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춤이다
김선우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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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내내 여자, 최승희와 김선우.. 김선우와 최승희를 만나 같이 놀았다.

간혹 목이 메어 소설의 일부를 낭독하기도 했는데..

아직도 소설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 같아 의식의 명징함을 자신할 수 없다.

 

소설은 김선우의 그간의 작품들의 연장선에서 읽혀진다.

시 같은 소설.

김선우만의 매력적인 문체가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뭣보다 장황하지 않으니 얼마나 큰 미덕을 갖고 있는 소설인지.

 

어떤 평에서 영화의 장면이 떠올려진다고 하였는데,

시나리오 작업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 더욱 그런 듯하였다.

 

음..

소설을 3분의 2쯤 읽다가 갑자기 흰죽이 먹고싶어 흰죽을 끓여 오뎅볶음과 김, 열무김치와 함께 먹었다.

소설속에서 최승희는 흰죽과 새우젓을 먹는다. 정성스럽게.

소박한 흰죽.. 바로 그 자리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등장한 것은 축복이었다. ㅎㅎ

 

216페이지 몽양 여운형 선생이 등장한 장면.. 목이 극도로 메었다.

손기정과 최승희를 초청하여 격려했던 역사의 한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하였다.

 

아.. 20대 내내 그분, 몽양 선생님의 그림자를 쫓아다녔다.

서른을 넘기면서 나의 길을 가느라 많이 소홀해졌지만,

식민지 조선, 그 한가운데에서 가장 솔직하고 담백하며 대담한 행보를 보였던 이는 바로 몽양 선생님이 아닐까.

일제 강점기, 해방국면에서 뚜렷한 혜안과 민주적인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최승희처럼 21세기의 감각으로 20세기를 살았던 우리의 영원한 지도자, 몽양 여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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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29페이지..

조선에서 먹고살 만하던 사람들은 미국에서도 먹고살 만했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한답시고 선전하며 독립자금을 대고 있다고 떠벌리는 그들..

최승희는 말한다.

지금 이 시간 조선과 일본에선 정말로 목숨 바쳐 싸우다 죽어가는 운동가들이 있다고.

당신들 백 명이 일본 물건을 배척하자는 '일화배척'의 배지를 만들어 팔며 조선 독립을 운운하는 것보다 나, 최승희 한 사람이 미국 예술계에 우뚝 서는 게 낫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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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위 대목에서 '이승만'같은 이들을 떠올렸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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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여자에겐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자신이 이루는 것이 혼자만의 성취가 아니라는 느낌,

어떤 간절한 기원 같은 것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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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우리 모두는 연결된 존재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설 수 없는 존재들.

하여 불변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닌, 연기적으로 존재하는 무상한 존재들.

바로.. 무상하여 고통스럽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운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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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살춤 장면..

전쟁터의 사지에서 최승희의 보살춤을 본 후, 숨죽이고 있다가 말없이 기립박수를 치며 눈물을 훔치던 병사들.

세상에 고통이 있는 한 현자들은 계속 보살의 몸으로 세상에 온다고..

일신의 해탈로 열반에 드는 것이 끝이 아니라 하였다고..

해탈한 마음이 해탈하지 못한 중생들을 아파하여 함께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보살도..

 

보살춤을 보는 일은 황홀하고 고통스럽다.. 어머니를 보는 일처럼 힘들고 아프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듣는다는 관음보살의 얼굴.. 관음의 자비, 관음의 슬픔.

아름답고 아프고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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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그리고 남편과 이별하던 장면..

"이 몸, 이 몸이 내조국이라고, 내 춤이 내 조국"이라고 절규하던 여자, 최승희.

 

그리고..

"개인적인 고통이 실은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보편적인 고통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면 조금 위로가 되었다."

 

마지막..

"몸을 버리는 순간 몸이 얻어지는 거야. 고치에서 춤을 꺼내듯, 이 순간의 몸과 다음 순간의 몸이 그렇게 연결되는 거야."

 

이 대목에서 찰나, 아찰나의 순간이 이어져있는, 오온의 찰라생멸로 가합상태에 놓여있는 우리의 몸을 생각했다.

 

 

 

이제, 작가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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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8월 8일,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다는 최승희.

그 이듬해에 태어난 김선우.

너무도 일찍 코스모폴리탄이 되었던 여자, 최승희.

쿨하기엔 너무 뜨거운 심장을 가진 그녀.

불우와 찬란함의 공존,

화려한 외양 속의 극한의 고독,

결국, 자유에의 갈망.

 

자유인 춤, 자유인 예술, 자유인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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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초, 토지문화관에서 지금은 대지로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님과 봄을 함께 맞고 보내며 이 소설의 본격적인 구상을 하였다는 사실과 소설의 초고를 해인사에서 썼다는 사실은,

부모님이 원주에 계시고, 스물아홉의 강을 해인사 근처에서 건넜던 나의 상황과 연결되어 묘한 인연의 끈을 감지하게 된다.^^

 

해인사는 법보종찰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왔고, 내겐 늘 그리운 고향같은 곳이며,

가야산의 기운은 작가의 말씀처럼 머리를 깨우고 가슴을 맑게하는 지혜로운 여신의 품 같다.

 

최승희의 고향이 강원도인 것으로 보아 작가와 최승희의 연결됨 역시 예사롭지 않은 듯하다.

 

물론.. 결국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음을, 하여 독존(지독한 에고이스트, 최승희..)의 극점에서 오히려 무아를 사유하고 구현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는 아무것도 구원할 수 없어요".. 소설속에 여러번 등장하는 최승희의 말...

   촛불들을 보며 아름다움의 정치를 떠올렸던 작가가 생각난다.

   정치가 아름다워진다면... 아.. 상상만해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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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전인권 지음 / 푸른숲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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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류의 책을 무의식적이나마 읽고 싶어하지 않았나 싶다. 막상 접하니.. 반갑다. 나의 책읽기는 항상 내 삶의 절실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도모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난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과 수없이 많은 대비를 해보는 경향이 있다. 이 책 역시 한국남자의 탄생 과정을 일상적이지만 솔직하게, 그리고 예리하게 파헤친다.

가부장적인 한국사회. 이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던 나는 '가부장적'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관념적으로만 이해해왔던 것 같다. 이책은 그러한 관념적 이해를 구체적 삶의 이야기로 풀어주고 있다. 가부장적 사회속에서는 여자 못지않게 남자도 피해자임을 다시한번 인정하게 된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풍요로우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없게 만드는 '억압'을 거부하고 일상의 아기자기한 자유를 만끽하며 살라는 울림을 만들어낸다.

한국의 가족 구조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절대적일수록 그의 소외는 커져만 가는 아이러니. 그것에 반항하지만 결국 답습하고야 마는 아들. 그리고 그런 아버지와 아들을 떠받치는 역할을 철저히 수행하는 어머니.

이 책은 한국 사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그만큼 절실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난.. 이 책을 통해 동굴 속 황제가 되어있는 대다수의 한국남자와 그런 한국남자들이 만들어가는 사회를 만났지만, 그 내면에서는 한국사회에서 '동굴 속 황제화'된 여성들이 성공하고 있고, 그것은 결국 내 안의 동굴 속 황제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동굴 속 황제의 비극은 비단 한국 남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답습해야만 한국사회 내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동굴 속 황제화'된 수많은 여성들을 양산해낸다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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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
비키 메킨지 지음, 세등(世燈) 옮김 / 김영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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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진 빠모 스님은 벌써 예순이 넘으셨다.

지금 티벳의 여승들의 지위는 예전보다야 많이 개선되었겠지만, 텐진 빠모 스님이 출가할 당시만 해도 티벳의 수도원엔 여승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설사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해도 비구 스님들이 25년간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는 것에 비하면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교육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한 환경을 스스로의 의지 하나로 극복하며 전세계 출가 여성들의 스승이 된 스님!
생각할수록 가슴이 벅차고 존경스럽다.

텐진 빠모 스님은 21세에 출가하여 현재 40년째 수도승으로 살아오고 계시다. 스승 캄트룰 린포체를 만나 출가한 이후 그의 스승 곁에서 6년, 라홀에서 6년, 그리고 12년간 13000피트 높이의 히말라야 동굴에서 수행하셨다.

무엇보다 스님의 성실함과 치열함은 세상살이에서 무엇을 하든간에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특히 여자이기 때문에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거부당해야 했던 경험을 가진 여성이라면 자신을 긍정하고, 나아가 주체적인 삶을 꾸리고, 더 나아가 인간의 완전함을 향해 가는 길의 출발선에 설 수도 있을 것이다.

이후.. 무엇을 이루는가는 우리 스스로의 의지와 실천에 달려있을 것이고, 종국에는 스님의 말씀처럼 삶에서 무엇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잃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스님의 책을 세번, 아니 네번쯤 읽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스님의 책을 펼쳐보게 될 것 같다. 나태해질 때마다 스님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무아'란 자아가 없는 경지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끊임없이 변하는 연기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생각이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몸소 수행을 통해 체득하는 것이어야 하리라.

바로 그런 점에서 몸소 수행을 통해 드러낸 보이신 텐진 빠모 스님의 존재는 더없이 귀하다.

우리나라 비구니 스님들도 텐진 빠모 스님 못지않게 치열한 구도의 삶을 사는 분들이 많다.

이번 기회에 한국의 여승들의 구도기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모쪼록 한국 여성들이 텐진 빠모 스님의 삶을 통해 나름의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행복하게 걸어갈 수 있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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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아래 잠들다 창비시선 229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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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시인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어느 여름이었다.

삶이 너무 남루하게(시인의 표현을 빌린다면) 느껴지던 날들의 어느 즈음이었고, 그녀와의 만남은 이후 내가 이유없는(아니, 이유가 너무 많은) 절망의 끝을 향해 가고 있을 때 든든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강릉이 고향인 그녀. 난 강릉 김씨이고 강원도 영월, 태백, 춘천, 원주에서 살아온 터라.. 그녀의 시속에서 가끔씩 마주치는 지명들과 상당히 익숙하다. 딸부잣집의 딸로 태어난 것도 비슷하고 그녀 어머니의 삶속에서 그녀가 건져올리는 작품의 소재들은 내 마음 깊은 곳까지 뒤흔들어 놓곤 한다.

내 혀가 입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
물밑에 달이 열릴 때
도화 아래 잠들다
바리공주

작년에 스물아홉의 강을 건너며 내내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의 누이 영덕스님을 생각했고 비구니 스님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와 내 어머니를 생각했다. 여성주의, 아니 '여성주의' 자체를 이미 뛰어넘은 영역에서 이미 깊숙한 호흡을 하고 있는 그녀. 뭣보다 불교적 세계관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그녀 작품의 세계를 논하기 힘들 것 같다.

이 모두.. 나랑 너무 잘 맞는 느낌이다. 아마도 많은 여성들이 그럴 것이다. 그녀가 현대문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크게 비상을 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작품들이라고 생각해왔지만, 다소 빨리(?) 주목을 받고 있다. 사람들이 갈구하는 것들은 아마도 보편성을 띠고 있나보다.

여성들이 그녀의 네작품을 통해 삶의 힌트를 얻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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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 지구 살림 민병대 여성 전사들이 보내는 여신의 십계명
정현경 지음, 곽선영 그림, 제니퍼 베레잔 노래 / 열림원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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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 교수의 세권의 책,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거야>1, 2와 <미래에서 온 편지>는 그동안 내가 여성으로서 겪었던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을 여과없이, 시원하게, 통쾌하게, 여운이 길게 보여준다.

내가 지난 6개월간 겪었던, 아니 29년간 겪었던 힘들었던 감정들의 원인과 치유과정을 그대로 거울속에 비춰보는 느낌이었다. 꼭 같지는 않지만..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경험들과 깨달음. 나를 까뒤집어 세상에 드러내보인 느낌이었다.

그녀의 자신감과 대범함과 용기있음과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그리고 특히, 혼자서 끙끙 앓으며 힘들게 살았던 여성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환한 느낌이 들 것이다. 내 속에서 찾지 못하면 결국 찾을 수 없는 길.. 본래 있었던 내 속의 여신을 알아보는 길... 참자아....

좀 진부한 마무리인 것 같은데.. 나를 '세상에 이쁜 여자 널렸는데 못생긴...' 이런 말로 잔인하게 찬, 진보운동을 하는 그 남자가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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