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예수 - 종교로부터 예수 구하기
강남순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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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말하는 예수님과 내가 아는 예수님에 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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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빈곤 사회 - 나는 질문한다, 고로 존재한다
강남순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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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것은 무조건 순응하지 않고 다시 돌아본다는 것. 잊고 있던 점을 환기시켜 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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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이다 -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룩한 대왕 세종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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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왕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왕을 꼽으라고 하면 대부분 세종대왕을 뽑을 것이라는 데에 이견은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왕이 아니라 대왕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니까. 그런 만큼 소설, 드라마,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 분의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해 알만한 사실은 다 알려져 있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을 패러디한 것 같은 엄청나게 강력한 제목에 끌려 과감하게 골라 들었다. 언제였던가, KBS에서 드라마 ‘대왕세종’을 했을 때 정말 힘들게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드라마에서는 만원짜리 지폐에서 보았던 자애로운 미소의 왕이 아니라 언제나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왕만 나왔다. 저렇게 날이면 날마다 스트레스만 받아서야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왕을 둘러싼 상황은 늘 나쁘게 돌아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랜 세월을 함께했던 친구들과 부인, 시력을 차례차례 잃어가는 등 왕의 상황은 절대로 좋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소신을 절대로 굽히지 않는 그 고집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 고집이 세종대왕을 조선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장 선량한 왕

책은 4개의 챕터로 나뉘어 세종대왕의 어린 시절과, 집권기의 전반, 후반, 그리고 사후를 그리고 있는데 그 때마다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왕의 선량함과 성실함이다. 세종대왕은 준비되지 않은 왕이었고 집권 초기에는 아버지의 꼭두각시였으며 후기에는 한글 창제를 둘러싸고 신하들과 치열한 머리싸움을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은 결코 주위에 있는 사람을 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이 힘을 가지면 휘두르고 싶어지는 것이 본능일 테지만 왕은 화를 낼지언정 사화를 일으키거나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켰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랬기에 한 명의 신하가 십 년이 넘는 세월동안 정승의 자리를 그대로 지키며 왕을 보좌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가장 위대한 왕이면서도 한편으로 가장 선량한 왕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비극적인 왕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정말로 비극적인 왕이었다. 살아생전에 험한 모습을 보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자식들은 모두 처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둘째 아들인 세조의 행적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과거의 잘못을 덮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공적을 남겼기에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친형제를 죽이고, 아버지가 아끼던 신하를 죽이고, 그 가솔들을 노비로 만드는 등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흘려야 했던 피와 눈물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보다 비극적인 것은 조선을 위하여 그가 만들었고 정리했던 수많은 법전이나 조례, 업적들이 그 이후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찍 죽은 자식들만큼이나 허망한 결말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책의 말미에 후손 가운데 그 누구도 세종대왕을 따르기 위해 노력은 했을지라도, 넘어서려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가장 비극적인 왕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유명한 왕

역사책을 들면 늘 같은 기대를 한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그리고 그 일들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런 기대를 채워주지는 못한다. 작가는 일목요연하게 세종대왕의 모든 것을 잘 정리해서 풀어 놓았지만 지나치게 간결한 설명과 같은 내용의 반복, 그리고 결정적인 대목에서는 그저 추정에 불과한 사실들을 의문형으로 늘어놓기만 할 뿐이다. 왕조실록이나 현대에 전해지는 고서들에만 의존해야 하는 입장에서 소설적인 상상력이 가미되어 널리 퍼진 잘못된 사실들을 바로잡는다거나 세종대왕에 대한 불편한 진실(그가 선량한 독재자였다고 주장한다)을 토로하는데 전체적으로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책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다만 한 인물의 앞과 뒤, 양 옆을 다양하게 조망했다는 점에 대해서만 의의가 있다. 세종대왕은 가장 유명한 왕이기도 하다. 현대의 독자라면 그 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기에 그만큼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을까. 의문형으로 마무리할 바에는 차라리 사료의 나열에 좀 더 충실하거나, 책이 더 얇았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책은 뒷심이 좋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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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쥐
이은 지음 / 예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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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하지 않은 그곳에 대한 이야기

생전 처음으로 미술관이라는 곳에 가 보았던 때는 언제일까.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별로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름 상업미술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분명 반성해야할 일이다. 그렇지만 어렵고 복잡한 현대미술을 관람하는 것보다 차라리 예술품 관련 서적 탐독을 더 선호하는 나로서는 미술관에 대한 특별한 기억 같은 것은 없다. 대신 아는 사람에게 들은 미술계 이야기가 있다. 그 해 그림 몇 점을 몇 억에 팔았다는 그 화가는 내게 자랑스럽게 이렇게 얘기했다. “예를 들자면 말이지, 내가 그림을 1억에 팔았으면 중개상에게 어떻게든 절반은 줘야 해.” 어떤 방식으로 돈을 주냐고 묻자 그 사람은 손을 들어 도박을 하는 흉내를 냈다. 일부러 화투에 져서라도 돈을 쥐어줘야 한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화가는 너무나 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었다. “그렇게 해야 다음 그림을 사 주니까.” 그랬다. 그림은 상품이었다. 제작과 홍보, 그리고 심지어 로비까지 필요한 막대한 가격의 상품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화가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의 허풍이 들어갔을 것이라 생각하기는 하지만 소위 말하는 미술품 거래에도 로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당시 아직 청소년이었던 내게 나름 큰 충격으로 남았다. 그런 미술품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 그것도 한국작가가 썼다는 추리소설이어서 굉장한 기대를 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갓 데뷔한 신인에게는 전시회를 허락하지 않는다며, 드높은 콧대를 자랑하던 정로 미술관의 관장이 자살한다. 그는 죽기 직전 자신을 방문한 신진 화가에게 이렇게 묻는다.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나?”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매체를 통해 문화를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정도는 그런 자문을 해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진부한 질문이지만 그 누구도 자신만만하게 정답이라고 외칠 수 없는 이 물음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주제이다.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림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화가를 연결해주는 중개상, 전시관을 운영하는 사람들, 심지어 그런 일들을 보도하는 언론계 사람들까지도.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한다. 예술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그렇다면 요즘 같은 사상 초유의 불황이 시장을 휩쓰는 이 시기에 예술이 뭐라고 묻는 사람들보다 그저 말없이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사람들이 진짜 승자일까, 예술도 현실이라며 기꺼이 마케팅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진짜 승자일까. 누가 승자가 되느냐에 따라서 예술의 의미는 달라지는 것일까. 질문은 다시 또 다른 질문을 낳고, 또 다른 질문은 계속되는 번민을 낳는다.

 

한국 추리소설과 그냥 추리소설

추리소설은 독자에게 스릴이라는 간접체험을 선사하는 문학의 일종이다.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면 경찰이 출동하고 신문에서 보도를 하고 사람들은 범인이 누구일까 궁금해 한다. 그때 탐정이 등장하고 몇몇 에피소드를 거쳐 결국 그 혹은 그녀가 범인을 찾아내면서 독자들은 사건의 이면에 숨은 그 의도에 대해 알게 되고 또 감탄한다. 이런 정통 추리소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소설은 그렇게 흡입력을 가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작가는 후기에서 사회파 미스터리가 유행하는 요즘 세태에 대하여 정공법으로 나아갔다고 말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추리소설을 위장한 사회고발소설 정도라고 정의를 내려야 할 것 같다. 돈이 오가는 곳에는 늘 더러운 냄새가 난다. 예술이라는 분야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유명한 작가의 그림을 모작해서 큰돈을 받고 팔아넘기는 사람들이야 국내외를 막론하고 당연히 있을 것이지만 지금까지 한국 추리소설에서는 그런 분야가 없었는데 그것을 개척했다는 부분에서만 어느 정도 별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무시하는 말이 아니라 추리소설이라는 큰 틈바구니에서도 같은 의견이다.

 

다시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별점을 주고 싶은 이유는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은 작가의 진심을 어느 정도 보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직도 예술이라는 그 명제 하나만으로 자신의 작품 활동에 매진하는 사람들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돈이 예술이 되어버린 세태에 화를 내면서도 거기에 물들어 버린 사람들에게 매서운 질타를 하기 보다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슬퍼한다. 그리고 거기에 저항하다 힘없이 죽어버린 사람에 대해서도 동정을 표한다. 어디에든 쥐는 산다. 고상함의 상징이라는 미술관에도 쥐는 산다. 사실은 미술관이 고상함의 상징이라고 얘기한다는 것부터가 조금 진부한, 당신들만의 이야기라는 선입견이 생긴다. 미술품 거래에 부정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저 포장하기 좋은 이야기일 뿐 외국의 사례를 흔히 접한 우리들에게 있어 한국의 미술관이 기품 있는 선비들만 모인 곳이라고 얘기한다면 그것부터 좀 촌극으로 보인다. 추리소설로써도, 사회고발소설로써도 약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 이유이다. 그러나 예술을 사랑하고, 아직도 예술은 고상한 것이라 생각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의지를 꺾고 싶지는 않다. 예술은 예술이니까. 그리고 예술의 원래 의미는 사실 고상한 것이니까.(라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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