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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백과사전 - 광수의 뿔난 생각
박광수 글.그림 / 홍익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박광수라는 작가 이름만 봐도 이번에는 어떤 생각을 심어줄지 궁금하게 만든다.
등잔 밑이 어두워 헤매이는 이에게 형광등을 훤히 켜주면서 더 많은 것을 바라보게 한다.
늘 주변에 떠돌지만, 자각하지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빼내어 준달까나. 카툰의 유머러스함이나 유쾌함도 좋지만, 이 작가의 최고의 매력이라면 사물에 대한 것이든, 사람에 대한 것이든 좀 더 긍정의 마음을 준다. 내가 책을 볼 때 가장 중점을 두는 점이다. 에너지를 얻고 싶다고 느낄 때 주저없이 책 한권을 집어 드는 버릇이 생긴것도, 친구에게 위로가 되어주고 싶을 때에도 어떤 책을 선물해 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참 주책이다.
책제목 그대로 사전이다. 악마광수작가의-
기역'에서 시작해 히읏'으로 끝나는 몇 개의 단어들을 카툰, 정의, 주로 쓰이는 예, 그리고 작가의 글 이런 형식을 이룬다.
악마 광수의 단어들이 궁금하다. 느긋하게 보려고 커피집에서 차 한잔을 앞에 놓았다.
몇 장 넘기지 않아서 차가운 얼음때문에 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처럼, 내게도 물방울이 생겨버렸다. 눈물일 줄이야..
그렇다면 조용히 내 방에서 보았을텐데..
p 37. 건망증-
자꾸 깜박깜박하셔서 소금간을 세번이나 한 엄니의ㅣ 된장찌게 -
그런 쓰디 쓴 소금된장찌게를 맛있게 드시는 아버지의 사랑.
사랑하는 울 엄니.
아들이 대신 슬퍼 할지니
당신은 슬퍼하지 마세요.
반짝반짝 빛나던 당신의 기억력이
겨울밤 매서운 바람을 견뎌내지 못하는
낡은 문의 너덜너덜해진 창호지 같아도
그 추억으로 버티어 냈으니 말이에요.
사랑하는 울 엄니
아들이 대신 슬퍼할지니
당신은 슬퍼하지 마세요.
아들을 위해 천릿길을 걸어내도 성성했던
당신의 두 다리가, 이제 서 있기도 힘들어졌어도
당신을 위해서라면 당신을 업고
만릿길을 갈 아들이 있으니 말이에요.
사랑하는 울 엄니.
다 잊어요. 슬펐던 기억.
아팠던 마음, 서글펐던 지난 날들을
다 잊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세요.
단한가지, 제가 당신을 사랑했던
그 마음만은 잊지 마시고요.
요새 왜이렇게 깜박깜박하는지 모르겠다. 이제 나이는 어쩔 수 없나봐- 라던 엄마의 말이 귓가에서 맴돈다.
작가의 말이 내 마음이 되버렸고, 부모님에게 꼭 해드리고 싶다. 그 전에 아주 많은 시간, 많은 추억들을 함께하고 싶다.
어느새 이런 글에 울컥해버릴 나이가 되었다는 것도 새삼 느껴진다.
장황하지 않은 글로 독자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해줄 수 있는 게 이 책의 특징이다.
p140 배려 - 보살펴 주거나 도와주려고 마음 씀
누구나 충분히 갖고 있다고 스스로 믿지만, 막상 베품의 순간이 오면 가장 인색해지는 것.
그래서 어떤 이들은 진정한 배려란 용기와 동의어라고 말한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상대방을 힘것 껴안아주는 것.
그렇게 전해진 향기로 상대의 가슴 저 밑바닥까지 훈훈하게 만드는 것.
남의 지시에 따라서가 아니라, 남의 이목을 신경쓰지 않고서 1초의 망설임 없이 나오는 배려는 용기있는 사람의 것이다.
하다못해 버스안이나, 지하철에서 타인에게 자리를 양보할때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안부 문자 한 통 보낼때에도 두 세번 고민하고 있는 나는 용기를 200l는 먹어야할 듯한.. 그래서 작가의 말이 좀 아프다.
굳이 배려깊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사람과 소통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메세지를 난 잘 알아들었을까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이 책의 주는 글로 독자들이 각각 다른 생각과 느낌을 갖게 된다면 그것 역시 묘미라고 생각한다. 그의 백과사전은 흰 쌀로만 한 밥만 먹다가 검은콩, 완두콩, 현미, 보리쌀이 골고루 섞인 따뜻한 영양밥 한 그릇 먹은 듯하다.
바람부는 날 들판 한 가운데 놓인 평상에 앉아서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