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계산 가능성과 증명 가능성만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내면적인 가치 등은 증명될 수 없지만 인간에게는 참으로 소중하다.
또한 과학기구 안에서 죽어 가는 비둘기는 물론이고 자연의 하찮아 보이는 풀 한포기, 바람 한 줄기에서도 소중한 영혼을 느끼는 상상력은 의심스럽거나 수상한 애니미즘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의미를 갖는다.
감정과 상상력이 사라진세상에서 인간의 내면은 마치 수분이 차단된 나무처럼 점점 건조해진 것이아닌지 우리 스스로 성찰해 보는 게 필요하다.
이성 전체에 대한 부정은 곤란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성에 대한 맹신에서는 벗어나는 태도가 필요한때가 아닐까? - P170
인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되돌아가야 한다.
오직 인간만이이성을 가지고 있고 이성만이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인간만의 특징이라는 규정 자체를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서는 인간을 다른 모든 존재와 질적으로 구별하고 인간을 만물의 지배자로 규정하려는 발상 자체에 대해 재검토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 P194
드가 -현장성과 생동감
"젊은 여인들을 그리는 이유는 피조물로서 한 인간이 그 자신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네. 마치 고양이가 제 몸을 핥아서 닦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누드화는 항상 관객의 시선을 염두에 두었지만 내가그린 여인들은 정직하고 소박한 자신의 신체적 상황 외에는 전혀 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네. 이는 마치 열쇠 구멍을 통해서 몰래 바라보는 것과같다고 할 수 있네." - P226
어머니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은 경제적인 고통만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시민혁명 한 번 겪진 않은 채 식민지로, 산업화로 끌려 다녀야 했던 한국 사회에서는 봉건적 가부장제 관계와 의식이 거의 해체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연장되었다.
우리 어머니들은 조선 시대의 유교적인 가부장제 의식을 그대로 이어 받아 지독히 권위적인 남편과 꽉 막힌 사회적 통념 속에서 온 생애를 보내야 했다.
여성으로서 또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중도 받지못한 채 집 안팎에서 가족을 위한 희생만을 강요받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여인‘의 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중성화된 무표정만이 남았다. - P258
그녀들에게 요구된 것은 대가족제도의 끝없는 희생과 의무였지만 수년이 흐른 뒤 돌아온 것은 도시로 떠나 버린 자식들의 뒷모습이었다.
명절때나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가 멀다 하고 백화점을 드나들면서도 부모의 어려움 앞에서는 "요즘 사정이 안 좋아서요…"를 되풀이하는 싸늘한뒷모습 말이다.
농촌이나 도시 주변의 빈민가에서 살며 자식 뒷바라지를 해서 어떡해서든 부모 세대와는 다른 삶을 만들어 주고자 했던 어머니들은 이제 외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병든 육신, 살아온 날들의 허탈함…….
강연균의 그림에서는 어머니들이 겪은 파행적인 한국사와 왜곡된 가족사가 치부처럼 잔인하게 살아난다. 얼굴이며 손에 켜켜이 쌓인 주름살 하나하나에 마치 지워지지 않은 상처처럼 스며들어 있다.
강연균에 의해 살아난 어머니들의 표정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정면으로 마주 대하기가 힘들 정도로 우리의 가슴을 찌르고 있다.
어머니… 아, 우리들의 어머니…….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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