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양장)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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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들의 이야기엔, 언제나 호기심이 생긴다.

아마 이 책에 손을 가게 만드는 건 글쟁이들의 글이 잡아 끌기 때문이다. 글이 부른다. 독자의 눈과 손을.

책만보는 바보가 그랬듯이 이옥과 김려, 두 글쟁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어쩜 좀 더 재미있다. 고생스럽고 차디 찬 유배생활이지만 멈출 수 없었던 글쟁이의 손.

글을 쓸 수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던 시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만 같던 친구 이옥이였지만 그가 남겼던 글은 그와 함께했던 시간도, 그리운 친구 이옥도 그대로 살아있는 듯 하다.

 

말을 조리있게, 재미있게 잘하는 사람도 좋지만, 요즘엔 글을 매력적으로 쓰는 사람이 더 멋지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한 문장을 쓰면서 얼마나 많이 고쳤을까? 이 단어가 나을까? 이게 좀더 괜춘지않을까? 했을 그 시간들이 왠지 모를 즐거움으로 느껴지기때문이다.

 

내가 같이 있어주겠네' 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었다는 것. 그 기억만으로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이 말을 듣고 싶은 마음도 간절해지지만, 그 보다 누군가에게 단 한명이라도 내가 그런 말을 해주는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긴다.

슬픔을 나누어 질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사실, 이 책은 다른 감상보다는 속의 글을 소개하고 싶다.

와_ 하게 만들었던, 매의 눈을 가진 자의 힘을 알게해 준 글.

이 책을 보물 책이라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 시대에는 유배지를 끌려갈 이유가 되었지만,

나에게는 새삼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  

 

내가 더부살이하는 점사는 저자에서 가깝다. 매달2일과 7일이 들어간 날에는 저자의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온다.(...) 12월 27일은 장이 서는 날이다. 나는 대단히 심심해서, 문구멍을 통해 바깥 저자의 광경을 엿보았다.

 

소와 송아지를 몰고 오는자, 두 마리 소를 끌고 오는 자,  닭을 안고 오는 자, 문어를 끌고 오는 자, 돼지의 네 다리를 묶어서 메고 오는자, 청어를 묶어서 오는자, 청어를 엮어서 늘어뜨려 가져오는 자, 북어를 안고 오는 자, 대구를 가져오는자, 북어를 안고 대구나 혹 문어를 가지고 오는 자, 담배풀을 끼고 오는자, 땔 나무와 섶을 메고 오는 자, 누룩을 짊어지거나 혹 이고 오는자, 쌀 주머니를 메고 오는자, 곶감을 끼고 오는 자, 한권의 종이를 끼고 오는자, 접은 종이를 손에 들고 오는자, 대광주리에 순무를 담아 오는 자, 짚신을 늘어뜨려 들고 오는 자, 새끼로 꼰 신발을 들고 오는 자, 큰 베를 끌고 오는 자, 목면포를 묶어서 휘두르며 오는자, 자기를 끌어안고 오는 자, 분과 시루를 짊어지고 오는 자, 자리를 겨드랑이에 끼고 오는자, 나무로 돼지고기를 꿰어가지고 오는 자, 오른손으로 엿과 떡을 움켜쥐고 먹는 아이를 업고 오는 자, 병 주둥이를 묶어서 허리에 차고 오는 자, 물건을 짚으로 묶어서 가져오는 자, 버드나무 광주리를 짊어지고 오는자, 소쿠리를 이고 오는 자, 표주박에 두부를 담아서 오는 자, 주발에 술이나 국을 담아서 조심스럽게 오는 자가 있다. 

1799 이옥<시가> p41-42

 

  
눈이 같으면 코가 다르고, 코가 같으면 입이 다르고, 입이 같으면 얼굴빛이 다르고, 모두 같으면 키와 체구가 다르고, 키와 체구가 같으면 자세가 다르다, 나한들은 혹은 서고 혹은 앉고, 혹은 숙이고 혹은 옆의 것에 붙고, 혼은 왼쪽을 돌아보고 혹은 오른쪽을 돌아보고, 혹은 남과 이야기하고, 혹은 글을 보고, 혹은 글을 쓰고, 혹은 귀를 기울이고, 혹은 칼을 지고, 혹은 어깨를 기대고, 혹은 머리를 떨어뜨리어 근심하는 듯하고, 혹은 생각하는 듯하고, 혹은 기쁜 듯 코를 쳐들고 있다. 혹은 선비 같고, 혹은 관리같고, 혹은 아녀자 같고, 혹은 무사같고, 혹은 병자 같고, 혹은 어린애 같고, 혹은 늙은이 같다, 천명이 모인 모임이요. 일만명이 모인 시장 같다.  p106

 
  

지금 내가 술을 마시고 있는데, 술병을 들어 찰찰 따르면 마음이 술병에 있고, 잔을 잡고서 넘칠까 조심하면 마음이 잔에 있고, 안주를 잡고서 목구멍에 넣으면 마음이 안주에 있고, 객에게 잔을 권하면서 나이를 고려하면 마음이 객에게 있다. 손을 들어 술병을 잡을 때부터 입술에 남을 술음 훔치는 데 이르기까지, 잠깐하는 근심도, 닥친 상황을 근심하는 근심도 없다. 바로 이것이 술을 마심으로써 근심을 잊는 방도요, 내가 술을 많이 마시는 까닭이다.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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