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만나 볼 책입니다.
식물로 보는 한국사 이야기인데 총 3권에 걸쳐
5천년의 한국사에 대에 다루고 있다고 하네요.
시대별로 다루는 재미가 있으니
아이와 꼭 읽어 보시길 '강추' 드릴게요 !
책 소개 시작합니다 !
쌀 이야기
현재 지구상에는 30여만 종의 식물이 있고,
우리 한반도에는 4천 5백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어요.
전 세계의 40%의 사람들이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고,
벼농사는 1만여년 전 쯤부터
중국 남부와 인도, 인도 차이나 등지에서 시작되어서
중국을 거쳐 전해졌어요.
식석기 후반부터 벼농사가 시작되었고,
삼한시대에 이미
쌀을 식량으로 이용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쌀을 생산함에 따라
잉여 생산물이 늘게 되고
계급 사회가 되었다고도 해요.
쌀 '미(米)'자는 본래 벼 이삭이 상하 좌우에
매달린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옜날부터 이 글자를
'八'과 '八'을 합한 글자로 보았대요.
쌀농사는 볍씨를 뿌리고 가꾸어,
밥이 되어 입에 들어가기까지 여든여덟 번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대고 해서 쌀 '미'자가 되었다는 거래요 -
정말로 그래요.
쌀을 얻기 위해 벼를 재배하는 농사는 참 고단한 일이죠.
농경지에 볍씨를 뿌리고 가꾸어 거두기까지..
사람의 손이 많이 가야하니까요 -
신라 금관 이야기
금관은 옛날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이예요.
신라 금관은 경주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4~6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이에요 -
이 금관에는 나무 모양의 장식이 붙어 있어요.
나뭇가지가 양쪽으로 마주해 있고,
가지 끝은 각각 생명의 상징인 심장을 떠올리게 하는
하트 모양의 나뭇잎이 매달려 있어요.
'금관'을 '나무 모양'으로 장식하는 건
기마 민족의 후예인 신라 사람들이
수목을 신성시해서 신(神)의 강림처로 생각했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금관의 주인을 제사장, 즉 샤먼(무당)으로 보는데,
금관을 장식한 나무가 자작나무라고 해요.
'자작나무'는 우주의 중심에 서 있는 나무로,
이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대요.
실제로 신라 금관의 기원을 시베리아 샤먼의
철제 모자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고 해요.
'신단수'가 하늘과 땅을 연결해 준다는 생각에
나무 모양의 장식이 신단수를
나타낸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대요.
어떤 학자는 신라 금관이 죽은 사람을 위한
일종의 마스크로 보기도 했대요.
실제로 무덤 속에서 신라 금관이 발견 되었을 때
죽은 사람의 얼굴을 덮은 상태였기 때문이라나요 -
또, 죽은 사람의 무덤에 넣기위한 부장품이라는 견해도 있다고하니
금관 하나로 추측할 가정들이 참 많은것 같죠?
무령왕릉의 목관 조간이 썩지 않은 이유
무령왕릉 목관 판자 조각이 썩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은 옻칠을 했기 때문이래요.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옻칠을 했는데,
가구 · 미술 · 공예품 등의 도료로 사용했대요.
그만큼 우리나라 옻칠의 품질이 우수하고 탁월했다고 해요.
백제는 특히 활칠이 유명해서
당나라 태종이 백제에 사신을 보내 황칠을 구하여
갑옷에 칠을 했다고 해요.
신라에는 옻칠을 맡은 칠전이란 관청이 있었고,
고려에는 중상서, 군기감에,
조선에는 경공장, 외공장에 칠장이 있었다고 해요.
신라시대 화랑의 화장이야기
신라에서는 남자도 화장을 했다는데요
신라에서는 낭도 수천 명을 거르린 화랑을 뽑아
인재들을 양성했는데 당나라 스님이 쓴 '신라국기'에는
화랑에 대해 이렇게 적혀있대요.
" 귀족 출신 자제 중에 얼굴이 잘생긴 사람을 뽑아 얼굴에 분을 바르고
연지를 발라 화랑으로 받드니, 많은 무리가 그를 따르고 받들어 섬긴다. "
화랑은 화장을 하고 귀고리를 다는 등 곱게 단장을 했다는 거예요.
단지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닌,
우두머리로서 권력과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 였대죠.
귀고리와 화장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던 거래요.
한지 이야기
한지는 닥나무를 주원료로 만드는 우리나라 고유의 종이예요.
'일본서기'에는 610년 고구려 담징이
일본으로 건너가 종이 만드는 기술을 전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고려 시대에는 한지를 중국에 수출했는데, 품질이 워낙 뛰어나
중국인들을 놀라게 했어요.
'고반여사'에는 고려 종이를 이렇게 소개 했대요.
" 고려 종이는 질기고 두터울 뿐 아니라 뒷면의 광택까지도
앞면과 같아 양쪽 면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누에고치 솜으로 만들어져 종이 색깔은 비단같이 희고
질기기는 비단과 같은데, 글자를 쓰면 먹물을 잘 빨아들여
종이에 대한 애착심이 솟구친다.
이런 종이는 중국에는 없는 우수한 것이다. " 라고요.
호두나무 이야기
류청신은 역사에 오점을 남겨
「고려사 - 간신전」에 그 이름과 행적이 올랐어요.
게다가 충렬왕 16년(1290년),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온 류청신은
호두나무 묘목과 씨앗을 가져왔어요.
씨앗은 충청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리 고향 집에 심고
묘목은 고향 집에서 가까운 광덕사라는 절에 심었대요.
오랑캐 나라에서 들여왔다고 오랑캐 '호(胡)',
열마가 복숭아를 닮았다고 복숭아 '도(桃)'를 붙여서요.
계속 '호도나무'로 불리다가 지금은 맞춤법이 바뀌어
'호두나무'로 불리게 되었대요.
류청신이 호두나무를 천안데 들여오면서
호두는 천안의 특산물이 되었고,
천안시 관덕면 일대만 해도 25만 8천여 그루의
호두나무가 자라고 있어요.
오늘 만나 본 이야기들이 어떠셨나요?
저는 한번쯤 들어봄직하기도 했고,
새로 알게되어 재밌는 사실도 있는것 같았어요 -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거나 초등 2,3학년부터
역사에 관심이 생길때 아이에게 권하면
참 좋을 책이란 생각이 들었네요 ^^
이상으로 오늘의 서평을 마치도록 할게요 -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