상, 전시관을 운영하는 사람들, 심지어 그런 일들을 보도하는 언론계 사람들까지도.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한다. 예술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그렇다면 요즘 같은 사상 초유의 불황이 시장을 휩쓰는 이 시기에 예술이 뭐라고 묻는 사람들보다 그저 말없이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사람들이 진짜 승자일까, 예술도 현실이라며 기꺼이 마케팅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진짜 승자일까. 누가 승자가 되느냐에 따라서 예술의 의미는 달라지는 것일까. 질문은 다시 또 다른 질문을 낳고, 또 다른 질문은 계속되는 번민을 낳는다.

 

한국 추리소설과 그냥 추리소설

추리소설은 독자에게 스릴이라는 간접체험을 선사하는 문학의 일종이다.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면 경찰이 출동하고 신문에서 보도를 하고 사람들은 범인이 누구일까 궁금해 한다. 그때 탐정이 등장하고 몇몇 에피소드를 거쳐 결국 그 혹은 그녀가 범인을 찾아내면서 독자들은 사건의 이면에 숨은 그 의도에 대해 알게 되고 또 감탄한다. 이런 정통 추리소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소설은 그렇게 흡입력을 가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작가는 후기에서 사회파 미스터리가 유행하는 요즘 세태에 대하여 정공법으로 나아갔다고 말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추리소설을 위장한 사회고발소설 정도라고 정의를 내려야 할 것 같다. 돈이 오가는 곳에는 늘 더러운 냄새가 난다. 예술이라는 분야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유명한 작가의 그림을 모작해서 큰돈을 받고 팔아넘기는 사람들이야 국내외를 막론하고 당연히 있을 것이지만 지금까지 한국 추리소설에서는 그런 분야가 없었는데 그것을 개척했다는 부분에서만 어느 정도 별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무시하는 말이 아니라 추리소설이라는 큰 틈바구니에서도 같은 의견이다.

 

다시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별점을 주고 싶은 이유는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은 작가의 진심을 어느 정도 보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직도 예술이라는 그 명제 하나만으로 자신의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 사람들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돈이 예술이 되어버린 세태에 화를 내면서도 거기에 물들어 버린 사람들에게 매서운 질타를 하기 보다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슬퍼한다. 그리고 거기에 저항하다 힘없이 죽어버린 사람에 대해서도 동정을 표한다. 어디에든 쥐는 산다. 고상함의 상징이라는 미술관에도 쥐는 산다. 사실은 미술관이 고상함의 상징이라고 얘기한다는 것부터가 조금 진부한, 당신들만의 이야기라는 선입견이 생긴다. 미술품 거래에 부정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저 포장하기 좋은 이야기일 뿐 외국의 사례를 흔히 접한 우리들에게 있어 한국의 미술관이 기품 있는 선비들만 모인 곳이라고 얘기한다면 그것부터 좀 촌극으로 보인다. 추리소설로써도, 사회고발소설로써도 약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 이유이다. 그러나 예술을 사랑하고, 아직도 예술은 고상한 것이라 생각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의지를 꺾고 싶지는 않다. 예술은 예술이니까. 그리고 예술의 원래 의미는 사실 고상한 것이니까.(라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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